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풀러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숙 여사와 함께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맞는 현장 취재를 청와대 출입기자단 대표로 들어가 취재하는 일이다. 현장에서 대통령 부부가 어떻게 백신 주사를 맞았는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를 그대로 받아 적어서 기자단에 공유하는게 풀러의 임무다.

보고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하면 되는 일이지만, 조금은 긴장할 수 밖에 없다. 내 눈과 귀와 펜을 잡은 손 끝에 따라 국내 언론들이 신문과 방송, 인터넷에 담는 기사의 틀이나 성격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현장의 풀이에요” 친한 후배가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그래서 더욱 긴장됐다.

종로구 보건소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대통령 내외가 방문하는 터라 보건소장과 부소장은 모두 말쑥한 정장차림으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일찌감치 기립하고 있었다.

접종실에는 적어도 수천번 이상은 주사를 놓았을 법한 베테랑 간호사와 젊은 시절 대형 병원에서 한 시절을 풍미했을 듯한 일흔은 지긋이 넘어보이는 예진의사가 저마다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다. 어떤 대사로 대통령 부부를 맞이해야 할지, 주사를 놓을 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를 연습하는데 약간의 긴장감과 떨림이 느껴졌다.

예행연습은 간단했다. 간호사가 냉장고에서 백신을 꺼낸다. 주사액을 주사기에 옮기고, 대통령에게 “오른팔을 자주 쓰시니 왼팔에 놓겠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접종을 한다. 그 과정에 한 카메라 기자가 “AZ(아스트라제네카) 라벨이 보이게 꺼내주세요”라고 주문한다. 친절한 간호사는 주사액이 담긴 작은 병을 돌려 ‘AZ’ 라고 씌어있는 라벨이 잘 보이게 하고, 다시 주사액을 빼는 시늉을 한다.

오전 9시, 예정대로 대통령 내외가 보건소 2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체열 측정을 한 뒤 접종실로 들어섰다. 접종실 안에는 청와대 풀 카메라 기자, 대통령의 활동 영상을 찍어 편집해 보관하는 청와대 전속실 직원들, 청와대 관계자와 보건소 관계자들로 가득했다.

풀러인 나는 소위 논란의 ‘가림막’ 뒤편에 서 있었다. 사실, 의혹을 제기한 입장에서 '가림막'이라고 표현해서 그렇지 흔한 사무실 책상용 나즈막한 파티션이었다. 주사기가 놓여있는 간호사의 책상은 누구라도 관심을 갖고 본다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오픈된 공간이었다. 예행 연습에서 떨린다며 미소를 짓던 30대 간호사는 연습할 때보다도 더 침착하게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했다.

 

‘주사 바꿔치기’라는 말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대통령 부부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는 ‘역사적인’ 현장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풀러로서 이 일이 억측으로 재구성돼 입소문을 타고 확산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인도에서 망명 정부를 이끌고 있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86)는 지난 6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마친 후 "심각한 문제를 막으려면 이 접종이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용기를 갖고 백신을 맞으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부터 인류를 구하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헌신하고 있다.  이 와중에 터무니 없는 억측은 인류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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