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6월 3일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스님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국난극복을 위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는 모습
1998년 6월 3일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스님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국난극복을 위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는 모습

현대 한국불교사의 산증인, 신군부 탄압에 맞선 스님, 평생 불교의 대사회 운동과 종단 개혁에 매진한 지도자, 세상이 어수선하고 종단이 혼란에 빠졌을 때 그 중심에서 늘 함께 했던 인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저개발 국가의 국민들에게 자비의 씨앗을 심어준 은인...

전북 김제 금산사에서 원적에 든 태공당 월주 대종사를 지칭하는 수식어들이다. 스님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19살의 나이에 속리산 법주사에서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68년간 출가 수행자로 살아왔다. 1961년 26세 때 조계종 제17교구본사 금산사 주지를 맡아 조계종의 최연소 교구본사 주지 기록도 갖고 있다.

스님이 생전에 남겼던 어록과 가르침들도 새삼 조명받고 있다. 월주 대종사는 조계종 총무원장 시절이었던 1995년 2월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민을 위한 신년 기원대법회’에서 법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욕망은 눈병난 사람에게 보이는 허공의 꽃과 같습니다. 한마음 돌리면 나와 이웃 그리고 자연은 한 세계에 함께 사는 도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깨달음으로써 이 사회를 맑게 하고 고통받는 삶을 구제하고자 하는 동체대비의 원력이 샘솟게 될 것입니다.”

지난 2016년 회고록 ‘토끼풀 거북털’ 출간을 기념해 금산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스님은 행복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일갈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해 하는 것이 행복이다. 저도 지구촌공생회 활동을 위해 해외에 나가게 되면 비행기 타기 전부터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더라도 그게 피곤하면 불행하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은 자신의 행복이 될 수 없다. 하는 일에 정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만족감 느낄 때가 진정 행복이다. 총리 장관이 아니고 면장을 하더라도 주민 복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게 즐겁다고 느끼면 행복한 거다."

대종사가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에서 삶의 지침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깊은 여운과 울림을 던져준다.

“나의 생애는 보살도(菩薩道)와 보현행원(普賢行願)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80여 년 인생과 60여 년 수행자의 길에서 느낀 것은 ‘함께 같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앉아서만 성불할 수 없다’ ‘진리는 세간 속에서 실현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여전히 나의 화두이며 삶의 지침이다.”

지난 2008년 월간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는 한국 불교에 대한 따끔한 경책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불교계는 수행에 중점을 두다 보니 타 종교에 비해 바깥 세상에 눈을 돌리는 노력을 등한시했습니다. 자비행(慈悲行)과 이타행(利他行)을 통해 저변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점이 안타깝습니다. 포교와 사회봉사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합니다. 수행을 통해 깨달음이 있거든 사회를 위해 그 깨달음을 실천하려는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합니다. 국민 곁에서 국민과 함께 호흡할 때 불교에 더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월주 대종사를 만나본 이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한다. 차가운 인상이라는 평도 있지만 권위의식과는 거리가 멀고 의외로 소탈하고 유머 감각도 있는 분으로 기억한다. 필자는 지난 2017년 1월 박세일 초대 청와대 불자회장의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스님을 만난 적이 있다. 스님은 1994년부터 98년까지 고 박세일 회장이 청와대 수석과 초대 청와대 불자회장을 맡았을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인연이 있다며 뛰어난 재가 인재를 잃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자신은 속세를 떠난 수행자이지만 세간과 출세간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며 재가자들의 원력과 신심을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스님은 평소 “불교와 세상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수행 역시 산에만 머물지 말고 저잣거리에서 구현돼야 한다”며 “수행과 기도도 중요하지만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즐거움을 전해 삶의 질을 높이는 보현행원은 지금의 한국불교에 필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지금 한국 불교는 힘들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대면 법회가 멈췄고 사찰 재정난도 심각하다. 수행과 포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도 시급한 상황이다. 태공당 월주 대종사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당부가 헛되지 않도록 후학들이 더욱 신발끈을 고쳐매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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