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이요.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선교가 모두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불교가 전래 되면서 동북아시아의 불교, 특히 한국불교는 교학보다 선종에 기우는 듯합니다. 귀족과 지배계층의 종교였던 불교가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 등 깨달음이 문자를 떠나서도 이뤄질 수 있음을 선종이 알리면서 급속히 퍼진 측면이 분명 있을 겁니다. 과거 한자를 안다는 것 자체가 힘이요. 글을 읽는 이가 곧 지배계층이던 시절이 한참 전에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불교하면 교학보다 선과 수행을 먼저 떠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글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합니다. 특히 글은 우리가 가지고 있으나 인지하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을 일깨워 우리들에게 감동을 전합니다. 글쓴이가 일반인과 다른 관점에서 바라 본 생각과 자연, 사물, 일상과 일화 등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수행을 통해 마음을 닦은 출가자의 글은 더욱 맑고 담백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스님출신의 문학가가 많은 것도 그러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만해 한용운 스님의 시와 우리사회에 무소유의 가치를 알린 법정스님의 글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일 것입니다. 특히 두 스님의 글이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것은 글과 행이 일치했기 때문일 겁니다. 만해스님은 함께 했던 독립 운동가들이 하나 둘 변절 했을 때에도 홀로 굳게 지조를 지켰고, 법정스님은 본인 스스로가 글로 밝힌 무소유의 가치에 따라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두 스님이 공통적으로 썼던 글이 있습니다. 바로 불교성전입니다. 만해 한용운 스님은 당시 불교계에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개혁가로 1913년 조선불교유신론을 쓰기도 했습니다. 불교개혁에 목소리를 높이고 앞장섰던 스님은 이듬해인 1914년 불교대전을 편찬했습니다. 홀로 방대한 불교경전을 직접 읽고 가려 뽑아 한 권의 된 불교성전을 최초로 만든 겁니다. 스님의 대표작 님의 침묵1926년에 나왔으니, 그 한참 전 심혈을 기울여 낸 책이 불교성전입니다. 법정스님 또한 만해스님처럼 불교성전 발간에 앞장섰고, 1972년 첫 우리말 불교성전을 책임 편찬했습니다. 스님의 대표적 산문집인 무소유가 1976년에 나왔으니, 스님은 국민적 수필 무소유에 앞서 부처님말씀을 쉬운 우리말로 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겁니다.

부처님은 자등명, 법등명을 강조했습니다. 자기 자신과 법을 등불로 정진하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은 자신을 따르라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불교가 기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일 겁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불교성전은 유일신의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한 권의 성경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최초의 불교성전 또한 서구에 불교를 알리기 위해 1881년 미국인에 의해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눈 밝은 선지식이었던 만해스님과 법정스님은 왜 불교성전 편찬에 열중했던 것일까요? 일생을 바쳐도 다 읽지 못하는 부처님 말씀을 가려 뽑아 보다 많은 이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한 일념 때문일 겁니다. 과거 선사들이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수행으로 마음을 밝히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불교를 접하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로 된 불교성전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필요해 보입니다. 올해 한국불교는 법정스님의 숨결이 살아 있는 동국역경원 불교성전이 50년 만에 전면 재개정돼 나왔고, 최초의 조계종 종단본 불교성전 또한 발간됐습니다. 선사들이 마음을 밝혀 불법홍포의 대전환을 이룩했듯이 불교성전을 어떻게 읽고 활용해 일상에서 부처님가르침을 실천할지는 불자들에게 주어진 지금 이 시대의 화두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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