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보디대탑 아래의 보리수나무, 담장 안쪽에는 부처님의 등정각을 상징하는 연화좌가 놓여 있다.
마하보디대탑 아래의 보리수나무, 담장 안쪽에는 부처님의 등정각을 상징하는 연화좌가 놓여 있다.

  1989년 11월, 3개월 동안 인도 성지순례에 나섰던 법정스님은 책 '인도기행'에서 부처님 성도지 '부다가야'에 대해 이렇게 썼다. "불교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이 곳 부다가야에 유독 우리나라의 절만 없다. 기회 있을 때마다 1천6백년의 불교역사를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는 한국 불교의 그 허구와 취약성이 부처님 성도의 땅에 오니 새삼스럽게 되돌아보였다." 부다가야는 세계 각국의 200여 개 사찰이 거대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그 중심에는 '마하보디 대탑'과 '보리수 나무'가 있다. 2천600년 전, 6년간의 고행을 마친 싯다르타 태자는 바로 이 자리에서 성도에 이르렀다. 오늘날 저마다의 건축 양식으로 부처님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부다가야의 사찰들은 마치 부처님을 가운데 두고 모여 앉은 제자들의 모습같다. 법정스님은 이처럼 상징적인 곳에 한국 절이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것이다.  

  왜 부다가야엔 한국 절만 없었을까? 정토회의 법륜스님은 2019년 방영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라는 프로그램에서 '한국불교의 기복신앙화'를 이유로 꼽는다. 삿된 말로 부처님 성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일생,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괴리된 우리의 신앙생활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부다가야 한국 사찰의 부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 5월, 백만원력 결집불사의 결과로서 부다가야에 창건된 한국 사찰 '분황사'의 의미는 뜻깊다. 분황사 준공에 50억 원을 시주해 불사를 가능케 했던 설매, 연취보살은 현지 기자회견에서 "한국불교가 부처님의 진리에 의해서 초심으로 수행정진한다면 세계의 중심에 설 것이다"라며 "부처님이 깨달으신 성지, 바로 여기서 '한국불교 제 2의 정혜결사'를 시작해보자"는 생각으로 불사 동참자를 모집하는 신문광고를 보자마자 머뭇거림 없이 시주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분황사 뜰 안에서 보이는 마하보디대탑,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주변에 미얀마 불교를 상징하는 '금색 첨탑'으로 이뤄진 사찰 등 세계 각국의 사찰들을 볼 수 있다.
분황사 뜰 안에서 보이는 마하보디대탑,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주변에 미얀마 불교를 상징하는 '금색 첨탑'으로 이뤄진 사찰 등 세계 각국의 사찰들을 볼 수 있다.

  신전을 세우고 사찰을 만든다고해서 종교가 중흥되는 것은 아니다. 항해하는 이가 언제나 북극성을 지켜보듯이, 부다가야의 분황사는 한국의 불자들이 새겨야할 하나의 지표가 돼야 한다. 자신의 삶에서 부처님의 삶과 행동을 일깨워내야한다는 숙제가 우리 앞에 남은 셈이다. 비단 분황사 뿐만 아니라, 케냐와 네팔 등지에서 불가촉천민을 위한 학교, 기숙사를 지으며 수많은 연꽃을 피워낸 연취, 설매보살이 가장 강조한 것도 '부처님 가르침대로의 실천'이었다. 오신채를 먹지 않고 여름에도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두 보살은 "부처님은 열반하시기 전까지 탁발을 하러 산 위에서 마을까지 움직이셨다"면서 "부처님께서 이미 삶을 통해 다 보여주셨다. 남의 신발을 가지런히 놔주고, 설거지부터 하라. 일상에서 어떤 마음을 내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정스님은 친절이 자비의 구체적인 모습이라 했던가. 우리는 조금 더 서로에게 친절해질 필요가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의 증명으로 낙성한 분황사 대웅보전, 사찰 지붕 사이로 조계종 사찰을 상징하는 '삼보륜'이 보인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의 증명으로 낙성한 분황사 대웅보전, 사찰 지붕 사이로 조계종 사찰을 상징하는 '삼보륜'이 보인다.

  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소서다. 부쩍 습해진 날씨와 따가운 햇볕과 마주하니 지난 5월 분황사 준공식 동행취재차 방문한 인도가, 특히 마하보디 대탑이 떠오른다. 군데군데 위치한 스피커에선 남방불교의 팔리어 삼귀의가 나오고 있었고, 부처님이 등정각을 이룬 연화좌 위로 그늘을 드리운 보리수 잎들은 쏟아지는 햇볕을 쪼개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보리수 나무 아래서 주황색, 진홍색의 가사를 수한 남방의 스님들과 한국의 스님들이 함께 부처님께 분황사 준공을 아뢴 고불식의 장면이 종종 생각난다. 불교는 수천년의 세월 동안 각각의 지류로 나뉘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거룩한 바다에서 해불양수(海不讓水)를 이룬 순간이었다.

  마침 지난 7일, 인도 현지 포교에 매진하면서 승려분한신고를 하지 않아 종단 승적이 말소됐던 물라싼가 대표 붓다팔라(본원)스님은 승적을 회복하고 총무원장 원행스님으로부터 공식적인 주지 임명장을 받았다. 특이한 건, 평소 수하는 남방가사 위에 한국스님의 가사를 덧입었단 것이다. 스님의 그같은 복식을 부처님 성도지에 존재하는 한국 사찰 '분황사'의 특수성을 말해주는 상징이라고도 볼 수도 있을까. 붓다팔라스님은 오는 7월 13일부터 분황사에 주석하고 있는 스님들과 현지 4~50명의 인도스님들이 함께하는 첫번째 하안거가 시작된다고 한다. 내년 2월이면 상월선원 인도 만행결사의 행렬도 분황사를 거쳐갈 것이다. 그러니 보리수 나무 인근 어디에선 우리의 말과 글로 올리는 기도가 계속해 울려퍼질 것이다. / 박준상 기자

부다가야 보리수 나무 아래서 봉행된 '고불식', 좌측엔 남방가사를 수한 스님들이 우측엔 회색 승복에 감색 가사를 수한 우리나라의 스님들이 정좌하고 금강경을 봉독했다.
부다가야 보리수 나무 아래서 봉행된 '고불식', 좌측엔 남방가사를 수한 스님들이 우측엔 회색 승복에 감색 가사를 수한 우리나라의 스님들이 정좌하고 금강경을 봉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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