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년전 오늘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영문도 모른채 젊은이 158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주말을 맞아 축제를 즐기기 위해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몰려든 꽃다운 청춘들은 끔찍한 압사 사고에 속절없이 희생됐다. 참사 현장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던 생존자 고 이재현 군은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참사 43일만에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공식 집계된 희생자는 사망 159명, 부상 334명이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어느덧 1년,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추모 행사가 서울 곳곳에서 펼쳐졌다. 서울시청 앞 분향소에는 일찍부터 시민들의 긴 행렬이 이어졌다. 

참사 현장인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추모 공간에는 시민들이 놓아둔 꽃다발이 가득 쌓였다. 해밀턴 호텔 옆 골목 입구에는 추모객들이 두고 간 조화와 술병, 간식들이 놓여졌다. '잊지 않겠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적은 메모들이 눈에 띄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는 불교와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등 4개 종교인들의 기도회가 열렸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선우스님은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아 돌아가신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진심으로 부처님께 바란다”면서 대통령의 사과와 오는 12월 정기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통과를 촉구했다. 서울광장에서는 유가족과 시민들이 함께 한 가운데 1주기 시민추모대회가 진행됐다. 

참사가 일어난지 꼭 1년이 지났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크게 나아진 것도 달라진 것도 없다. 유가족들의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오늘도 참사 현장을 찾은 일부 유족들이 슬픔에 겨워 오열하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살아남은 이들도 힘들다. 가까스로 참사 현장에서 목숨을 건진 이들도 정신적 고통과 트라우마 속에서 하루 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 우리 사회의 안전관리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고 재난에 철저히 대비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도 제자리 걸음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 모두 이태원 참사와 같은 비극적 사건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면서 재난 안전 관련 대책들을 쏟아냈지만 가시화된 처방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주최자가 분명하지 않은 지역 축제 등에 대해 지자체장이 안전계획을 세우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재난과 안전관리에 대한 기본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 법사위 심사도 통과하지 못했다. 현행 재난안전관리법상으로는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한 안전 관리 주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태원 참사 당시와 같은 상황이 또다시 벌어졌을 때 경찰과 지자체가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여야는 오히려 참사 책임과 재난안전을 위한 입법 추진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지난해 12월 제출한 재난안전법은 지난달에야 행안위를 통과했고, 다른 안전 관련 법안들도 상임위에 계류돼 발이 묶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1년이 지났지만 뻔뻔하게 책임을 부인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책임자들을 보자면 인면수심 정부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세계적인 석학이나 국내외 재난 문제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에 대해 특별히 위험한 사회라고 말한다. 국민들의 근면함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짦은 시간에 눈부신 압축 성장을 이뤄냈지만 고속 성장의 이면에는 빈부격차 등 여러 후유증을 낳았다. 외형적 성장 위주의 사회 분위기속에 원칙보다는 편법. 특권이 우선시되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면서 개인과 집단의 안전은 상대적으로 무시되기 일쑤였다. 인구의 대도시 편중과 도심 차량 증가. 밀집된 노후 건물 등은 사고를 부르는 위험 요인이 됐다. 여기에다 일선 관료와 공무원들의 업무 우선 순위가 국민 안전이 아니라 높으신 분들의 경호와 심기 관리에 맞춰진다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나와 남은 둘이 아닌 하나요, 당신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인 ‘동체대비(同體大悲)’ 정신을 다시한번 떠올려 본다. 유가족들의 아픔과 고통을 우리 모두가 함께 짊어지고 나눠야하기 때문이다.  참사의 기억은 시간이 더 흘러도 결코 희미해지거나 잊혀져서는 안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어느덧 이태원 참사 1주년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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