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친구들과 캠핑을 갔던 추억을 떠올려본다. 야영장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캠핑 의자에 앉아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논했던 기억이 새삼 머릿속을 스친다. 그 때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를테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같은 것이었다. 대학 들어와서 허구헌날 노는 궁리만 하다보니 허송세월만 보낸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느니,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하는지, 지금 상태로 과연 결혼은 할 수나 있는건지, 부모님이 늙어가는데 어떻게 모시고 살아야하는지 등등 온통 무거운 주제의 대화 일색이었다. 그때 우리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때로는 한탄하고 긴 한숨을 쉬어가며 밤을 하얗게 지새웠었다. 술 한잔 기울일때마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상념에 젖었고 깊어가는 늦가을 밤의 정취를 시샘하는 찬 공기가 몸 구석 구석을 파고들때면 자리를 정리하고 저마다 텐트 속으로 들어가 몸을 누이곤 했다.

친구들과 텐트를 치고 함께 야영할 때는 각자 맡은 역할들이 나눠져 있었다. 텐트를 준비하고 설치하는 일, 밥을 짓고 반찬을 요리하는 일, 저녁상 이후 술자리와 캠프파이어 준비, 야외에서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물품이나 의약품을 준비하는 일 등을 각자 맡아서 처리했다. 하지만 서로 하고 싶어하는 역할을 놓고 의견이 다르면 티격태격하는 일이 빚어졌다. 각자 맡은 역할 중에 어느 한 부분이라도 준비가 소홀해도 문제가 발생했다.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친구들에게는 원망의 눈초리가 쏟아졌고 때로는 감정 싸움으로까지 번져 캠핑의 잊지 못할 추억은 악몽의 시간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갑진년 새해, 다시한번 ‘텐트’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여당인 국민의힘과 제 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반기를 든 정치인들이 제 3지대로 모여들면서 이른바 ‘빅 텐트’론을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이끄는 신당 ‘새로운 미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개혁신당, 이원욱,조응천, 김종민 등 더불어민주당 탈당파가 만든 ‘미래대연합’, 민주당 출신이었던 양향자 의원의 ‘한국의 희망’, 금태섭·류호정의 ‘새로운 선택’ 등이 모두 함께 하나의 큰 텐트 속으로 들어가 거대 양당을 심판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영입위원장은 "텐트를 크게 쳐 주십시오. 추우면 어떤가. 기꺼이 함께 밥 먹고 함께 자겠다"고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텐트보다 멋있는, 비도 바람도 막을 수 있는 큰 집을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3지대 정치인들은 일단 새로운 출발을 알린 시점은 조금씩 달랐지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대명제에 모두가 공감하고 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기존 거대 양당을 모두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부동층,무당층이 무려 30%대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3분의 1 가량이 기존 정치권에 마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만큼 제3지대 신당에 거는 기대도 결코 적지 않은 분위기이다. 

그렇다면 제 3지대가 과연 ‘빅 텐트’를 제대로 칠 수 있을까 ? 대학 시절 경험에 비춰보면 역시 확실한 역할과 책임 분담이 뒤따라야할 것이다. 비싸고 좋은 큰 텐트를 사오는데 내가 돈을 더 많이 냈으니 술안주 비용이나 회비를 덜 내게 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사전 장소 헌팅을 대표로 다녀왔으니 텐트 가장 안쪽에 좋은 자리에서 자겠다느니하는 요구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곤란해질 것이다. 텐트에서 함께 어울리지 않고 다른 일거리를 잔뜩 갖고오는 친구, 텐트가 너무 커서 밤에 칼바람이 들어와 추우니 전기장판을 사오라며 불평 불만을 쏟아내는 친구들은 눈에 가시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우리 눈 앞에 어떤 빅 텐트가 쳐질지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다음달이면 텐트 주변을 기웃거리는 이들도 부쩍 늘어날 것이다. 텐트를 여러개 쳐서 따로 따로 캠핑하라고 부추기는 이웃의 대형 별장 소유주들 모습도 분주하다. 80일 남은 총선, 이제 텐트에 울고 텐트에 웃을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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