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예상과 달리 차분했다. 거대 기업을 상대로 수년째 힘든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투사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날의 아픈 기억을 하나씩 되짚을 때는 애써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의 기억 속 하나하나의 장면들은 최근 일처럼 너무나 생생했고, 수년 전 날짜도 정확하게 일치했다. 머리로 수천 번을 되뇌었고, 마음으로 얼마나 긴 세월을 붙잡고 있었으면 이럴까라는 생각에 순간 경외심이 일기도 했다. 십여 년간 사랑하는 아내의 병간호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지난해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야만 했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가족 김태종 씨의 이야기다.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들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피해 사례와 원료 성분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동물실험 등을 통해 인과관계가 직접 증명되지 않았다는 게 무죄 판결의 중요 판단 근거로 작용했다. 판결 직후, 가습기 피해자들은 법원 앞에서 "내 몸이 증거"라며 목 놓아 울었다. 재판에 증인으로 참여했던 전문가들도 기자회견을 열어 "재판부가 과학적 방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 씨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여력이 될 때마다 현장에 나가서 힘을 보탰고, 전문가들의 얘기는 녹음을 한 뒤 끊임없이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이러한 김 씨도 처음에는 지극히 일반적이고 평범한 가정의 가장일 뿐이었다. 처음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던 때를 떠올리며 당시에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행이 실감조차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십여 년 동안 아내 병간호에만 매달렸던 김태종 씨에게는 어느 베테랑 간병인 못지않게 많은 지식과 실력이 쌓였다. 이 같은 아내에 대한 지극정성이 있었기에 김 씨의 아내는 최초 폐질환이 발병한 이후에도 오랜 시간을 버텼을지 모른다. 실례가 될 거란 걸 알면서도 김 씨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일도 다시 시작했고, 두 아들들도 잘 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이러한 경우는 피해자들 가운데 극히 드물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머지 피해자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심지어 가족 구성원 간에 갈라서는 사례도 여러 차례 봤다고 언급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경제 활동을 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간병인 없이 생활할 수 없는 환자가 됐고, 자신이 직접 틀어준 가습기 살균제에 사랑하는 아이가 세상을 떠났는데 정상적인 가정이 있겠느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김 씨를 비롯한 피해자 가족들은 옥시 사건부터 십년 가까이 이어진 긴 싸움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이러한 이유로 함께 싸우던 많은 피해자 가족들 가운데 다수가 중간에 연락이 두절됐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무관심, 그리고 보상은커녕 사과 한마디 없는 기업의 뻔뻔함에 많은 피해자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고 중도에 싸움을 포기했다. 피해자가 있는 데 가해자는 없는 상식 밖의 상황,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재판부의 판결에 김 씨를 비롯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배신감과 답답함을 느꼈다. 재판에 앞서 이미 예정됐던 피해자들과 기업 간 협의도 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앞으로 어떻게될지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김 씨는 인터뷰 중간에 "(가습기 살균제가) 좋다고 해서 마트에서 샀고, 내 손으로 직접 넣어줬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국민 법 감정과 동떨어진 최근 사법부의 판결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김 씨는 이 나라의 국민으로 계속 살아야하나 라는 회의감까지도 들었다고 했다.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감은 수차례 좌절로 바뀌었지만, 김 씨가 힘든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건 아내 때문이다. 김 씨는 먼저 떠난 아내의 빈자리가 아직도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처럼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상처가 온전히 치유되지 않는 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겨울이 끝나면 봄이 오는 게 자연의 이치라는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지난한 겨울이 유독 길게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