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동해안 전경.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동해안 전경.

 평생 군부대라고는 대학시절 남동생 면회밖에 가보지 않았던 제가 동부전선 GOP(일반전초) 사단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북한 남성이 육군 22사단 철책을 넘어 귀순한 ‘철책 귀순’이 발생한 직후, 합동참모본부가 국방부 출입 기자단을 대상으로 진행한 GOP 현장 방문을 통해서입니다. 첫 일정은 점심 식사였습니다. 군부대 식당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자니 왠지 집에 가고 싶어지는게... 아, 이게 입대 첫날 군인들이 느끼는 심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대에서 준비한 군복 상의를 입고, 헬멧을 착용한 뒤 향한 곳은 GOP 철책. 부대원들이 매일 같이 순찰하는 철책 길을 등반하는데, 정말 집에 가고 싶더군요. 숨은 차오르지, 찬바람에 새빨개진 귀는 점점 아파오지, 뒤에 사람들이 줄줄이 따라오니 멈춰서 쉴 수도 없지... 죽을 맛이었습니다. 헉헉대며 고지에 오르니, 탁 트인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문제(?)의 22사단도 보였습니다. 보자마자 든 생각. 아, 여길 다 경계하는 게 가능하다고? 그만큼 험준한 산맥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22사단에서 유독 경계 실패가 자주 발생하고, ‘별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뭔지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뒤. 22사단은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바다를 헤엄쳐 온 북한 남성에 또 한 번 뚫렸습니다. 

 실제 22사단은 경계 책임구역이 육상과 해상을 합쳐 100km에 달합니다. 다른 사단의 4~5배지만, 투입되는 병력은 비슷합니다. 한 마디로, 경계에 구멍이 생기기 쉬운 구조인 겁니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16일 발생한 ‘헤엄 귀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해당 남성이 군 감시 장비에 10번 잡혔다고 밝혔습니다. 이 가운데 8번을 인지 못했는데, 2번은 경고등과 경고음이 발생하고 알림 창이 떴는데도 아무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2사단의 고충을 이해하면서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합참 설명은 이렇습니다. 당시 상황실에는 영상감시병 2명과 상황 간부 1명이 감시 카메라 화면을 확인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감시병은 각각 모니터 2개에 작게 분할되어 있는 감시 카메라 화면 9개를 30분간 집중해서 봐야 하는데, 경고가 발생할 타이밍에 하필이면 시스템 기준값을 설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황 간부 역시 임무 수행과 관련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군 관계자는 “2번의 경고 발생에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건 명백한 실책”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감시병 1명이 다른 업무를 병행하면서 여러 개의 카메라 화면을 봐야 하는 근무환경이 문제’라는 기자들의 지적에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계속되는 경계 실패에도 불구하고 군은 비슷한 대책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번 후속대책도, 앞선 사건들에서 이미 약속했던 ‘과학화경계시스템 보완’과 ‘배수로 전수조사’를 그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군은 2023년까지 AI 통합 시스템을 구축해 경계를 강화한다는 계획이지만, 경고를 인지하지 못했던 이번 사건에 비춰볼 때 근본 대책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무엇보다 22사단은 올해로 예정된 인근 23사단 해체가 진행되면 더 넓은 책임 구역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사단 병력을 늘릴 수도 없습니다. 인구 감소로 병력 인원 자체가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렵지만 새로운 경계 방법이 필요한 때입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1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22사단을 정밀 진단해 볼 생각”이라며 “부족한 부분을 상급 부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지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합참 역시 사단 임무수행 실태를 진단하고, 근무 여건을 보장할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환골탈태의 각오로 근본적 보완대책을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는 군의 약속이, ‘물샐틈 없는 철통 경계’로 이어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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