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 한 장면 캡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 한 장면 캡쳐.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어려워진 우리 집 꼬마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심심해” 입니다. 그래서 가끔 아파트 놀이터를 찾습니다. 예약하지 않으면 뭔가 놀이가 어려워진 시대에 예약없이 놀 수 있는 공간은 그곳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만만한 놀이공간도 아닙니다. 놀이터를 무대로 아이와 함께 이리저리 뛰다 보면 금방 체력은 바닥나고, 벤치에 잠시 앉기라도 하면 꼬마의 ‘심심해’ 주문이 무섭게 달려듭니다. 형제자매 없이 크는 아이의 놀이 상대는 부모뿐입니다. 그래서 간혹 소환되는 게, 움직임을 줄인 옛 놀이들입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가쁜 호흡을 고를 수 있다면, ‘숨바꼭질’은 달콤한 휴식마저 제공합니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까지 제 일상 대부분은 온종일 집 앞 공터에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공터에서는 땅을 무대로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는 다양한 놀이가 열렸고, 그런 놀이는 해 질 녘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끝이 났습니다.

추석 연휴에 맞춰 개봉해 글로벌 흥행 돌풍을 일으킨 넷플릭스 시리즈 드라마 ‘오징어 게임’. 가끔 동네 놀이터에서나 소환되는 옛 놀이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유명 배우들의 열연 속에 요즘 전 세계적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 ‘기생충’이 한국적 소재로 인류를 관통하는 계층과 계급 문제, 자본의 노예가 된 비정한 현실을 고발했듯이, ‘오징어게임’도 비슷한 전달방식으로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습니다. 천문학적 빚에 쫓기는 가방끈 긴 펀드매니저와 자유를 찾아 탈출한 북한이탈주민, 파업 중 동료를 잃은 해고 노동자와 임금 체불에 고통받는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여성과 노인들, 여기에 늘 빠지지 않는 영원한 악역 조폭들까지.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지구촌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사회적 약자이자 못된 악역들입니다.

드라마는 ‘딱지치기’부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오징어게임’에 이르는 유년시절 즐거운 추억 놀이들에서 순진했던 동심을 죄다 빼내고 있습니다. ‘놀이에서 지면 죽는다’는 게임법칙을 어른스럽게(?) 해석한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논리는 마치 ‘어른들을 위한 잔혹 동화’를 읽는 듯 합니다. 그래서 다소 거칠고 선정적이어서 보기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돈을 벌고 생존을 위해 벌이는 어른들의 놀이 아닌 놀이는 암투와 협잡, 배신으로 얼룩진 우리네 현실과 묘한 '기시감'으로 닮아 있습니다. 

비정한 현실의 답은 늘 ‘휴머니즘’이게 마련이지만, 드라마는 여기에도 의문을 품습니다. 휴머니즘도 정작 코앞에 닥친 생존 앞에서는 무용지물이고 가식적일 수 있다는 물음표입니다. 정황상 휴머니즘을 실현할 것으로 예상되는 드라마 속 주인공 기훈(이정재 분) 역시, 정작 자신의 생존 앞에서는 오히려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 죽음을 피합니다. 다만 기훈이 죄책감 때문에 우승 상금 456억 원을 쓰지 않고, 자발적인 가난을 택하는 모습에서는 휴머니즘을 넘어서는 또 다른 삶의 화두를 던집니다.

동심 가득했던 추억들이 주변에서 점점 사라지고, 적자생존과 승자독식, 각자도생의 논리만이 광풍처럼 번지는 세상입니다.

훗날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동심 가득 담긴 놀이를 기억하며 비정한 어른의 일상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체력이 닿는 한, 더 많이 놀아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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