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다녔던 1980년대말부터 90년대초를 돌아보면 최루탄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했던 캠퍼스의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시대의 지성인이라면 당연히 독재 정권에 저항해야한다는 의무감이 마음 속을 무겁게 짓눌렀던 시절이기도 하다. 시위 현장에서 목청껏 구호를 외치는 동기와 선배들을 바라보면서 용기와 당당함이 실종된 내 자신을 한없이 자책하기도 했다. 소심한 대학생 시절, 출구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필자에게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처럼 반가운 존재로 다가온 것이 있었다. 바로 학교 정문 맞은편에 있었던 사회과학서점이다. 

치열했던 시위와 집회가 끝나고 주위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이 곳에 들어가 책장에 꽃혀있는 수많은 책들과 마주했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종이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비로소 요동치던 맥박이 진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수업 거부를 하고 격렬한 데모를 해야하는지, 같은 또래의 전경들에게 왜 돌멩이와 화염병을 던져야하는지 고민하던 그 시절, 책방은 어쩌면 마음의 안식처이자 도피처가 됐던 것 같다. 당시에 읽은 ‘철학의 기초이론’, 역사란 무엇인가, 유시민의 항소 이유서,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리영희 교수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등은 그 시절 대학생들에게 좌익 사상을 심어준다는 이른바 이적 표현물로 분류됐던 책들이기도 했다. 

학교앞 서점외에도 자주가던 곳이 바로 서울 청계천 헌책방 거리였다. 참고서와 교재, 소설책과 오래된 잡지 등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는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다. 수많은 책 더미들 속을 몇시간씩 헤맨끝에 찾아낸 월간 팝송 창간호, 최인호 작가의 소설 ‘고래사냥’ 등을 갖고 나올때는 마치 온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때로는 책 갈피에서 천원 짜리 지폐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오래돼서 종이가 누렇게 변했거나 일부 페이지가 찢어져 나간 경우도 많았지만 원래 주인이 아예 읽지도 않은 듯 새 책처럼 깨끗한 책들도 적지 않았다. 다 읽은 책이나 읽기 싫었던 책들을 들고 나와 청계천의 헌책방들을 돌아다니며 꼭 읽고 싶었던 책들로 교환해 집으로 돌아올때는 마치 나폴레옹이 전투에서 이기고 개선장군이 되어 파리로 돌아온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택가에 자리한 동네 책방들에 대한 기억들도 새록새록 샘솟는다. 책을 보는 척하면서 젊은 여자 책 주인을 힐끗힐끗 쳐다보기도 했고 사지도 않을 책을 집어들어 가격을 물어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해보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독서실 총무나 서점 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학교앞에 자주가던 독서실의 젊은 총무는 항상 고독한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의도적인 연출이었는지는 몰라도 지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독서실에 다니던 여학생들의 관심을 끌었고 급기야 한 여학생과 사귀기까지 했다. 그때는 정말 독서실 총무가 한없이 부럽기만 했다. 대학 시절에는 일부러 옆구리에 철학 서적 등을 끼고 돌아다녔다. 항상 책과 가까이 하는 이미지를 연출해보려는 욕심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적인 분위기는 옆구리에 억지로 끼여 놓은 책 한권으로 만들어지는게 아니었다. 나이가 지긋해지면 헌책방을 열어 좋아하는 책을 실컷 보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소소한 일상의 공간이 돼준 동네 책방, 헌책방들이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19의 충격에다 도서 가격을 일정 비율 이상 할인하지 못하도록 하는 도서 정가제를 완화하려는 정부의 방침이 설 자리를 더욱 좁게 만들고 있다. 김영하 작가는 동네 책방을 출판계의 모세혈관이라고 했다. 모세혈관이 손상되면 뇌졸중과 같은 큰 병을 앓게 된다. 코로나19로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다니지도 못하고 가뜩이나 고달픈 우리 일상에 쉼표가 하나씩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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