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이 뜨지 않는경우 여기를 클릭하여주세요.
 

< 앵커 >

오는 15일이면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맞은 8.15 광복 7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BBS 뉴스는 광복 76주년을 맞아 일제 강점기 불교계 항일운동의 발자취를 재조명하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시간으로 불교계 독립 운동가들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활동을 집중 조명해 봤습니다.

정영석 기자가 전합니다.

 

< 리포터 >

3.1 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으로 독립 운동을 이끌었던 용성스님.

'대한민국'이란 국호가 용성스님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증언은 지금도 불교계를 비롯한 학계 등의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용성스님 손상좌인 죽림정사 조실 불심 도문 대종사는 3.1운동이 '대한제국 부흥 운동'으로 출발했지만 용성스님이 '대한민국 수립 운동'으로 해야 한다고 제안해 민족 대표들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불심 도문 대종사 / 조계종 명예 원로의원(장수 죽림정사 조실): 대한민국의 국호를 말씀드리고, 손병희 교주와 민족 대표가 받아들여 대한제국부흥운동을 대한민국수립운동으로 하자해서 운동이 시작돼서 대한민국의 국호를 용성 조사님께서 일러주셨습니다.]

3.1운동 때 사용할 깃발로 반도기가 거론됐지만, 우주의 진리가 담긴 태극기를 들자고 제안한 것도 용성스님이었다고 도문스님은 전했습니다.

이 증언대로라면 당시 33명 민족 대표가 주도한 독립 운동의 크고 작은 일들이 용성스님을 거쳐 결정됐다는 의미입니다.

출가 수행자이자 독립 운동가, 또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글을 남긴 시인 만해 한용운 스님.

옥중에서 친필로 쓴 '조선 독립의 서'는 조국의 독립을 향한 기개가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무려 34페이지 분량에 빼곡히 적어 강조한 이 글은 1919년 11월 4일자 독립신문에 실리게 됩니다.

[최정식/ 국가보훈처 소통총괄팀장 (2019년 '6월의 독립운동가' 만해스님 선정 당시): (만해 한용운)선생은 일제말기 총동원체제 아래 자행된 황민화 정책의 거센 파도 속에서도 민족적 자존심을 꺾지 않았으며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 1943년 조선인 학병 출정 반대운동 등을 펼치셨습니다.]

'일심회'라는 비밀결사조직을 꾸려 불교계 독립운동을 진두지휘했던 백초월 스님.

17살에 지리산 영원사로 출가한 뒤, 서울로 올라와 진관사를 거점으로 독립운동에 몸을 던집니다.

백초월 스님은 각 사찰의 군자금을 모아 상해임시정부에 전달하고, 젊은 불자들을 국외에 독립투사로 내보내는 등 불교계를 기반으로 항일운동을 이끌었습니다.

독립운동의 상징, 백범 김구 선생은 공주 마곡사에서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을 받고, 스님으로서 애국충정의 의지를 더욱 다졌습니다.

항일 독립 운동의 최전선에서 만해, 용성, 초월스님 등이 행동으로 실천한 숭고한 애국정신은 8.15 광복 76주년을 맞아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BBS 뉴스 정영석입니다.

(영상취재 / 강인호)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