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뜨고 있는 배우 윤여정에 대해 개인적으로 특별한 기억들을 갖고 있다. 먼저 영화 ‘화녀’에 나온 윤여정에 대한 기억이다. 한국 영화계의 천재 감독,시대를 앞서가는 감독으로 불렸던 김기영 감독의 1971년 영화 ‘하녀’에서 윤여정은 부잣집에서 일하는 가정부 역할로 나왔다. 70년대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파격적인 역할이었다. 시골에서 상경해 부잣집에 가정부로 취직했다가 주인집 남자의 아이를 낙태하는 캐릭터로 광기와 집착에 사로잡힌 캐릭터를 24살의 신예 윤여정은 특유의 파격적인 연기로 잘 소화해냈다.

영화 화녀의 윤여정은 인형같은 외모의 전형적인 여배우상과는 확실하게 다른 캐릭터였다. 윤 씨는 스스로도 젊었을 때 예쁘지 않았다고 털어놓으며 김기영 감독이 외모보다는 특유의 색깔을 주목했던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여정의 묘한 매력은 한국 여배우의 새로운 발견으로 여겨질 정도로 필자에게는 깊은 여운을 안겨줬다. 윤여정은 특유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고집이 있어 보이는 표정,때로는 예민해보이는 성격까지 어느 하나 예사롭지 않은 면을 두루 갖춘 여배우로 머릿속에 각인됐다.

윤여정에 대한 두 번째 기억은 가수 조영남과의 결혼 생활과 이혼에 대한 것이다. 파격의 아이콘이라 불릴 정도로 남다른 개성과 재능을 지닌 가수 조영남과 윤여정은 1974년에 결혼했고 윤여정은 한창 잘나가던 배우 생활을 접고 낯선 땅 미국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13년간의 결혼 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유분방하면서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성격의 조영남과 오랜시간 가정을 이루고 살기에는 여러 가지로 애로 사항이 많았던 셈이다. 평범하지 않은 스타일과 캐릭터를 지닌 두 사람의 강한 개성이 파열음을 일으킬 소지가 처음부터 많았던 것이다.

윤여정은 조영남과 헤어진 뒤 다시 연기자로 복귀해 인상적인 연기와 꾸준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해왔다. 마침내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 최초의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것을 보면서 주머니 속의 송곳이 옷을 뚫고 나오듯 오랜 세월 쌓은 내공이 마침내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며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윤여정이 74살에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남긴 것을 보면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라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가 남긴 명언이 새삼 떠올랐다.

요즘 주목하는 것은 윤여정 특유의 화법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함께 했던 헐리우드의 대스타 브래드 피트에게 어떤 냄새가 나느냐는 외신 기자의 질문에 “나는 냄새를 맡지 않았다. 나는 개가 아니다”라고 대답해 특유의 위트와 함께 무례한 질문을 한 기자에게 제대로 한 방을 먹이는 기지도 발휘했다. 특히 윤여정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마치고 LA총영사관에서 한국 특파원단과 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두고두고 곱씹을만한 말들을 쏟아냈다. “앞으로 최고의 순간은 없을 것이다. 나는 최고, 그런 거 싫다. 경쟁이 싫다. 1등 되는 것 하지 말고 ‘최중(最中)’이 되면 안 되나. 같이 살면 안 되나”라고 했다.

윤여정의 언급은 지금 한국 사회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치열한 경쟁과 대결을 통해 앞만 바라보는 성장만을 추구하다 공동체의 미덕과 화합의 정신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에 따끔한 돌직구를 날린 셈이다. 사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해석하는 습관에 젖어들어있는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갑과 을, 가해자와 피해자,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으로 나누어 상대방을 깊게 이해해보려고 하는 대화의 기술보다는 자기 논리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논쟁을 더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가 된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바꿔보려는 노력이 너무 부족해서 코로나19라는 고난을 맞았는지도 모른다. 양극단을 배제하고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중도의 철학은 언제까지 교과서에 나오는 가르침으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부쩍 많아진 요즘, 70대 노배우의 의미심장한 발언이 새삼 귓전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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