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거짓말을 하고 산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한 지 의문이 들 정도로 하루에도 몇 번씩 거짓말을 하고 산다.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거짓말의 유혹에 빠져든다. 거짓말을 못 하게 돼 일상이 제대로 꼬여버린 주인공이 등장하는 코미디 영화가 '웃픈(웃기면서 슬픈)' 이유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삶과 밀접한 거짓말은 대부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악의 없는 소소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남을 속이기 위해서,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내뱉은 거짓말은 꼬리를 잡힌 즉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우리는 깨닫게 된다. 거짓말로 신뢰를 잃어버리는 건 한순간이지만, 이를 회복하기 위해선 몇 배 이상의 노력과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난 4일,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대화 녹취록을 공개한 직후, 사법부는 국민 신뢰를 저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사법 농단'에 연루된 현직 판사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좋은 재판'으로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던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 논란'에는 '사법 농단'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법부에 여전히 드리워 있는 듯했다. "그런 말 한 적 없다"던 김 대법원장은 공식 입장을 하루 만에 뒤집어, "부정확한 기억에 의존했다"고 말을 바꿨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 김 대법원장은 공개 사과 한 마디 이후 줄곧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 내내 한숨만 내쉬었다. 오랜 침묵 속에 "지금 사법부가 처한 상황이 매우 안타깝고, 솔직한 심정으로 자괴감마저 든다"는 게 말의 전부였다. 그 말 한마디는 마치 사법부 전체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요즘 말로 '할말하않'. 수없이 많은 말들이 턱밑까지 차오르지만, 이마저도 제 얼굴에 침 뱉기이기에 말을 아끼는 듯했다.

사법부 수장의 거짓말로 인해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도 바닥으로 추락했다. 마지막 기댈 언덕마저 빼앗긴 국민들의 실망감은 사법부 구성원들의 마음 만큼이나 아프다.

그래도 사법부 구성원 대부분이 작금의 사태를 위기라고 인식 있다는 점에서 국민 신뢰 회복의 희망도 엿볼 수 있다. 지난달 28일 이뤄진 인사를 통해 새롭게 취임한 법원장들은 취임 일성으로 국민 신뢰 회복을 언급했다. 김광태 신임 서울고등법원장은 사법부가 안팎으로 어려운 시련에 직면에 있지만, 이를 극복하는 길은 국민 신뢰를 얻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강영수 신임 인천지방법원장도 좋은 재판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신뢰받는 법원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잠을 줄여가며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판결문을 써 내려가고, 검토를 거듭하는 수많은 법관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이들마저 불신의 대상이 될 필요는 없다. 모두가 납득할만한 '좋은 재판'이 늘어난다면 존경받던 과거 법관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를 향한 국민의 신뢰는 아무런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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