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술전문가도 아닌 피고인이 미술전문가의 제안과 검증을 받고, 자문위원들의 평가까지 받았습니다. 피고인이 뭘 더 어떻게 해야 배임 혐의를 면하는 겁니까?"

20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조현준 효성 회장의 항소심 2차 공판. 변호인의 호소가 법정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휴정 없이 2시간 동안 이어진 이번 공판은 변호인 2명의 프리젠테이션으로 대부분 채워졌다. "조현준 회장이 효성의 미술품 투자회사 '아트펀드'의 미술품 매입을 결정했고, 적정 가격보다 비싸게 매입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1심의 법리를 뒤집기 위해 변호인들은 만반의 준비를 해온 듯 보였다. 

조 회장이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HIS)의 인건비를 횡령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변호인은 1심의 판단에 오해가 있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측근의 이름을 빌려 급여를 수령한 건 잘못됐지만, 하는 일 없이 임금을 받아간 건 아니었다는 논리였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변호인은 HIS의 사업 변천사까지 설명했다. "대기업이고 B2B 회사인가 보다" 정도로만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기자. 세상에! 법정에서 HIS라는 회사 개요에 대한 브리핑을 들을 줄이야.

마스크를 쓴 채 법정에 2시간 동안 앉아있었기에 호흡은 가빠왔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 하지만 변호인은 지친 기색 없이 열변을 이어갔다.


#2

2시간 가까이 이어진 변호인의 프리젠테이션 변론이 끝났다.

검찰 측 의견이 있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공판검사의 대답은 이랬다.

"서면으로 제출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재판이 너무 장기화되지 않을까요?"

'이런 반응이 맞는 건가?'라는 의문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뭐, 좋다. 같은 쟁점을 반복해서 다툴 필요가 없다는 검찰 주장도 일리가 있긴 하니까.

그런데 공판이 끝난 뒤, 우연히 들은 두 공판검사의 대화 주제는 'n번방 사건'이었다. 법정을 나온 지 1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방청객들은 모두 이번 공판을 이야기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그러고보니 공판검사들은 재판 시작 5분 전에야 헐레벌떡 법정으로 입장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방청객 입장을 통제하던 법정 경위가 "그런데 이번 사건 검사님들은 아직 안 오셨나요?"라고 물을 정도였다.

예정된 공판 시간에 지각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하지만 법조출입기자로 일하면서, 공판 시작 5분 전, 헐레벌떡 입장하는 공판검사의 모습을 과거에는 본 기억이 없다.

조현준 회장은 1심에서 이미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집행만 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변호인은 이를 꽉 깨물고 나온 모양새인데, 검찰이 '과거의 승리'에 도취해 너무 안심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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