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라는 단어, '화끈하다'는 표현이 이토록 어울리는 경제인이 또 있을까.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이야기다.

김승연 회장의 이런 성격은 여러 이야기를 통해 전해진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직원을 임원으로 승진시켰다거나, 한화건설의 이라크 공사현장을 방문하면서 "직원들이 생선회를 먹고 싶어한다"는 보고를 받고 600인분을 비행기로 실어날랐다는 이야기 등은 이미 유명하다.

김 회장의 '의리'는 회사 외부로도 향했다. 천안함 피격사건 후, 김 회장의 결단으로 우선채용된 유가족들은 지금도 한화그룹 각 계열사에 근무하고 있다. 대전 대덕테크노밸리는 "시민들의 성원으로 한화이글스가 프로야구 우승을 차지했는데, 뭔가 보답해야 한다"는 김 회장의 결심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한 사건은 김 회장의 이런 '의리 행보'를 가로막았다. 이미 언론 등을 통해 보도된 '한화손보 미성년자 구상금 청구 사건'이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사이에 쌍방과실 사고가 발생했는데, 오토바이 운전자가 무면허 무보험 상태였다. 자동차 운전자의 보험사는 우선 피해 보상을 진행한 뒤, 오토바이 운전자를 상대로 구상금 변제를 요청했다. 문제는 그가 이미 숨졌다는 것. 그래서 유족인 아들에게 소송을 냈는데, 그 아들이 초등학생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된 사건이다.

코로나19와 '성 착취 대화방' 파문이 번지는 가운데에서도 이 사건은 국민에게 알려졌다. 문제의 회사로 밝혀진 한화손해보험은 공분을 샀다. 

부랴부랴 강성수 대표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한 한화손보. 하지만 국민적인 분노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화끈'과 '의리'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한화의 이미지는 이제 '초등학생에게 소송하는 회사'로 바뀌고 말았다.

역설적으로 이런 위기일수록 필요한 게 '화끈한 의리의 리더십' 아닐까. 이를 통해 보여준 신뢰야말로 40여년 간 김승연 회장과 한화를 지탱해 준 힘이었을 것이다.

한화생명은 한화손보 주식 50% 이상을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그 한화생명에서는 김승연 회장의 둘째 아들 김동원 상무가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한화손보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은 아무래도 약해보인다. 역시 김 회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

"업무 처리 과정에서 사려 깊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유가족에게 깊이 사과합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교통사고 피해자들을 돕고 안전한 교통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저희가 준비한 게 있습니다."

김승연 회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런 발표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마침 오늘부터 어린이 교통안전을 대폭 강화하는 취지의 '민식이법'이 시행되고 있다. '화끈한 의리남' 김승연 회장의 깜짝 발표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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