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3월, 서울중앙지법 로비에서 전북 팔성사 주지 법륜스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스님이 이른 새벽부터 서울행 열차에 올라탄 건, 불상을 되찾기 위해서였습니다. 1993년 8월의 어느 여름 날, 매일 지극정성으로 모시던 목조아미타불좌상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사찰 앞에는 2대의 트럭바퀴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전문 절도범의 소행이 확실했습니다. 그로부터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스님이 애타게 찾던 목조좌불은 30년 가까이 사립박물관을 운영해온 A씨의 무허가 창고에서 발견됐습니다.

A씨의 문화재 은닉 행위가 발각된 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2016년에도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창고에 불교미술품 16점과 지석 315점을 수집해 몰래 보관한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최종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두 번째로 법정에 선 A씨에게 법원은 징역1년6개월과 집행유예3년을 선고하고, 이전과 다르게 은닉 문화재에 대한 ‘몰수’까지 선고했습니다. A씨가 도난 문화재임을 알면서도 이를 취득한 것이 인정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방치됐던 도난 문화재들은 그렇게 제자리로 되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A씨는 올해 초 또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역시 죄명은 ‘문화재보호법 위반’. 그가 숨긴 문화재에는 화엄사 시왕도 등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불화는 딱딱하게 굳어 제대로 펼 수조차 없는 상태였고, 불상 역시 목재의 틈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귀중한 불교문화재들이 제대로 된 관리 없이 오랜 시간 방치됐음을 방증하는 현장이었던 겁니다. 불교계에서 A씨에 대한 엄벌을 촉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제2의, 제3의 A씨가 존재할 가능성 또한 큽니다. 문화재를 훔치고, 이를 팔고, 또 은닉하는 행위를 저지른 이가 비단 A씨 한 명 뿐일까요. 문화재청 통계에 따르면, 1985년과 2017년 사이 도난당한 문화재는 3만 여 건에 이릅니다. 문화재청에 통지되지 않은 사례까지 감안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됩니다. 검은 시장이 성행하는 이유는, A씨와 같이 출처를 불문하고 문화재를 구입해온 수집가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 문화재 도난의 악순환 또한 끊어낼 수 없습니다. 또 다시 법정에 선 A씨에게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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