겨울 저녁 반달이 차갑다
겨울 저녁 반달이 차갑다

 

여름철 복날이 되면 평소 사랑받던 애견들이 찜통에서 덜덜 떠는 모습이 SNS로 전해져 가슴 뜨끔하던 기억이 있다. 지인들은 세상을 풍자하면서 웃자고 보내주는 거겠지만 제발 살려달라는 그 절규를 애써 무시하고 사는 것 같아 스스로 부끄럽다.

 

4대 성인 중 한 분인 공자께서도 드셨다고 할 정도로 개 식용 문화는 오래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널리 퍼졌다고 하는데 이제는 위법한 일이 됐다. 우리나라는 지난 1월 이른바 개 식용 금지법이 통과돼 조금이나마 부끄러움을 덜게 됐다. 이 법안은 3년간 유예 기간을 거쳐 2027년부터 시행된다. 아무튼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가 더 깊이 자리잡아갈 것을 기대한다.

 

차제에 몇 가지 문화를 돌아보자. 산천어 축제가 올 겨울에도 참가자가 150만명을 넘어 15년째 100만명 돌파 기록을 세웠다고 하는데 왠지 씁쓸하다. 산천어는 얼음 바닥에 그대로 노출돼 질식사하는 등의 동물학대 논란이 여전하다. 산천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유희의 대상이 된단 말인가. 스페인의 오랜 전통인 투우도 투우사의 현란한 몸놀림에 지쳐 마침내 피를 뚝뚝 흘리며 죽어가는 그 모습에 열광하는 인간들이라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탈 속에 감춰진 짐승만도 못한 마음이 아닌가.

 

부처님 전생에 자비심 넘치는 사슴 이야기가 있다. 사냥을 즐기는 왕의 화살을 피하려 이리저리 몰리던 사슴들은 피해를 줄이고자 아예 순서를 정해 한 마리씩 희생하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새끼를 밴 어미 사슴이 순서가 되자 이를 안타까이 여긴 금빛 사슴이 사냥감을 자처하고 나선다. 특별히 금빛 사슴을 좋아했던 왕은 자초지종을 듣고는 사냥놀이를 그만둔다.

 

사슴 이야기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를 잘 일깨워준다. 자신의 기쁨을 위해 다른 이의 기쁨을 희생시켜야 한다면 이런 슬픈 축제를 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생명의 상의상관 속에서 지나친 일방적인 욕망 추구는 설 자리를 잃는다.

 

사람 생각 바꾸는 일은 쉽고도 어럽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쉽사리 변하지 않는 게 사람이라지만 인식의 변화가 순식간임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필자가 새삼 놀라는 것 하나는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매장 위주이던 장례문화가 어느 샌가 화장문화로 바뀐 점이다. 부활을 설파하는 종교일수록 화장에 부정적이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정말 모든 게 한 생각 차이고 영원한 건 없지 싶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극한의 대결 구도 속에서도 합종연횡 이합집산 등으로 어지러운 모습이다. 게다가 특정 정치인을 겨냥한 테러까지, 위험천만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 그대로가 드러난다. 상생(相生)의 정신으로 공명정대한 선거, 아름다운 축제를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일까. 인드라망으로 얽힌 우리들의 존재 실상을 깨달으며 살아가자는 불교의 지향은 무지갯빛 환상에 불과한가. 설을 맞으며 다시 잡아보는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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