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 집행정지 여부를 놓고 여야 의원들의 공방이 치열하다. 아니, 양쪽이 다 신뢰할 만한 의사한테 물어봐서 진단 결과를 공식 발표하면 그만인 것을, 왜 자기들끼리 “꾀병이다, 아니다”를 다투는 지 기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진단 결과, 정말로 불에 덴 것 같고 칼로 베는 듯한 통증이라 수감생활을 못할 정도면 풀어줘야지, 어떡할 것인가. 이미 전두환이나 노태우 전 대통령 보다도 오래 형을 산 전직 대통령이고, 만에 하나 감옥에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문재인 정부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반대의 경우에는 정상적으로 형기를 마치게 하면 된다. 법대로 하면 된다. 정치적 논란은 박 전 대통령에게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기자들은 이런 정쟁보다는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내년 총선 전에 석방됐을 경우 선거판이 얼마나 요동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일단, 박 전 대통령이 나오면 보수는 분열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청와대에서 죽도록 일만 하고 끝내 여의도에 입성하지 못한, 그나마 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 수많은 ‘친박 낭인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나와 대구 서문시장에서 눈물 한 번만 흘리면 TK(대구.경북)는 다 넘어올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면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의 서운한 마음을 돌리기는 이미 늦었다고 강조하고, 한국당 밖에 이미 ‘대한애국당’이라는 ‘박근혜 신당'의 씨앗도 자라고 있어 또 한 번의 치맛바람이면 그 옛날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다고 일갈했다.

만약 이럴 경우 이미 황교안 대표에게 줄 서고 있는 자유한국당 내 친박계 의원들의 셈법은 복잡해진다. ‘과연 얼마나 갈 것인가’, 의구심을 품었던 ‘황교안 체제’가 제법 순항하고 있으니 줄을 안 섰던 친박 의원들의 마음도 심란하다. 그런데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석방되면 한국당 내 강경 친박 세력은 당을 나와 박 전 대통령을 배후로 모일 것이다”고 단언했다. 하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최근 황 대표의 ‘박근혜 석방’ 관련 발언도 한국당 내에서 친박을 분리해 솎아내기 위한 황 대표의 ‘고단수 친박 청산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눈만 뜨면 ‘보수대통합’을 외치고 있는 황 대표가 들으면 서운할 수도 있지만 ‘황교안의 위상’과 ‘친박의 입지’가 반비례할 것이라는 관측은 이미 지난 전당대회 때부터 여의도의 뜨내기들도 예견해 왔다. 정치는 ‘명분’으로 하는 것이지만, 정치인들은 ‘당선’만 생각한다. 적절한 시점에서 친박 의원들은 박근혜와 황교안, 어느 쪽에 붙는 것이 자신의 공천과 당선에 유리한지 선택할 것이다. 셈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도 ‘박근혜 석방’ 셈법이 복잡하지 않을 수 있다. 사실 ‘박근혜 석방’ 자체가 문재인 대통령의 결심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으로서도 만지작 거릴만한 카드다. 무엇보다 ‘보수분열’이라는 알찬 선물에 ‘국민통합’이라는 덤까지 얻을 수 있다면, 굳이 외면할 이유가 없다. 내년 총선이 여권으로서도 쉽지 않다는 것은 여권이 벌써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보면 알 수 있다. 외형적으로도 이미 총선체제를 갖춰가고 있음은 물론, ‘진문(진짜 친문) 감별사’들을 청와대 등으로부터 불러 들여 최선두에 포진시켰다. 240석 운운하며 교만이나 떠는 여당 대표를 대신해 이낙연 총리까지 총사령관으로 투입할 태세고, 문 대통령에겐 ‘임시정부가 있던 상하이’ 같은 정치적 고향, 부산을 사수하기 위해선 ‘지지율 20% 하락’과 맞바꾼 ‘조국 수석’을 차출할 채비를 갖췄다. 다음 미래 세대의 허리가 휘어지든 말든, 나라 곳간을 있는 대로 열어젖혀 전국 곳곳의 삽질에 선심을 뿌리면서까지 이기고 싶은 게 내년 총선인데, 저만한 선물과 덤을 얻을 수만 있다면 심히 고민스러울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떠나서, 문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감정이 안 좋을 리 없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도 아니고 솔직히 무슨 사사로운 원망이 있겠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 만큼이나 황교안 대표도 이미 내년 총선 무대의 주요 배역이 됐다. 지난 주말 ‘황교안 체제’ 출항 이후 처음으로 광화문 광장이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대대적인 세몰이로 촛불 흉내 내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아직은 “반성들이나 좀 더 하지, 왜 길 막히게 나와서 이러나” 하는 민심도 만만치 않다. 다만, 서울 종로에서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빅매치, 아니면 부산에서 조국 수석과 빅매치 등의 얘기들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걸 보니, 황교안 대표는 이번 장정에서 최대 수혜자로 한 몫 단단히 챙긴 것 같다. 황 대표가 내년 총선까지의 과정과 결과에서 어떤 성적표를 내놓느냐에 따라 그 다음에 꿀 수 있는 꿈의 크기와 농도도 정해지기 때문에 올 한해 황 대표의 행보는 그 어느 때보다 집요하고 조심스러울 것이다.

또 하나의 관전포인트는 ‘총선 전 정계개편’ 여부다. 쪼개지기 일보 직전의 바른미래당의 향후 진로와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보수통합론’, ‘호남신당’, ‘제3지대론’ 얘기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보수통합론’은 자유한국당 현 지도부가 정말 갈망하는지 의문스럽고, 설사 그렇다 해도 ‘박근혜 석방’ 여부 등에 달려 있지, 당장 그들의 의지와 능력으로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호남신당’과 ‘제3지대론’의 차이는 이것을 점화시킨 바른미래당 박주선 의원 등의 말을 종합하면, 과거 국민의당에 뿌리를 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의원들만 함께 하면 ‘호남신당’이고,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비문진영 등이 가세하면 ‘제3지대론’의 의미를 충족시킨다. 그러나 구심점도 동력도 국민적 관심도 약해 후자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선거 때만 되면 그저 살아남기 위해 돌출되는, 말만 번지르르한 돌림노래로 끝날 듯하다. 바른미래당이 곧 깨질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호남신당’은 상당히 가능성이 있지만 그 파괴력이 의문이다. 이미 지난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호남지역을 싹쓸이 했고, 호남 출신의 이낙연 총리가 여당에 건재하며, 무엇보다 여당이 이 지역 여론에 자신이 있으니 이용호, 손금주 의원도 안받아주는 것 아니냐는 분석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설사 석방이 되더라도 병원에만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도 갈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동정과 메시지는 실시간으로 전국이 다 알 것이다. 아직도 이 나라 선거의 최대변수가 박 전 대통령이고, 그녀가 감옥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로 온갖 경우의 수를 따져 봐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그녀의 그림자를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 것은 문재인 정부이다. 앞으로 남은 1년 동안에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조금도 아니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 가고 있다고 하면 한 번 돌아봐야한다. 끝내 돌아보지 않으면 결국 길을 잃게 된다. 초심만 잃지 않았다면 거기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주 하던 말이다. [정치부장] [2019년 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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