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릿 루 피스컬노트 선임전략고문가 유료로 제공되는 보고서를 설명하고 있다.

#FISCALNOTE
‘정치’와 ‘인공지능’의 결합이라는 신선한 발상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기업이 있다. 27세의 한국계 미국인, 팀 황이 이끄는 ‘피스컬노트’다. 미국 연방 정부와 50개 주(州) 정부, 법원 등 방대한 정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제공한다. 단순히 법안의 세부 정보만 정리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해당 법을 심사하는 의원들의 성향과 과거 투표 이력까지 분석해 법안 통과 가능성을 알려주는데, 예측률의 정확도가 94%에 달한다.

피스컬노트 공동 창업자, 제라드 야오. 팀 황 대표는 대학시절 친구인 제라드 야오, 조나단 첸과 피스컬노트를 공동 창업했다.

■세계를 바꿀 10대 스타트업, ‘피스컬노트’를 방문하다.

‘피스컬노트’ 본사 방문은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한 올해 방송기자연합회 연수과정에서 가장 기대되는 일정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흔치 않은, ‘법과 정치’를 기반으로 성공한 스타트업의 공동 창업자를 만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설렜습니다.

“국회의원 성향과 과거 투표 이력 등으로 어떻게 예측 정확도가 90% 이상이 나오는 거지?”

피스컬노트에 대해 알게 된 순간부터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입니다. 1년 남짓한 기간 국회를 출입하면서 의원 개개인의 소신보다는 정쟁이나 여론에 의해 법안이 통과되거나, 좌절되는 장면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의 경우 2년 넘게 국회에서 계류돼 있을 만큼 통과 가능성이 거의 없는 법이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숨지면서 반환점을 맞았고, 김 씨 어머니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며칠 동안 호소한 뒤 극적으로 통과됐습니다. 이런 크고 작은 ‘변수’들을 피스컬노트는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대답은 들었지만...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피스컬노트 공동 창업자 제라드 야오와 선임전략고문 크릿 루와의 질의응답이 시작되자마자 비슷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정치에 작용하는 여러 인적 요소들을 어떻게 보완하는지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확률에 적용시키지 않는다.”

그들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탄핵 문제가 불거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민주당이 탄핵을 추진한다면 어떤 입법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해서, 원래 70%였던 법안 통과율을 0%로 떨어트리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대신, 피스컬노트는 미국 행정부와 의회 소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지 ‘시큐 롤콜(CQ Roll Call)’을 인수했습니다. 객관적 정보를 분석한 데이터와 정국 상황을 담은 언론기사를 동시에 제공해 이용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전략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았습니다. 아무리 피스컬노트가 가진 데이터가 어마어마하더라도, 정치적 변수를 제외하고 산정한 확률의 실제 정확도가 90%가 넘는다는 사실은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비로소 풀린 의문...‘예측 정확도 90% 이상’이 가능했던 이유

궁금증이 풀린 건 피스컬노트가 실제로 고객에게 제공하는 ‘유료 서비스’를 본 뒤였습니다. 그들이 분석하는 데이터는 예상보다 훨씬 방대하고 세세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건 미국 정부가 공개하는 정보의 범위였습니다. 유료 보고서에는 단순히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내용, 입법 성과, 후원자 등을 넘어 해당 의원이 언제 누구와 만났고, 통화했는지까지 정리돼 있었습니다. 높은 예측도의 배경에는 미국 정치의 투명성이 있었던 겁니다.

미국의 투명성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로비스트나 로비회사는 스스로 로비활동 내역과 금액, 영향력을 행사한 법안을 모두 공개해야 하고, 각 정당과 PAC(정치자금위원회)는 매년 분기별로 일정액 이상의 기부자와 기부일자, 기부액수, 수입·지출내역 등을 구체적으로 보고합니다. 한국에도 이미 여러 차례 알려진 내용이지만, ‘피스컬노트’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분석된 모습을 보니 정말이지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예측률 90%’,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2015년 피스컬노트는 우리나라에 첫 해외 지사를 설립했습니다. 피스컬노트코리아는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이 미국 진출시 겪는 법률적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스컬노트 팀 황 대표는 전 세계 국가의 모든 법과 규정을 디지털 플랫폼에 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미국에서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를 다른 국가에서도 시행하고 싶다는 뜻일 겁니다. 문득 새로운 궁금증이 생깁니다. 피스컬노트의 자랑인 높은 법안 통과 예측도는,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요. 아니, 그전에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올해 국회 예산 심사에서는 ‘깜깜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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