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 기자와 사회부 기자, 그리고 법조반장을 맡으면서 적지 않은 재판들을 취재해 왔다. 그 중에서도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 '사익편취' 논란 재판은 특히 기자의 관심을 끈 재판으로 꼽힌다. 

논란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대림산업은 글래드호텔앤리조트라는 자회사를 통해 '글래드(GLAD)'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글래드'라는 브랜드의 상표권은 이해욱 회장과 맏아들 이동훈 씨가 각각 지분 55%, 45%를 보유한 회사 '에이플러스디(APD)'가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와 검찰은 대림산업과 오라관광(글래드호텔앤리조트의 전신)이 총수 일가의 개인 회사인 APD를 상대로 '불공정거래'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호텔 경영에 대한 경험과 역량이 전무한 APD가 대림산업과 오라관광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브랜드 사업을 영위하는 건 총수의 지시에 따른 부당한 특혜였다는 지적이다.

반면, 이 회장과 대림 측은 APD가 호텔 브랜드 사업을 한 건 경영상의 판단이며, 이 회장이 APD 지원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APD가 대림의 계열사가 아닌 총수 개인 회사로 출범한 건 신사업 리스크를 계열사가 짊어지지 않게 하려는 의도라고 항변하고 있다.

공정위·검찰과 기업 간의 흔한 공방전처럼 보이는 이 재판. 기자의 관심을 끈 이유는 따로 있다. 첫 공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대림 측이 이미 선제적인 '여론전'에 나섰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들려오는 소식들을 종합해보면, 대림 측이 각 언론매체 부장급 기자들을 만나 면담을 요청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공정위 전원회의 의결이 매우 불공정했다. 총수 사익편취 혐의 적용이 가능한가를 두고 이견이 상당했으나, 김상조 당시 위원장의 한마디에 판은 엎어졌다. '내가 대림을 잘 아는데, 이건 총수 지시 없이는 성립하기 어려워요!'"

오죽했으면 재판 전부터 이런 여론전을 펼쳤을까. 그런데 이어지는 소식은 기자의 귀를 더욱 솔깃하게 했다.

"첫 공판에 대림 사건 조사를 담당했던 공정위 A모 사무관이 증인으로 출석할 것이다. 우리 측 변호인들은 A 사무관이 아주 편향적인 증거만으로 사안을 왜곡한 것으로 보고 있다"

두근두근. 얼마나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질 것인지, 기대감에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다.

재판이 시작되고, 검찰의 공소취지 설명이 진행됐다.

"오라관광과 APD간의 거래는 APD에 지나치게 유리한 조건의 거래였습니다. 오라관광이 APD에 지급한 브랜드 수수료는 무려 31억원에 달합니다. 정상적 거래로 볼 수 없습니다."

대림 측 변호인의 반격이 이어졌다.

"31억원이 적정 가격이 아니면, 어느 정도가 적정 가격이죠? 그걸 검찰은 입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는 것 아닌가요?"

반격 직전, 변호인은 증인으로 출석한 A 사무관에게 법정 바깥으로 나가 있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방어에 꽤 신경쓰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변호인의 방어는 여기까지였다. △매리어트, 힐튼, 하얏트 등 유명 호텔의 브랜드 수수료와 신생 업체에 불과한 글래드의 브랜드 수수료가 유사하다 △글래드 브랜드의 상표권은 APD에 있는데 상표권 등록 비용 부담 등은 오라관광이 했다 △계약서 작성 일자를 수정하는 등 각종 서류 조작이 있었다 등 검찰의 이어지는 공세와 A 사무관의 증언에 변호인은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경영상의 판단이었다'는 취지로 변론할 뿐이었다.

검찰의 표정과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긴장을 감추기 어려워하는 이 회장의 모습과 대비됐다.

호텔업은 대림의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사업 중 하나다. 대림 측이 이번 사건에 특별히 신경쓰는 건, 단순히 총수가 기소됐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대림 측으로서는 법정 밖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도 좋지만, 다음 공판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연구하는 게 더 시급해 보인다. 다음 공판에서도 '무력한' 방어를 이어갈 것인가. 이대로라면 "대림의 미래 먹거리는 총수 일가 사익편취였다"는 세간의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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