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이건희 회장은 국내 최대의 국보와 보물 소유자였습니다. 국보 23, 보물 80점으로 각각 전체의 7%6%를 소유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수집가인 간송이 수집한 국보가 이 회장의 절반인 12점 정도였으니, 이 회장은 수집가로서도 전무후무한 세계 최고였습니다. 최근 국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은 국보 14, 보물 46건 등 23천여 점에 이릅니다. 금동보살입상과 보물 고려천수관음보살도, 월인석보 권11, 12 등 국가 지정 문화재 뿐만 아니라, 모네와 살바도르 달리, 피카소 등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과 이중섭의 황소 등 한국근대명작이 총 망라 돼 세계의 이목을 다시 한 번 집중시켰습니다. 오늘날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이끌었던 기업가가 왜, 어떻게 이같이 엄청난 규모와 가치의 문화재와 예술품을 수집한 것일까? 관련 취재를 하면서 예전에 인터뷰 했던 예술가와 수집가들의 발언이 떠올라 정리해 봤습니다. 

문화재 수집은 호암의 유훈

수집가이자, 사립박물관 관장이기도 한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동서양을 넘나드는 이건희 컬렉션의 뿌리는 부친 호암 이병철 회장에게서 시작된다고 강조했습니다. 1976년 박물관협회 창립을 위해 호암 이병철 회장을 만났는데, 그때 호암이 당시 함께 배석한 이건희 실장을 가리키며, 앞으로 미술관은 이건희 회장이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김 이사장은 컬렉션은 보통 수집가의 신념과 재력, 안목이 겸비 돼야 하는데 이건희 컬렉션은 부친의 신념과 안목을 계승해 문화재에서 시작해 세계로 뻗어나갔다는 겁니다. 돈만 있다고 해서 이정도의 컬렉션을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은 여러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홍라희 여사와 컬렉터로서의 계기는?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고 최영도 변호사는 동서양 미술과 문화재에 해박했고, 그 자신이 대단한 토기 수집가였습니다. 생전에 인터뷰를 하면서 어떻게 수집가의 길로 들어섰냐고 물어보니 군사정권 당시 판사로서 양심에 따라 심판을 했다가 어쩔 수 없이 법복을 벗게 되면서 그 허탈감을 극복하기 위해 토기를 수집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엘리트 법조인의 길을 걸어왔던 그는 당시 수집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이 드는 수집을 아내가 적극 지지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을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부친의 영향으로 이건희 회장은 동양화와 문화재, 도자기류에 높은 식견을 갖고 있었고 컬렉터로서의 시작도 우리문화재와 예술품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이건희 컬렉션의 반쪽은 부인 홍라희 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부친의 유훈을 아내를 통해 구현했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 최영도 변호사처럼 어떠한 절대적 계기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아마 부친에게서 삼성의 후계자로 지명 됐고, 반도체 신화를 써내려간 이건희 회장은 기업경영과 함께 수집가로의 사명을 새의 양 날개처럼 함께 추구해야 했던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기업가로서 또 수집가로서 부친을 뛰어넘어야 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가와 수집가...“마음의 기쁨과 기의 조화

무산 허회태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서예가입니다. 국전 대상 수상 이후 이모그래피를 창시하더니, 현재는 입체조형 예술로 보폭을 넓히며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몇차례 취재 후 사석에서 만난 그는 작품의뢰가 들어오면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작품에 임한다고 합니다. 수집가에게 어울리는 글귀를 고르고, 자신의 기가 소장자에게 닿기를 기원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 소장자가 이후에 하던 일이 잘 풀리고, 좋은 일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의 일처럼 기쁘다고 말합니다. 

호암 이병철 회장은 선대의 고향 집과 목가구류를 늘 그리워했고 30대부터 미술품을 수집했다고 합니다. 호암은 생전에 나는 수집품보다 그 물건으로부터 마음의 기쁨과 기의 조화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이 있다면 후손들에게 물려줄 미술품뿐이다라고 강조하며 수집가로서의 가치와 신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대목장인 이광복 도편수를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당시 이 도편수가 필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선조들은 유독 나무로만 집을 지었을까요? 필자가 우물쭈물 하자 이 도편수는 음양오행에 의해 그러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나무는 인간과 공명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특히 아파트에 사는 남자들의 경우 나무를 가까이에 두라고 조언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여러 문화재와 예술품 중에서 특히 도기를 아꼈다고 합니다. 육체보다 정신의 그릇이 더욱 컸던 이건희 회장은 선대 호암처럼 결단의 순간에 도자기에서 기쁨을 얻고 무의식 중에 기의 조화를 추구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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