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스물여섯, 서른하나… 나라를 지키겠다는 사명으로 전쟁터로 나간 젊은 병사들은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1950년 11월. 혹한 속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북한 땅에 묻힌 이들은 2년 전 발굴돼 미국 하와이로 보내졌고, 또 두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고국에 안겼습니다. 그리고 지난 29일,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7명의 호국 영웅을 위한 안장식이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렸습니다. 

 70년.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가족과 마주한 자리. 영정 앞에 선 유족들은 어느새 오빠, 형, 남편,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들었습니다. 곱게 싸인 유골함을 마지막으로 안아들고 흙 한 줌 덮어주며, 유족들은 평생 그리워한 이름을 목놓아 불렀습니다.

"오빠, 오빠...내 아들들이에요. 여기서, 이렇게 보네요."

누군가는, 전하고 싶었던 수많은 말을 다섯 장의 편지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아버지 늘 천상에서 주신 당신의 사랑만으로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단 하나 그 긴 세월 동안 지상에서 천상에 계신 아버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자리, 유족들은 유해를 찾아준 국가에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전화를 안 받았어요. 그런데도 웃으면서 저를 믿어주세요, 해서 믿게 됐습니다. 너무 가슴이 뛰고, 심장이 뛰고...많은 분들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많이 그리워했어요. 이렇게 찾아서 안장하니까, 너무 감사하고,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많이 남았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 전사한 국군 13만 8천여 명 가운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국내에서 찾아낸 국군 유해는 만여 구. 이 중 가족을 찾은 이들은 고작 142명뿐입니다. 지난 6월, 하와이에서 봉환 된 147구 중에서도 단 7위만 신원이 확인돼 이번에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아직 신원을 알 수 없는 호국영령들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된 국선재에 보관돼 가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어낸 유가족은, 아직 그리움의 무게를 달고 있을 또 다른 이들을 위로했습니다. "아직 가족을 못 찾은 사람들이 있어 안 됐어요...빨리 찾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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