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반복된다. 어제오늘 갑자기 발생한 일도 아니다. 우리 사회 '갑질' 문제에 대한 얘기다. 포털사이트에 '갑질'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면 온갖 종류의 갑질 피해와 관련된 기사들이 넘쳐난다. 갑질 피해 예방을 주제로 열리는 강연에서는 우리들의 인식 변화를 촉구하지만, 이미 그러기엔 너무 늦은 것 아닌가 하는 회의감마저 들기도 한다. 갑질을 견디다 못해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도 찰나의 안타까운 마음을 불러일으킬 뿐 금세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고 만다. 끊임없이 갑질 관련 피해자들은 속출하고, 사망 사고가 발생하지만 우리 사회는 오히려 갑질에 둔감해져만 가는 것 같다.

'갑질’이라는 단어에 연관 검색어처럼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경비 아저씨'라고 부르는 게 더 익숙한 경비원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입주민들의 갑질만큼이나 두려운 게 있다면 그건 과로로 인한 죽음일 것이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과로사로 세상을 떠난 경비원은 74명. 이 기간 동안 과로성 질환을 인정받은 경비원은 173명으로 집계된다. 최근 3년간, 247명이 과로로 인해 세상을 떠났거나 질병을 얻었다는 의미다. 과로사가 발생한 모든 직업군 가운데 운수업 종사자들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과로사를 단순히 개인의 죽음으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일하는 중 사고가 발생해 목숨을 잃는 사망 사고처럼 말 그대로, 일을 하다가 죽는 것이다. 과로사로 세상을 떠난 경비원 74명 가운데 80%가 자신이 일하던 아파트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통계는 이들의 근무 환경과 노동 조건이 얼마나 열악한 지를 단편적으로 드러낸다.

전문가들은 과로사의 주요 원인이 경비원들의 24시간 교대 근무에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전국의 90%에 가까운 아파트 단지가 그러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근로계약서에 휴게 시간은 보장돼 있지만, 실제로 이를 보장받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초소에서 경비업무를 담당하는 것 외에도 아파트를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한 업무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쓰레기 분리수거, 교통 안내, 시설 관리, 밤이든 낮이든 불러대는 입주민들의 민원 처리까지 몸이 여러 개여도 모자를 판이다. 정해진 휴식 시간을 줄이고, 심지어 수면시간까지 줄여야만 과중한 업무를 온전히 감당해 낼 수 있다. 24시간 교대제로 인해 하루 평균 18시간에 가까운 노동을 해야 하는 데 비해, 휴게시간과 수면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인 것이다. 심지어 휴게공간마저 아파트 지하실처럼 열악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경비 초소를 휴게공간과 겸용으로 사용하는 곳도 40%가 넘는다. 업무에서 벗어나 잠시 수면을 취하거나 오롯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가 사실상 없다 보니 경비원들은 만성 피로를 항상 달고 살 수밖에 없다.

하루에도 몇 건씩 쏟아져 나오는 경비원 갑질 피해 기사에 비해 경비원 과로사는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경비원들은 일반적으로 길게는 12개월, 짧게는 3개월 단위로 근로 계약을 매번 갱신한다. 짧은 계약 기간으로 인해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칫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떠안고 사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혹여나 입주민들 눈 밖에 날까봐 전전긍긍하며 부당한 지시를 받아들였고, 동료들의 피해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면서 수백 명의 사용자에게 감시당하고, 수백 명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경비원 과로사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이다. 우리 사회는 자신의 아파트 집값에 대해선 그토록 많은 관심과 신경을 기울이면서 정작 우리들의 안전한 일상을 지켜주는 경비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경비원들도 우리와 함께 사는 아파트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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