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두 번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선고 공판이 열렸습니다. 석 달 전,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이 같은 내용의 소를 제기해 ‘승소’ 판결을 받았기에 또 한번 법원의 전향적 판결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더 커진 상황. 하지만 결과는 ‘각하’였습니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판결문을 들여다봤습니다. 

일단 두 재판부는 공통적으로 ‘위안부’ 자체가 일본의 주권적 행위라고 봤습니다. 주권적 행위냐 아니냐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바로 국가 면제론(한 국가가 다른 나라 재판에서 피고가 되지 아니함)의 판단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다수의 국가들은 사법적·상업적 행위에 대해선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그동안 피해자 측 변호인단은, 위안부 동원 과정 일부에 민간업자들이 관여했고 그들이 상업적 이익을 얻었을 여지가 있어 ‘상업적 행위’라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두 재판부 모두, ‘위안부’는 효율적인 군 통제 등을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또 당시 일본제국 정부의 정책적 판단도 들어갔다고 봤습니다.

‘예외’를 선택하느냐, ‘관행’을 따르느냐. 여기서 두 재판부의 선택은 갈렸습니다. 첫 소송을 담당한 재판부는 과감히 관행을 탈피했습니다. ‘위안부’는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으로, 아무리 한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무조건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겁니다. 또 재판권을 면제하게 되면 피해자들이 권리를 제대로 구제받지 못한다는 것이 첫 소송 재판부의 입장이었습니다. 재판부는 또 국가면제 이론은 고정적인 가치가 아니며, 국제질서 변동에 따라 계속 수정되고 있다고도 설명했습니다. 반면 두 번째 소송의 재판부는 철저하게 관행을 따랐습니다. 주권적 행위에 대해 국가면제론을 부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판단입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193개 UN 회원국 중 19.2%에 불과한 37개국만 불법행위에 관해 국가 면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내용을 판결문에 기재하는 등 국제 사회 흐름을 수치화하며 관행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에, 국가 면제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그 범위 역시 각 나라별로 모두 달라 ‘통일성’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2015년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두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첫 재판부는 해당 합의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포괄하지 못했고, 그 성격 역시 조약이 아닌 ‘정치적 합의’라고 봤습니다. 또 위안부 합의는 한일 양국 간 첨예한 갈등이 존재하는 문제이자 동시에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임에도 국무회의 심의와 같은 헌법상 조약체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소송 재판부는 반대의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피해자의 의견을 직접 수렴하지 않는 등 일부 절차적 문제점이 있고 ‘정치적 합의’라는 한계 또한 존재하지만, 위 합의로서 피해자들을 위한 권리구제수단이 마련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아울러 전체 피해자 240명 가운데 41.3%에 해당하는 99명이 화해치유재단으로부터 현금을 수령하며 어느 정도 구제를 받았다고도 재판부는 강조했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뻔뻔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어제 공개된 2021년판 외교청서를 살펴보면, 일본은 여전히 2015년 합의를 통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또 법원이 내린 첫 승소 판결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두 번째 소송을 맡은 재판부가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며 공을 정부쪽으로 넘겼지만, 전혀 다른 두 판결이 나오면서 외교적 셈법은 더 복잡해져버렸습니다. 현재 생존해 계신 15명의 피해 할머니들의 기다림은 끝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선고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행정부가 제대로 피해자들 권리를 구제했거나, 외교부가 알아서 일본과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법원에 왜 왔겠습니까”라는  피해자 측 변호인단의 외침이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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