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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정천구 백성욱연구원 이사장

방송 : 2021년 11월 28일(일요일) 저녁 6시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의 김봉래입니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결정이 나오느냐가 향후 대한민국의 향후 5년을 결정하게 될 텐데요, 여야 정치권은 절치부심 득표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우리들 사이의 공감대가 그리 크지 않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에도 의견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또 지역내 계층 내 세대내에서도 의견 차이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풀어가는 데 있어서 참고하고 또 의지할 만한 선지식이 귀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1970, 1980년대 우리 한국불교 현대사의 선지식이자 도인, 그리고 시대의 활불로 유명했던 분입니다. 백성욱 박사님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는 백성욱연구원의 정천구 이사장님 모시고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김봉래 : 앞서 소개해드린 대로 백성욱연구원의 정천구 이사장님을 BBS 불교방송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정천구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정천구 : 안녕하세요.

 

김봉래 : 네. 반갑습니다. 우리 정천구 이사장님은 인천대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으셨죠. 정치학 교수를 하시고 또 나중에는 영산대에서 초대 총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오늘은 시대의 활불로 유명했던 백성욱 박사를 따르는 제자 가운데 한 분으로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요즘 다들 코로나로 힘든 시기인데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정천구 : 네. 요새 흔히 말하는 방콕이라고 그러죠. 좋은 점은 그 시기에 책도 많이 읽고 또 글도 계속 써서 1년에 한 두세 편 정도의 논문도 쓰는 그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고맙습니다. 학자로서의 본분을 다 하고 계시는 것 같아서 너무 반가운데요, 사실 저희 BBS 불교방송 개국 초기에 객원논평위원으로서 오랫동안 활동도 해 주셨어요.

 

정천구 : 네. 그랬습니다. 기억납니다. 그 때 아마 개국 초기에 정목스님인가 와서 클래식도 소개해서 많은 인기를 얻었고 저희 객원 논설 프로도 많은 관심을 많이 받았다고 기억을 합니다.

 

김봉래 : 네. 덕분에 불교방송이 이제 올해 개국 31주년을 맞기까지 이렇게 초기에 초석을 다져주셨던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백성욱연구원 이사장님으로서 백성욱 박사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해봐야 되겠습니다. 백성욱 박사님은 국내 최초의 독일 철학 박사로 유명하고 독립운동도 하셨습니다. 독립운동 하시고, 또 해방 후에는 내무장관, 동국대학교 총장 역임하시고, 만년에는 경기도 소사에 백성목장을 경영하면서 금강경을 중심으로 많은 후학을 지도하셨습니다. 우리 정천구 이사장님도 그 후학 중에 한 분이시고요. 그래서 우선 백성욱 박사님과 이사장님과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정천구 : 1970년대쯤 되어서 윤영흠 법사라고 옛날에 관음회라고 있었는데 관음회 법사를 하신 분입니다. 그 분이 조계사에 와서 금강경 법회를 했어요. 그래서 금강경 법회 중에서 자기가 현재 말하는 것은 자기 말이 아니고 도인이 한 분 계신데, 자기가 거기 지도를 받아서 그 말씀을 전하는 거라고 그러면서 기회가 있으면 우리를 한 번 인도하겠다고 그래요. 그래서 관심이 있었는데 어느 날 실제로 우리를 인도 해서 소사를 갔어요. 그래서 백선생님을 뵈었고, 첫 번째 법문을 듣고 거기서 감동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옛날에 2천 5백년 전, 대승불교로 말하면 3천년 전의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다면 아마 꼭 저런 모습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봉래 : 아. 부처님의 화현.

 

정천구 : 그래서 상당히 매료가 됐었죠.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최근에 백성욱 박사 전집이 발간됐습니다. 모두 6권인데, 백성욱 박사의 금강경 강화라고 해서 금강경에 대한 독창적인 시각과 해석이 돋보이는 그런 해설서도 있고 그 밖에 박사님의 문집이라든가 또 후학들이 박사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하는 여러 가지 내용들이 같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일 궁금한 것이 금강경에 대한 해설이 아주 독특하다 그런 얘기를 하셨거든요. 어떻게 다릅니까.

 

정천구 : 그러니까 제가 듣고 배운 바로는 그냥 문자 해석이라기보다도 백성욱 선생님께서는 불교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가지고 계세요. 제가 듣고 또 그 분의 철학박사 논문을 자세히 연구를 해 보니까 아주 독특한 불교관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물론 현재는 상식적이 되어 있지만 불교가 뭐냐 이렇게 거기서부터 나오는데, 불교라는 것은 현실에서 구득한 진리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연구하는 그런 의식 철학이다 그렇게 규정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실제적 현실에서 구득한 거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요 불교의 기본 사상이죠. 공론이 아니라 그냥 현실에서 딱 그렇게 깨친 그걸 갖다가 자기 주관이 아니고 객관적 견지에서 연구하는 그런 의식 철학이다. 아마 당시의 유럽에서는 아마 의식철학이라는 말이 상당히 처음 대두된 그런 말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말하면 consciousness philosophy, 의식 철학, 그러니까 우리말로 하면 마음철학이죠. 마음철학이죠. 그래서 그거를 상당히 새로운 철학적 용어로 도입을 하셨고 그 다음에 또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대승과 소승을 굉장히 구별하셨어요. 그래서 대승과 소승의 기본적으로 다른 점은 소승은 자기 마음만 비워서 항복 받는 마음만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보통 마음공부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통 마음공부라고 그러면 그냥 자기 마음만 다스리는 것으로 아는데 백성욱 선생님은 대승은 거기서 머물지 않고, 소승은 자기 마음은 다스리고 할 줄 알지만 이 우주, 객관적 우주는 어쩔 줄 몰라서 거기에 대해서는 굉장히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이거죠. 그래서 대신 신도 믿고 이렇게 불교에서도 신이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하는데, 소승과 달리 대승은 우주 자체도 하나의 마음에서 건설된 것이지 그것이 객관적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공(空)이기 때문에 그래서 만경창파에 일엽편주를 타고 가는 그런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으로 말하면 만경창파에 하나의 조그마한 배를 타고 가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우주에서 사는 것이. 그러니까 내 마음속에서 부딪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밖에서 파도가 이렇게 치는데 얼마나 무섭겠어요. 그런데 대승의 마음은 그것도 다 자기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그것도 다 해결하니까 굉장히 넓은 마음이죠. 그리고 외부에 굴하지 않고 자기를 지켜나가는 상당히 적극적인 것이 상당히 독특했다고 봅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정천구 : 그래서 나중에 같이 발전해서 부처님이라는 것은 뭐냐, 부처님이란 우주 진리의 주관이다. 그리고 다르마(dharma), 법이라는 건 뭐냐, 우주 진리의 객관이다 이거죠.

 

김봉래 : 아. 우주 진리의 주관, 우주 진리의 객관.

 

정천구 : 그게 딱 맞아떨어져요. 우리가 상식적으로도. 그래서 부처님은 인간이지만 자기의 주관과 우주 진리하고 딱 일치시킨 분이란 말이죠. 그래서 부처님이 된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거를 구체적으로 적용시키면 우주 진리의 객관, 다르마를 대표하는 경전이 금강경이라 이거죠. 금강경은 모든 경전을 아주 잘 갈무리해서 그 속에 개종차경출(一切諸佛 及諸佛阿縟多羅三邈三菩提法 皆從此經出)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모든 경전은 전부 금강경에서 출현한다는 말씀이 금강경에 있어요. 그래서 그것과 마찬가지로 금강경만 하나 읽으면 그 중에 팔만대장경의 이치가 다 들어가 있다, 그런 다르마의 대표가 금강경이고. 부처님의 대표가, 석가모니 부처님은 돌아가셨지 않습니까.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음을 인계 받은 분이 미륵 부처님이 아닙니까. 그래서 미륵 부처님은 그것을 그냥 미륵, 미륵 부처님 이렇게 하는데 그러지 말고 미륵 부처님의 풀네임을 불러야 된다. 사람이 어른을 부를 때는 풀네임을 불러야 되는데 미륵 부처님의 풀네임은 미륵존여래불이다. 그래서 원어로 하면 마이트레야 타타가타 붓다 이렇게 되면 미륵존여래불이 되거든요.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래서 그렇게 부르라 해서 다른 미륵을 표방하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여러 가지를 부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유사 종류하고도 구별 짓는 방법이 바로 미륵존여래불이라는 것이고 또 특히 그런 것을 가르침의 주로 했었어요. 소사에서는. 그래서 금강경을 아침저녁으로 읽고 또 늘 미륵존여래불을 봉송해서 자기 마음이나 자기 외계에서 부딪히는 모든 사물에 대고 다 바쳐라. 그것이 핵심입니다.

 

김봉래 : 그렇게 보면 아까 대승과 소승의 차이점도 이야기했지만 한마디로 나만 편한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다 편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고 걸어간 그런 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의 3천 년 또 몇 만 년 인류사의 역사에서 정말 불교가 아니면 그 일을 감당하지 못했을 거다 이런 생각도 드는데, 이번에 백성욱 박사 전집에서 보면 ‘불법으로 본 인류 문화사 강의’라는 그런 파트가 있지 않습니까. 그 파트에서도 박사님의 식견으로 세상의 역사나 문화를 조망하고, 이랬다. 그러나 불교는 이런 걸 지향한다. 이런 내용들이 들어가 있을 것 같아요.

 

정천구 :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류문화사 특강은 동국대학교 총장하실 때 학생들하고 교직원들, 일반인들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를 하신 거라고 그래요. 그런데 그것을 녹음을 했다가 나중에 제자들이 발견을 해가지고는 책으로 엮은 거죠. 그런데 거기에 아주 중요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제가 조금 아까는 백성욱 선생님의 기본적인 철학, 불교철학을 말씀하셨지만 그것 하고 거의 대등할 정도로 중요한 얘기가 어디에 있냐 하면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법문이 있어요. 제목이 뭐냐 하면 ‘삼지사회 조직론’이에요. 그러니까 책에 보시면 ‘삼지사회 조직론’이라는 것이 세상을 실제로 사는 데 있어서는, 이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졌느냐, 우리 현재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졌느냐 세 가지 분야인데, 하나는 정신세계, 하나는 법률세계, 또 하나는 경제세계, 이 세 가지가 기본이라 이거죠. 그래서 우리 동양사상은 주로 3을 중시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거는 이 나라의 전통 사상하고도 굉장히 맥을 이으셨어요. 그래서 세 개의 생활이 있는데, 우리는 그 속에서 살고 있는데, 이 세 개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서로 조화를 이뤄야지 세상이 발전한다. 정신세계, 법률 세계, 경제생활이 서로 충돌하고 하나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면 인류는 불행했다. 전적인 예가 서양 중세시대에 종교가 법률생활 정치생활을 모두 다 지배해서 인류가 불행했던 것처럼, 또 법률이 다 지배하면 이것도 불행한 거고, 또 요새는 경제가 많이 지배하지 않습니까.

 

김봉래 : 그렇죠. 지금은 뭐 물질 세계죠.

 

정천구 : 예. 그래서 그것도 불행한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잘 조화를 이루어서 나가야 한다, 그런 얘기가 중요한데요. 그 중에서 정신생활은 어떤 것이냐. 정신생활은 문화, 교육, 예술 그런 게 다 정신생활 아닙니까. 백 선생님 말씀하신 건 즉각적인 깨달음이에요. 이거는 이렇게 서로 계산하고 그런 게 아니라 딱 보면 거기서 딱 즉각이 나오는 것, 즉각은 언제 나오느냐. 머리가 비웠을 때 번개같이 즉각이 나타나지 머리가 꽉 차 있으면 안 된다 이거죠.

 

김봉래 : 잘못된 분별심으로 가득 찰 때는 안 그러니까.

 

정천구 : 그러니까 이건 즉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 정신생활의 기본이다.

 

김봉래 : 네. 참선의 원리하고도 좀 통할 것 같아요.

 

정천구 : 네 그렇습니다. 참선의 원리하고 통해서 즉각적인 그걸 갖다가 정신생활에서는 계속 강조해서 교육을 시키고 그걸 통해서 교육도 발전하고 문화도 발전하고 그것이 기본이고요. 그 다음에 법률생활. 독일에서는 법률과 정치가 거의 비슷해요. 법률학 박사가 곧 정치학 박사가 많이 돼요. 한스 켈젠이나 그런 유명한 정치학자들이 다 법률학 박사거든요. 그래서 법률과 정치가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법률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률생활에서는 이것은 뭐냐 하면 척추와 마찬가지라는 거죠. 인간으로 말하면 정신생활은 뇌이고 법률생활은 척추인데 척추가 올발라야 인간이 제대로 가지 않습니까.

 

김봉래 : 근간을 이루죠.

 

정천구 : 척추는, 법률생활은 뭐가 기본이냐. 정의로운 것, 정의를 기본으로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국가생활이라는 건 정의가 기본이 되는 거예요. 정의가.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또 정의롭지 않다고 불평만 많으면 안 되니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불평을 하지 않는 그런 것이 불교에서 다 그렇게 탐진치를 가르치니까 해결하는 방법 그렇게 하고요. 그 다음에 경제생활은 혈압과 같아요. 인체로 말하자면 혈액. 사회의 혈액과 마찬가지예요. 혈액은 잘 돌아가야 되잖아요. 혈액이 막히면 요새 모든 저 병들이 다 혈액이 막혀서.

 

김봉래 : 순환계 질환이죠.

 

정천구 : 순환계 질환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경제생활은 순환이 잘 되어야 된다. 그래서 그런 거를 국가생활 큰 사회로도 그렇지만 개인으로도 그 세 가지 생활이 있다는 거죠. 개인으로 살려면 정신생활도 잘해야 되고 법률생활도 법에 맞춰서 잘 해야 되고 경제생활도 해야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먹고 살려면 그러니까 그것을 개인으로도 잘 그걸 적용하면 굉장히 개인으로도 행복한 생활이 된다. 그래서 아주 이거는 백성욱 선생님이 기본 철학을 밝힌 것은 철학박사 논문이고 또 실제 사회생활의 지혜를 말씀하신 것은 그렇게 삼지사회 조직론입니다.

 

김봉래 :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백성욱연구원의 정천구 이사장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천구 이사장님도 젊은 시절에 박사님을 뵙고 오늘날의 이사장님이 있기까지 성공한 인생을 이끌어오는 아주 중요한 스승이자 선지식이었을 것 같은데, 이번 전집에도 이사장님의 글이 실렸습니다. 가야산 호랑이라고 하는 편에 실렸는데, 거기도 보면 박사님과의 어떤 일화라든가 이런 부분도 같이 다 들어 있는 거죠.

 

정천구 : 그렇습니다. 원래 백 선생님께서 법문 하실 때 옆에서 적고 그러는 거를 상당히 그러지 말라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감히 옆에서 적지 못해요. 그런데 저는 선생님 법문을 듣고 와서 너무나 아까워 가지고 집에서 기억을 되살려서 조금씩 메모를 했었어요. 그 자리에서는 못 적었지. 그랬는데 그거를 모아서 돌아가시고 나서 제가 책을 냈어요. <금강경 독송의 이론과 실제>라는 제목으로. 그런데 거기서 제가 선생님한테 또 여러 가지를 감복했지만 상당히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이 뭐냐 하면 제가 정치학을 공부했으니까 당시에 정치학적인 측면에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선생님 이게 세계가 말이지 이렇게 혼란하고 어지럽고 그런데 이런 세계를 구하려면 불교밖에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사회를 정화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그렇게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조금 생각도 안 하시고 즉각적으로 ‘그 놈 걷지도 못하는 놈이 뛰려고 하는구나’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래도 뭐 대학원 박사과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프라이드가 좀 있고 그랬는데 한마디로 그냥 이렇게 해버리니까 얼마나 자존심도 상하고 좀 무안했어요. 얼굴도 빨개지고 그랬는데. 선생님이 조금 계시더니 그냥 ‘야 너 그렇게 말할 게 아니고 원각경에 보면 한 마음이 청정하면 여러 마음이 청정하고 여러 마음이 청정하면 삼천대천세계가 다 청정하다, 이런 말씀이 원각경에 있다. 사회정화 그런 거 말하지 말고 우선 너부터 잘해야 될 거 아니냐. 너부터 네 마음을 정화하고 그래야 되지 않느냐’ 이렇게 얘기를 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또 한 번 약간.

 

김봉래 : 큰 가르침을.

 

정천구 : 그래서 굉장히 충격을 받고, 정말 선생님이시다 이런 생각을. 보통 그렇게 얘기하면 다른 분들 제가 여러 분들 많이 만나는데 다 거기에 비위에 맞춰서 이렇게 좋게 말씀드리고 다 그렇지 않습니까. 보통. 그런데 그런 거 전혀 없으세요. 선생님은 즉각적으로 그 사람한테 필요한 말을 그렇게 해주신다 말이죠. 그런 것도 상당히 기억에 남고요.

 

김봉래 : 도인이라고도 얘기하시고 선지식이라고도 얘기를 합니다마는 그 분들이 하는 일이 보면 결국은 인재 양성이 아니었나. 세상일은 모두가 사람이 하는 거고 사람은 그 마음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습니까. 모든 행동이. 그렇다고 본다면 그때 당시가 1970년대인데요, 지금 2020년대니까 반세기가 흘렀습니다. 그 때 당시에도 독재다 뭐다 말이 많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정치 현실은 어렵습니다. 그런 50년의 세월을 격해서 보더라도 대동소이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도 들고 이런 현실을 풀어가는 데는 역시 큰 선지식의 말씀이 가르침이 중요하다,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인재 양성의 측면에서 백성욱 박사님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세요.

 

정천구 : 백성욱 박사님은 특별히 어떤 원칙이나 그런 걸 미리 틀을 정하시지 않고 그 때 그 때마다 오는 사람들한테 얘기하시니까. 오는 사람은 많이 아주 굉장히 층이 두터워요. 오시는 분들 중에서는 전에 국방장관 하시던 최모라는 분도 계시고, 또 전에 황산덕 장관님 과 사모님 이런 분들도 계시고, 또 저 같은 사람도 있고, 또 이렇게 어디서 무슨 장사하다 온 분도 있고 많아요. 그러니까 전혀 가리지지 않으시고 공부하는 마음과 공부하는 데 열의가 있고 또 이렇게 보시기에 장래성이 있다고 보면 다 이렇게 가르쳐 주셨어요. 그러니까 저 같은 경우에도 그냥 고학하는 학생에 불과했는데 전혀 가리지 않고 가르쳐 주셨어요. 그렇게 아주 폭이 넓으세요. 지금도 사회 각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단체를 만들어서 하던 분도 있지만 그냥 소문 안 내고 혼자 공부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이 아마 하나의 사회의 저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서. 결국은 어떻게 보면 백성욱 선생님이 상당히 폭이 넓으시고 지혜도 넓어지고. 그래서 선생님의 법이 지금 시간이 좀 지나니까 점점 시간이 갈수록 무르익어서 지금쯤은 선생님 법이 자꾸 발전돼서 TV에도 나오고 사람들도 많이 공개되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것이 제대로 잘 이루어지면 아마 자연적으로 교육을 통한 불교 인재 양성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백성욱 연구원에서도 그런 방면으로 생각을 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지금 K-문화가 세계적인 문화가 되어 있는데 이게 모두가 우리 사람이 만들어낸 건데 평소 연구원에서도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계신 거죠.

 

정천구 : 네네. 그렇습니다.

 

김봉래 : 구체적으로 소개를 해 주신다면요. 어떤 일을 하시는지.

 

정천구 : 우리가 하는 사업이요.

 

김봉래 : 네네.

 

정천구 : 설립할 때 사람들이 출연을 하고 그래서 우리도 조직을 만들어서 하는데 기본 방향이 뭐냐 하면 선생님의 일생과 사상과 철학 이런 것을 학문적으로 연구해서 후세에 남기자, 후세에 전하자 하는 것이 기본적인 방향이었어요. 그건 뭐냐 하면 우리가 신행이 있고 또 학문이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너무 신행만 갖고는 이것이 지속성이 없지 않습니까. 사람들한테 대한 어필도 좀 약하고. 그래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학문적으로 해서 이걸 남기자고 해서 많은 논문도 하고.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좀 덜했지만 매달 강연회도 베풀고 논문도 쓰고. 그래서 논문도 많이 지금 축적이 됐고. 특히 우리 백성욱연구원에서는 한국민족사상학회라는 아주 큰 학술단체가 있어요. 그리고 굉장히 공인된 가장 톱 클래스의 학술단체와 연계해서 계속 우리 발표된 논문을 거기다 싣고. 그래서 그런 걸 많이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우리 대한민국이 제대로 발전해서 세계평화에 제대로 기여했으면 하는 마음은 다 같을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선생님은 또 정치학을 전공했던 교수이시기도 하시기 때문에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가야 될지요.

 

정천구 : 이제 이 분야에서 제가 말씀드릴 것은 뭐냐 하면 평화라는 것은 우선 개인적인 각성이 있어야 되고요, 그 다음에 국가적인 각성이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에 세계 인류적인 각성이 있어야 됩니다. 세 가지 단계인데, 개인의 각성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 원래 모든 결정은 국가가 하는 게 아니에요. 국가를 대신해서 개인이 하잖아요. 대통령이나 무슨 장관이나 이게 개인의 각성이 제일 중요해요. 그게 기본이 되어야지 개인은 빼고 국가다 이거 안 되고요. 또 국가를 빼고 국제사회다 이것도 안 돼요. 왜냐하면 국가가 중심이 되어야지 국제사회도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오늘날에는 특히 예를 들어서 미국에서부터, 국제주의를 그렇게 주장하던 미국에서부터도 아메리칸 퍼스트 그랬잖아요. 미국제일주의, 중국은 중국제일주의, 러시아는 러시아제일주의, 일본 독일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지금이 가장 민족주의를 반대하던 그런 국가들이 서구 국가들이 오히려 먼저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있어요. 그래서 자기 나라와 자기 나라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지 그것이 그 다음에 국제협력도 되는 것이지. 그래서 우리도 마찬가지로 코리아 퍼스트 우리가 먼저 하고 그 다음에 세계평화도 있어야 되고 특히 평화는 말이죠. 평화는 요새 평화를 많이들 주장하는데 평화라는 것이 이것이 옛날부터 로마 시대부터 고대부터 오는 명언이 있어요. 평화를 이룩하려고 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 If you want peace, prepare for war.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옛날에 임진왜란 때 유성룡하고 이순신 장군이 징비록하고 난중일기를 남겨서 열심히 준비하라고 그랬거든요. 전쟁에 대비하라고 하는데, 그것은 하나도 안 지키고 다시 몇백 년이 아니라 몇십 년 못 가서 다시 병자호란을 겪지 않습니까. 하나도 대비를 안 했어요. 그런데 그 후에도 계속 대비를 안 해서 구한말에는 나라가 망했잖아요. 300명 궁 수비대가 20명의 일본 사무라이들한테 당해서 명성황후가 엄청난 굴욕을 당하고 시해를 당했잖아요. 그런 것이 전부 전쟁에 대비하지 않고 평화만을 읊조린 그런 결과다. 그러니까 우리가 평화를 진짜 원하면 전쟁에도 대비하고 그래야 된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김봉래 : 정말 우리 모두의 각성이 필요한 것 같은데요, 이런 점에서 혹시 불교계에 건의하고 싶은 내용이 좀 있으실까요.

 

정천구 : 글쎄요. 제가 불교계 전체에 뭐. 그런데 꼭 이야기를 하자면 이제 우리 불교도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찾아야겠다. 우리가 지금 내용을 보면 전부 중국불교 아닙니까. 중국불교. 불교의 원천이 인도불교도 아니고 중국불교예요. 그러니까 우리도 우리 나름의 불교 선지식들이 얼마나 많은데, 원효대사를 비롯해 원효대사는 옛날에 중국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 났잖아요. 그래서 보살로 말하면 8지 보살, 지장보살의 단계까지 이룬 사람이거든요. 공식적으로. 중국 대사들하고 비교가 안 돼요. 그랬는데 그것을 다 버리고 왜 중국을 그렇게 밤낮 법문에도 중국 선사들만 하고 그러는 건 좀 벗어나야 된다.

 

김봉래 : 저희 BBS 불교방송 같은 매체에도 간단히 또 당부하고 싶은 말씀 계시면 해 주시죠.

 

정천구 : 거기까지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언론은 언론의 기본 틀이 있더라고요. 한국 언론도 세계 언론도 마찬가지인데 언론의 기본 틀이 요새 너무 이상하게 짜여가지고는 거기 아니면 또 다른 언론에 나타날 수 없는 그런 처지가 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외연을 좀 넓혀서 많이. 불교의 특징은 숨어 있는 사람이 자꾸 발견되는 거 아닙니까. 불교의 특징은 밤낮 옛날에 모든 선사들도 다 이름 없는 선사들이 금방 나타나서 주를 이루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게 특징인데, 언론도 그런 역할을 해서 많은 사람들을 발굴하고, 특히 요즘에 네트워크 시대가 되고 네트워크도 얘기를 하려면 저도 네트워크로 해서 유튜브를 지금 우리 백성욱연구원에서도 만들어서 계속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것 같이 하는데 다만 네트워크 시대에 우리가 아주 조심할 게 있는데, 이것이 이상하게 국제자본하고 연결돼서 네트워크가 잘못하면 인간의 정체성을 매트릭스 영화같이 현실 세계가 아니라 그냥 가상 세계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져서 인간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그래서 이거는 굉장히 독재, 독재자한테 유리하게 이용될 가능성이 너무 많거든요. 그런 데에 대해서도 상당히 앞으로 연구할 과제가 아닌가. 불교가 특히 개인의 각성과 그런 것을 강조하는 것이 불교이기 때문에 불교야말로 이 분야에 대해서 상당히 연구하고 또 개발해야 할 분야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봉래 : 네. 자. 끝으로 우리 정천구 이사장님의 앞으로 향후 원력 또 계획 듣는 것으로 오늘 인터뷰를 마칠까 합니다.

 

정천구 : 네. 감사합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이제 우리 백성욱연구원은 백성욱 선생님의 일생과 사상과 철학, 이런 것을 각 분야에서 발굴을 해서 후세에 남기자 그랬는데 앞으로는 어느 정도 틀은 잡아놨으니까 그 다음에 외연을 넓혀서 국내적으로도 많이 넓히고, 특히 해외에 많은 네트워크도 구성을 하고, 또 해외포교라고 그럴까요 그런 것도 해가지고 앞으로는 백성욱 선생님의 저작과 논문과 이런 것들에 대한 영역 작업 같은 것도 추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정천구 이사장님 오늘 방송 출연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정천구 : 네 감사합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백성욱연구원의 정천구 이사장님과 함께 했습니다.

 

김봉래 : 여러분 정천구 이사장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저는 백성욱 박사님의 비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부의 환경 탓하기에 앞서서 개인이 각성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각성을 바탕으로 해서 조화로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자는 적극적인 불교를 제시하고 실천하신 점을 되새깁니다. 모쪼록 백성욱 박사님의 뜻이 오롯이 실천되기를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불교방송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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