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 양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이 큽니다.

우선, 사람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정인 양이 숨진 원인은 복부 손상에 의한 사망입니다. 소장과 대장, 췌장 등 몸속 장기들이 손상됐고, 머리 뒤쪽과 쇄골, 오른쪽 척추, 넓적다리 등 몸 곳곳이 맞아 부러지거나 피가 고인 흔적 투성이입니다. 어른도 참기 힘들었을 고통을 말못하는 아이가 고스란히 받아냈을 생각을 하면, 등줄기에 소름이 끼치고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이를 학대하면서도 아이 몫의 재난지원금이 나오는지를 상담까지 했다니, 양부모의 철면피에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수법이 오죽 잔인했으면 일부 시민들이 ‘아파트 청약을 위한 입양’ 의혹까지 제기했을까요. 아이를 한 인격체가 아닌 못된 어른들의 욕심 채우는 도구로 봤기 때문일 겁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은 아이가 미워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과 불행은 무게가 다르다고 합니다. 아이의 웃음과 재간 한 번에 미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러듭니다. 아이의 엄마이자 아빠이기를 스스로 선택했기에 육아의 고통도 끝까지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그 고통을 말못하는 아이에게 떠넘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 백지상태의 아이가 뭘 알까요. 아이에 대한 미움의 원인도 사실 모두 나와 내 주변의 환경이 만든 것이지 누굴 탓할 게 못됩니다.

정인 양 사건의 본질은 양부모의 모진 아동학대 폭력에 있지만 또 다른 문제점도 있습니다. 3차례나 있었던 용기 있는 시민들의 신고에, 입양기관과 아동보호전문기관, 경찰이 보인 방치 정황입니다. 누가 봐도 매너리즘이고, 허술한 대응이었습니다.

요즘 출생률 저하로 전국 지자체 차원에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다양한 환경 조성 대책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정책들의 핵심은 “이제, 아이를 우리 사회가 키우겠다”는 겁니다. 우리네 조상들이 동네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어머니, 형이자 누나가 되어 함께 키웠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동학대 폭력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입니다. 민간 위탁인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구조적 한계나 인력 문제, 지자체 전담 공무원의 부족 등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 학대받는 아이들이 즉시 분리돼 안전하게 보호받을 시설이 거의 없다는 것도 전혀 새로울 게 없습니다. 저출생에 대한 높아지는 공공의 관심만큼 아동보호와 학대 관련 업무는 이제 민간이 아닌 공공이 책임져야 합니다. 아동학대 신고와 처리, 보호를 총괄하는 공공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담당자들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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