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일이었다. 오는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을 앞두고 관련 기자회견을 어떻게 보도할까 고심하던 중 기자회견을 아예 안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통령은 전혀 생각이 없었는데, 기자 혼자 헛발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 떠난 애인의 적선(積善)이나 바라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북녘만 바라봤지만 ‘미사일 도발’로 대답하는 북핵 문제와, 사람 빼고 모든 동물이 살았다는 패스트트랙 국회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아 국민들에게 이런 저런 할 말이 많을 줄 알았는데, 기자는 또 순진했나 보다. 대신 특정언론 한 곳과 청와대 상춘재에서 대담을 갖는다고 한다. 또 사전에 준비된 질문지를 가지고 하고 싶은 얘기만 하겠다는 것이구나... 자신에게 우호적인 기자와 앉아서 원고만 읽겠다는 것이구나... 저 한 명을 뺀 나머지 기자들은 또 열심히 받아치기나 해야겠구나... 순간 왜 갑자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마지막 절규, ‘정규재TV 대담’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 과연 몇 번이나 국민들 앞에서 섰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수치를 알고 나니 더욱 놀라웠다. 취임 이후 2년 동안 공식기자회견과 특별기자회견, 기자간담회, 국내인터뷰만을 집계해봤는데, 딱 3번 했다. 같은 기간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번, 노무현 전 대통령은 17번, 이명박 전 대통령이 7번, 박근혜 전 대통령이 2번이었다. 이 정부가 워낙 보수정부와 비교하는 것을 싫어하니,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얘기만 덧붙이더라도, 이 두 전직 대통령은 임기 동안 각각 150번의 기자회견을 했다. 정말 지겹게 국민들을 마주했고 국민들에게 설명했다. 물론 불세출의 흡인력과 넘사벽의 달변에도 정제되지 못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구설수에 시달렸지만, 국민들이 대통령과 소통이 부족해 답답해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불교에서는 말이 많은 것을 구업(口業)이라고 하여 항상 경계하고 삼가라고 가르치지만, 말하지 않고서는 정치를 할 수 없다. 정치인들은 이미 말빚을 진 죄인으로 세상을 복되게 하고 싶은 자들이다.

솔직히 기자가 노무현 정부에서 본 ‘문재인 수석’이나 ‘문재인 비서실장’은 대중정치인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권력의지’가 없는 ‘원칙론자’처럼 보였다. 바람 따라 제철 산행이나 다니고 텃밭이나 일구며 소담하게 살아갈 그저 인상 좋고 조용한 동네 아저씨였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공적인 무엇인가를 위해 애써 다투거나 사사로이 싸우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 흔한 밥자리는커녕 말 한번 제대로 섞었다는 기자를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누구나 인정하고 본인 스스로도 밝혔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게 갑자기 서거하지 않았더라면 정치할 인사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운명’적인 이런 비자발성은 문재인 대통령을 진영논리에만 충실하게 만든 듯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같은 진영에서 잉태된 것이라도 판에 박힌 고정관념은 과감히 혁파하고 끊임없이 틀을 깨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고 날마다 고민했던 ‘정치게릴라’였다면, 그래서 자기 지지기반 마저 스스로 허무는 과(過)도 수시로 범했다면, 문 대통령은 새로운 노선과 정책을 추구하기 보다는 지금의 지지기반을 최우선으로, 이것의 수성에 우선 열과 성을 쏟으면서 훨씬 더 안정적으로 정권을 이끌어가는 듯하다. 기자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이런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문재인’이라는 좋은 친구를 가졌기에 자신은 대통령감이라고 온 세상에 공표했다. 그런데 과연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문재인’ 같은 친구가 곁에 있을까. 총선이 다가올수록 이른바 친문이나 측근이라고 불리는 인사들도 그저 잠시 머물렀다 가는 ‘뜨내기’ 아니면 잘해야 ‘동업자’ 정도로 느껴지는 것은 기자만의 편견일까.

사실 무엇 때문에 대통령이 됐고, 그것으로 인해 어떤 대통령이 돼가고 있는가는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다. 기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통령이 됐으면 뒤에 숨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과의 소통의 장에서 절대 멀어지면 안 된다. 대통령이 내 마음에 안 들어도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저러는 지 국민들은 알권리가 있다. 취임 일성으로 그렇게 소통을 강조해 놓고, 정말 진절머리 내며 꿈에서라도 다르고 싶다던 보수정부의 대통령들과 ‘소통지수’가 비슷해져 가고 있다면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혼밥은 아무리 먹어도 좋다. 혼자 밥 먹는다고 비아냥거리고 악다구니 세우는 언론들도 속으론 자기들이 얼마나 유치한 지 안다. 그러나 눈만 뜨면 언론들과 시정잡배처럼 물어뜯고 싸우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늘도 링 위로 기꺼이 올라가는 이유를 우리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대통령이 잘 모르면 참모들이라도 잘 알아야 하는데, 벌써 무엇에 홀리고 취했는지 예스맨들 아니면 ‘SNS 놀이’로 자기 정치에만 골몰하는 자들만 넘쳐나 더 걱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극강 언론 기피’를 당시 언론들이 별로 비판하지 않은 것을 놓고 “정권의 포악질로 언론마저 알아서 기고 있다”고 난도질했던 지금의 여당 입장도 점점 궁금해진다. [정치부장] [2019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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