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이 뜨지 않는경우 여기를 클릭하여주세요.

 

탄생 100주년을 맞는 우리 차 문화의 선구자, 고(故) 명원 김미희 선생은 일제 강점기 이후 먹고 살기조차 힘들었던 시대에 사라진 우리 차를 복원해 중흥의 기틀을 마련했던 분인데요,

그런데, 명원 선생이 우리 차 복원을 결심했던 계기가, 일본의 한 차인에게서 “한국에도 다도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부터였다고 합니다.

우리 차 문화 복원과 중흥의 숨겨진 이야기를 홍진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에 태어난 명원 김미희 선생은 1954년 궁중다례 계승을 시작으로 우리 차 복원에 나섰습니다.

이후 ‘명원다도회’를 설립하고,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일지암’ 복원을 주도했으며, 1979년 우리나라의 첫 차 학술발표회를 열었습니다. 

먹고 살기도 빠듯해 차를 ‘사치’라 여겼던 시절 명원은 우리 차에 담긴 선조들의 무한한 정신적 풍요를 느꼈고, 이를 세상과 나누려 했습니다.

[명원 김미희 선생]

“첫째는 향년의 차 속에서 무한한 정신적인 풍요를 느꼈던 선조들의 철학과 둘째는 한잔의 차로 극진한 정성과 예를 다했던 아름다운 풍속과 셋째는 단결되었던 다문화를 현재생활에 연결지어 보려고 이번 행사를 시도하였던 것입니다.”

명원의 차 사랑은 1952년 헬싱키올림픽에서 시작됐습니다.

남편인 쌍용그룹 창업주 김성곤 회장과 함께 선수단 후원을 위해 발 내디딘 유럽에서 정신문화로서의 차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이후 일본의 한 차인에게서 “한국에도 다도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차 문화 복원을 결심했다고 전해집니다. 

[김의정 이사장/ 명원문화재단 (2016년 BBS NEWS 中에서): (과거) 우리나라의 모든 (차) 예법이 집집마다 다른데 (그 당시) 보편적인 다도가 모두 일본식이어서 그 근거를 찾느라 고생을 하다가 결국 궁에서 (순정효황후 윤씨를 모신 김명길 상궁으로부터 궁중다례 의식을) 찾아내신 거예요.]

명원은 차인이기에 앞서 신심 깊은 불자로서, 근현대 한국불교 중흥을 위해 막대한 거금을 쾌척했습니다. 

또 늘 드러내지 않고 남을 도왔기에, 생전 종로구 신문로 집에는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

“아버님 어머님이 동지적인 관계로 목적을 가지고 남한테 베푸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저의 어머님이 공식적인 직함을 가진 게 별로 없습니다. 그분은 천성이 아니신가 싶습니다. 그렇게 많은 참 가정경제에 금이 갈 정도로 많이 베 푸셨는데...”

명원이 이룩한 우리 차 중흥의 업적은 차는 곧 우리의 정신이고, 다도가 좋은 인성을 길러준다고 여겼고, 이를 실천한 ‘명원’의 삶 속에서 더욱 빛납니다.

BBS NEWS 홍진호입니다.

(영상취재=최동경)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