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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김장실 전 국회의원

방송 : 2021년 6월 6일(일요일) 저녁 6시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 진행을 맡은 김봉래입니다. 요즘 우리 K-뮤직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죠. 또 국내에서는 트로트 열풍도 만만치 않습니다. 모 방송에서 트로트 열풍을 주도한 바가 있는데요, 그만큼 우리 국민들 내면에 쌓인 한과 그리고 그 한을 풀어내려는 노력이 어우러진 현상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경전의 글귀 하나, 또 음악 한 곡, 노래 한 곡이 마음 속에 깊은 힐링을 선사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누구보다도 대중가요를 사랑하는 노래하는 정치인이시죠. 김장실 전 국회의원님 모시고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김봉래 : 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노래하는 정치인이시죠. 김장실 전 국회의원 BBS 불교방송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김장실 의원님 안녕하세요.

 

김장실 : 네. 안녕하십니까.

 

김봉래 : 예. 반갑습니다.

 

김장실 : 네. 반갑습니다.

 

김봉래 : 문화정책을 다루는 공무원을 하시고 문화체육부에서는 차관까지 지내셨죠. 그리고 19대 국회에서 국회의원 하시고. 어떻게 보면 정치와 문화 양 영역을 함께 융합한 그런 분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김장실 : 과찬이십니다.

 

김봉래 : 마침 또 최근에는 대한민국의 트로트의 역사를 다룬 책도 내셨어요. 그래서 겸사겸사 오늘은 정치 또 문화, 특히 대중가요 이런 이야기를 여쭙고 싶어서 스튜디오에 모셨는데, 먼저 요즘 코로나 때문에 다들 힘들어하지 않습니까. 요즘 어떻게 정중동이 계신지요.

 

김장시 : 지난 주까지는 유튜브 방송으로 가요를 부르고 해설을 하는 것을 주 2회 하고 그 다음에 사이버대학교 교수를 하니까 출제도 하고 기말고사 출제도 하고 그리고 시간 날 때 책 좀 읽고 그렇게 조금 한가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잘 보면 굉장히 정중동이라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만 정치 분야에서는 굉장한 지금 변화가 일고 있죠.

 

김장실 : 예. 정말 한국 정치의 새로운 변화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노장 정치인들이 정치를 지배하던 게 1950년대 말 60년대 초까지 그랬는데,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젊은 사람들로 확 바뀌었습니다. 그 다음에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에서 40대 기수론을 김영삼 원내대표가 주축을 하면서 그 때 이철승하고 김대중까지 포함해서 젊은 지도자들이 등장했죠. 1980년에 보면 전두환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집권을 하면서 또 그 때 젊은 사람들이 확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젊은 사람들로 인위적으로 물갈이가 이뤄진 것은 없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주로 많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런 시점에 있었는데, 지금 보니까 국민들이 때가 덜 묻은 젊은 사람을 주도적인 위치에 세우길 희망하는 그런 분위기가 조금 감지되고, 또 하나는 나이로 봐서는 젊지만 상황이 굉장히 위중한, 정권을 국민의 힘 쪽에서는 다시 가지고 와야 하는데 이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역량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지금 두 가지 견해가 맞부딪히고 있는데 당원들과 국민들이 잘 선택해주리라 봅니다.

 

김봉래 : 네. 지금 당대표 선출을 놓고 서로 이합집산이 되는 그런 상황인 것 같은데 어쨌든 내년 3월 9일이죠, 대통령 선거 전까지 여야가 전열을 정비해서 대선 국면으로 들어가는 건데요. 그보다 앞서서 사실은 저희는 정치계가 국민들의 여망을 얼마나 잘 반영했는가를 보면 조금은 부족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요.

 

김장실 : 네. 미흡한 점이 다소 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라는 것이 어떤 때는 혁명적 변화를 꿈꾸기도 하지만 또 안정적으로 굴러가는 것을 희망하는 분들이 다소 있기 때문에 어떤 때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될지 모를 상황들이 있습니다. 지금이 약간 영어 표현으로 하면 크리티컬 포인트(critical point, 임계점) 아닌가 싶습니다.

 

김봉래 : 그래서 제가 의원님께 여쭤보는 것은 문화를 전공하는 그런 공무원으로서 또 직접 정치로 들어가서 19대 국회의원을 하시면서 정치계를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문화와 정치 이 두 분야에서 경험을 하셨는데, 경험을 하시면서 아쉬운 점이랄까 아니면 뭔가 개선되어야겠다든가 그런 생각을 많이 가슴에 품고 계실 것 같아요.

 

김장실 : 그렇습니다. 우선은 정치는 발등에 불을 끄는 급박한 단기적인 관점에서 조치를 해야 될 게 많은 그런 사항이라면, 그런 관점에서 일을 처리한다면, 문화는 옛날에 말이 있습니다. 문화는 천년대계이고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롱텀으로 아주 긴 관점에서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자를 잘 조화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는 것을 우선 말씀드리고, 제가 문화 관료로 있다가 정계에 비례대표로 입문한 이후에 관료로 있었기 때문에 너무 순치되어가지고 사실상 정치 현안에 대한 제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 것이 지금 와서 보면 조금 많이 아쉽습니다.

 

김봉래 : 또 새로운 기회가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의원님.

 

김장실 : 예. 어떤 기회가 주어질지 오직 신만이 안다고 볼 수 있는데, 반추해보면 그런 아쉬움이 있다 하는 것 하고, 그 다음에 국회라는 것은 법과 제도를 만들고 고치는 곳이기 때문에 정말 법과 제도는 한 번 만들어지면 국민 생활에 엄청나게 영향을 미치고 국가의 방향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면 정말 신중하게 다뤄서 고쳐져야 하는데, 신중하지도 못하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급박하게 만들어지는 법과 제도가 요새 많죠. 그런 것을 보면서 이래가지고, 나라의 제도나 법이 이렇게 왜곡되게 생산되어 가지고 저것을 바르게 하는 것도 시간이 걸릴 텐데 정말 걱정이구나 하는 생각들이 요즘 많이 듭니다.

 

김봉래 : 그래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일이든 똑같은 견해를 가질 수는 없지만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 조정하고 조화해 나가는 그런 노력들이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필요한데, 특히 정치권에는 그런 주문을 더 많이 하잖아요. 상생 국회가 되어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들이요.

 

김장실 : 예. 민주주의의 기본은 이견의 제도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견은 타협과 설득이라는 협상의 과정을 통해서 해소해 나가는데, 이견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강행처리를 연속적으로 해버리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제도도 왜곡되고 민주주의적인 문화가 형성될 수 없습니다. 그런 민주적 문화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적 제도가 왜곡되고 비틀어져가지고 민주주의 공고화가 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제가 안타깝게 여깁니다. 지금 87년 체제 형성된 이후로 한국이 수십 년 지났기 때문에 민주주의 공고화의 단계를 위해서 안정적으로 끌고 가야 하는데, 아직도 그렇지 못한 상태가 되어 있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김봉래 : 예. 제도라는 것은 그 제도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어떤 마음 내지는 정신을 담은 것 아니겠습니다.

 

김장실 : 그렇습니다. 그 정신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법에 담겨있는 규정을 넘어서서 그 이면에 있는 정신이 무엇인가를 잘 살려주는 것이 정말 좋은 입법 행위이기도 합니다.

 

김봉래 : 네. 그래서 여든 야든 서로 터놓고 대화를 해가면서 좋은 안을 도출했으면 하는 게 우리 국민들의 바람인데, 의원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불자 국회의원님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앞으로 행보도 보여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김장실 : 감사합니다.

 

김봉래 : 오늘 모신 것 중에 또 하나가 트로트와 관련된 책을 하나 쓰셨습니다. 제목이 <트롯의 부활>, 부제는 ‘가요로 쓴 한국 현대사’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책인지 간단히 먼저 소개를 해주시죠.

 

김장실 : 네. 1920년대 중반부터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가요가 탄생되어 가지고 지금 100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 우리 민족의 즐거움과 슬픔을 같이 했던 게 음악인데. 그래서 대체적으로 요새 하루에도 몇 곡씩 나올 정도니까 그 사이에 수십만 곡이 나왔을 것 같습니다. 그 중에 5년이나 10년 단위로 봤을 때 가장 히트했던 노래들을 보면 그 시대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김봉래 : 네. 시대정신이 담겨 있죠.

 

김장실 : 시대정신은 어쩌면 사회에 큰 영향, 우리 민족과 국가와 사회에 큰 영향을 줬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하고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아주 작게는 저의 개인사와 대한민국의 역사, 대부분이 대한민국의 역사가 많이 기술되어 있고, 그 다음에 가요사가 같이 융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대정신을 담은 가요가 무엇이며 그 때 무슨 정치사회적 사건이 일어났는가, 그것을 살펴보는 겁니다.

 

김봉래 :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 청취자들과 그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는데요, 시대적으로는 보니까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해서 1980년대까지 대망의 80년대까지 이렇게 한 70년이 망라가 되어 있더라고요. 이렇게 시대를 한정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김장실 : 네. 우선 1920년으로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옛날에 민요 부르고 판소리 부르고 그렇게 하다가, 사설시조 같은 것을 읊고 그러다가 서양의 교회 음악이 들어오면서 창가로 발전이 됩니다. 그러다 1920년대 중반이 넘어가면 윤심덕의 ‘사의 찬미’로부터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대중가요가 탄생이 되는데, 그러니까 한국 대중가요가 탄생한 시점인 1920년대부터 1980년대는 제가 직장생활을 79년에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80년부터 아주 열심히 일을 했는데, 80년 중반이 넘어서 90년대가 되면 한국의 음악이 랩 음악으로 바뀌고 그러면서 저 자신이 사실 따라가기가 힘들어서 그렇기도 하고 굉장히 바빠서 요즘 젊은 사람들의 소위 K팝이라든가 이런 것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알 수 있는 영역이 1980년대까지는 비교적 잘 알기 때문에 그 때까지로 시기를 한정을 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어쨌든 역동의 80년대니까 의미가 있어요. 그러면 시대별로 조금씩 알아보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192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은 어떤 곡들이 있죠.

 

김장실 : ‘황성옛터’. 1927년에 왕평 작사로 나왔는데.

 

김봉래 : 네. 전수린 작곡.

 

김장실 : 네. 전수린 작곡입니다. 이애리수가 불렀는데 이 음악은 20년대와 30년대 ‘목포의 눈물’이라든지 ‘애수의 소야곡’, 그 다음에 고복수의 ‘타향살이’, 찾아보면 전부 보면 하나 같이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픔 같은 게 은유적으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김봉래 : 네. 망국의 한.

 

김장실 : 네. 망국의 한이죠. 그런 것을 가장 잘 드러낸 노래가 황성옛터이고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랑한 곡이기도 합니다.

 

김봉래 : 황성이라는 곳이 어디죠.

 

김장실 : 고려 왕궁인 개성 만월대, 작곡가가 자기 고향입니다. 전수린의 고향이 개성인데, 거기에 한 번 공연차 갔다가 구경을 해보니까 한 때 왕궁 터로서 영화를 누렸지만 가보니까 죄다 폐허가 되어서 풀벌레 소리만 울고 있으니까 그것을 모티브로 삼아서 작곡을 하고 작사를 부탁을 해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곡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그러면 30년대는 어떤 내용이 나옵니까.

 

김장실 : 30년대는 식민지 지배를 받은 지 시간이 많이 되었고, 3.1운동이라든지 6.10만세, 광주학생운동 같은 것들이 일제의 압도적인 힘에 눌려가지고 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태가 되니까 보통 사람들은 독립을 꿈꾸지도 못하고 그 다음에 먹고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먹고 살 데가 없나 하는데 마침 일본이 19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32년에 괴뢰 만주국을 세우면서 만주가 사람은 얼마 없고 텅 비니까 거기에 일본이 만주 파라다이스론을 펼칩니다. 만주에 가면 좋은 일이 많을 거라는 식으로. 그래서 식민지 조선에도 그런 바람이 불어서 잡지, 신문 같은 곳에서 만주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몇 만 명 넘게 10만 명 가까이 만주로 가게 되는 거죠. 결국 1945년에 해방될 때는 한 2백만 정도의 한국인들이 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1930년대에 만주를 가게 되면서 만주에 관한 열풍이 부니까 동시에 만주에 관한 노래가 많이 만들어 졌죠. 그 중에 대표적인 노래가 ‘꽃마차’라는 노래입니다.

 

김봉래 : 노래하자 꽃서울 춤추는 꽃서울...

 

김장실 : 네. ‘노래하자 꽃서울 춤추는 꽃서울...’이라는 노래인데 원래는 ‘노래하자 하얼빈 춤추는 하얼빈...’하는 그런 노래입니다.

 

김봉래 : 아. 개사가 되었군요.

 

김장실 : 예. 1949년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니까 작사가 반야월 선생이 하얼빈 그러니까 적국 소속 도시니까 꽃서울로 바꿔버렸습니다.

 

김봉래 : 아. 그런 사연이 있군요. 몰랐습니다. 그러면 드디어 40년대인데, 40년대는 저희가 해방을 맞는 해가 되거든요. 어떤 노래가 있었나요.

 

김장실 : 45년 8월 15일 12시에 항복 선언이 나오니까 그 날은 조금 조용히 있다가 완전히 일본이 항복했다는 것을 알게 된 16일부터는 다들 인지하게 되니까 태극기 들고 나오고 해방의 기쁨을 표시합니다. 그렇게 해방의 기쁨을 표시를 하니까 해방의 기쁨을 표시하는 대중가요들이 많이 나왔는데, ‘울어라 은방울’부터 해가지고 그 중에 ‘귀국선’이라는 노래 그 노래가 정말 해방의 기쁨을 가장 상징적으로 잘 드러낸 노래입니다.

 

김봉래 : 귀국선은 그러면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김장실 : 일본이나 중국이나 대체로 사람들이 배를 타고 많이들, 일본은 100%로 배를 타고 오고 중국에 가신 분들도 걸어오거나 기차를 타고 오거나 아니면 배를 타고 뭐 인천항이나 이렇게 돌아오는 식으로. 그래서 귀국선은 귀환 동포들이 해방된 한국으로 오는 하나의 상징으로 되어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죠. 해방 조국의 희망 같은 것을 노래하는.

 

김장실 : 네. 거기 노래 가사도 손노원 선생이 부산 부두에서 일본에서 돌아온 귀환 동포들 환영대회가 열리는 것을 보고 만들었던 가사입니다. 이인권이 불러서 엄청 히트를 했죠.

 

김봉래 : 그런데 그런 희망과는 별개로 분단이 고착화되고 그 다음에 한국전쟁이 되면서 50년대는 분위기가 확 바뀌죠.

 

김장실 : 50년대는 정말 수백만이 다치거나 죽고 국토가 정말 형편없이 부서지는, 재산이 망가지고 하는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군인들과 국민들의 사기를 올리는 진중가요도 많이 생기고 또 그것을 설파하는 노래들이 많이 나왔는데, 저는 두 곡을 택했습니다. 하나는 젊은 사람들이 전쟁 과정에서 죽게 되죠. 그러니까 마치 풀잎에 맺힌 이슬이 아침 해가 채 오르기도 떨어지듯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습니다. 그런 시기에 나왔던 노래가 ‘봄날은 간다’이고.

 

김봉래 : 아. 봄날은 간다.

 

김장실 : 그리고 53년 7월에 휴전협정이 되니까 부산에 피난 와 있던 사람들이 고향이나 서울로 오면서 그 동안 못 만났던 사람을 만나니 좋겠다하는 기쁜 일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산에서 사귀었던 경상도 아가씨들하고 헤어지니까 마음이 몹시 슬픕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리듬은 폴카 리듬으로 굉장히 경쾌하고 기쁨과 환희가 있는데 가사를 보면 서울 올라가거든 편지나 좀 써주세요 하는 경상도 아가씨의 울음이 맺혀있는 슬픈 노래입니다.

 

김봉래 : 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그렇군요. 그리고 드디어 60년대가 됩니다. 군사 쿠데타로 또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새로운 조국에 대해 희망을 노래할 수도 있는데 60년대는 어떤 노래를 고르셨나요.

 

김장실 : 예. 우선 일단 농촌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가서 출세를 하려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해서 더러는 출세하고 더러는 출세 못하고 그러는데, 촌에서 서로 사랑하던 남녀가 도시로 간 남자가 나 출세하면 모시고 갈게라는 이야기를 합니다만 막상 도시에 와서 출세를 하면 도시의 양가집 규수와 연을 맺어서 기반을 확실하게 다집니다. 촌에 남아 있던 여인이 많이 상처를 받고 헤어지게 되는데, 60년대 초중반의 라디오 드라마, 소설, 영화, 가요의 주요 주제가 성공한 남자가 그렇지 못한 여인을 버리는 것으로 해서 많이 이뤄졌습니다. 그런 게 ‘동백아가씨’이고, 남진의 ‘가슴 아프게’,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 그 다음에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하나같이 남자의 출세가 저 바다가 없으면 나는 당신에게 다가갈 텐데 당신에게 못갑니다라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김봉래 : 가도 잘 받아주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보면 상당히 금지곡들도 많았죠.

김장실 : 네. 그 당시 왜색조니 이래가지고 국가 건설의 분위기를 저하시키는 그런 노래이기 때문에 한다는 둥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서.

 

김봉래 : ‘동백아가씨’ 같은 경우는 왜 금지곡이에요.

 

김장실 : 왜색조라고 해가지고. 그 노래가 지나치게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아마 경쟁사에서 그런 식으로 걸었는지도 모르고 지금 이유를 정확하게 모릅니다. 다만 그 시절에 여러 가지 낭설이 분분합니다.

 

김봉래 :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이것이 이미자 선생님의 주된 금지곡 중에 세 가지 이렇게 있더라고요.

 

김장실 : 예. 이미자 씨의 3대 히트곡입니다.

 

김봉래 : 네. 그런데 그 당시 그런 어려움을 겪었다.

 

김장실 : 네. 그렇습니다.

 

김봉래 : 그럼 70년대는 어떻게 됩니까.

 

김장실 : 70년대는 뭐 경제의 기적이라고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굉장히 경제가 발전하니까 정부에서는 좀 PR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정부 PR용으로 만든 것이 ‘팔도강산’이라고, 김희갑, 황정순을 주연으로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만든 영화도 히트했고 최희준이 부른 ‘팔도강산’이라는 노래도 히트를 했습니다. 대체로 이런 관제 가요나 영화가 히트하는 것은 좀 어렵고 대체로 작사가와 작곡가가 흥이 나서 스스로 만든 게 흥이 나는데, ‘님과 함께’는 정말 작사가하고 작곡가가 같은 분입니다. 남국인 선생이 강남고속터미널에서 고속버스 타고 포항에 밤낚시를 갔다가 옥천 근방을 갔는데 초가지붕 없애버리고 슬레이트로 울긋불긋 만들어 놨던게 스위스 산간 마을처럼 아름답더랍니다. 그래서 그 광경을 모티프로 삼아서 작사 작곡을 해서 남진이 불렀는데, 남진의 최대 히트곡 중 하나입니다. ‘님과 함께’.

 

김봉래 : 그렇죠. 그리고 뭐 ‘고래사냥’도 인기가 있었죠.

 

김장실 : 대학교 학생이라든지 반체제 인사들, 야당은 권위주의 체제에 도전하게 됩니다. 도전하는 과정에 사회체제를 은유적으로 비판한 노래가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인데.

 

김봉래 : 그래서 금지곡도 되고요.

 

김장실 : 그 가사에 보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보이는 것은 모두가 돌아앉았네...’ 해서 마주보고 이야기해야 할 텐데 돌아앉았다고 은유적으로 표현을 하죠.

 

김봉래 : 네. 대망의 80년대인데요. 강남 개발과 동시에 이렇게 뜬 노래들이 있다고요.

 

김장실 : 강남 개발이 본격화된 것은 1970년대부터인데 거기에 그 모습이 완성된 것은 80년대입니다. 그러면서 종전의 유흥문화의 중심지가 무교동, 명동 이런 데서 강남의 소위 영동, 신사동 일대로 올라갑니다.

 

김봉래 : 그래서 ‘비내리는 영동교’가.

 

김장실 : 예. 그렇습니다. 강남 한창 전성기 시절의 강남 유흥문화를 표현한 노래가 ‘신사동 그 사람’입니다.

 

김봉래 : 네. 주현미 씨가 부른.

 

김장실 : 네. 주현미 씨가 불렀죠.

 

김봉래 : 아. 그렇군요. 설운도 씨가 부른 ‘잃어버린 30년’도 많이.

 

김장실 : 그것은 83년 휴전협정 30주년을 기념해서 KBS가 이산가족 방송을 했는데, 그 때 특별히 만들어진 노래인데 최단기간에 히트한 노래입니다.

 

김봉래 : 그 때 당시의 모습들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잖아요. 참 우리 민족의 한을 가지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것이 이산가족 문제인데.

 

김장실 :그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나이가 들어서 많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러나 이산가족문제는 현재진행형의 문제로 봐야겠습니다.

 

김봉래 : 이렇게 하다보니까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해방 이후, 또 경제부흥기, 80년대까지 이렇게 왔고, 그 이후로 40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그 뒤 사회상의 변화는 엄청나고 앞으로 연구를 더 해야 하겠습니다만 저는 이 책을 보면서 결국은 우리가 중요한 것이 군사력, 경제력 다 중요하지만 문화의 힘이 중요하다. 정신의 힘이 중요하다. 이런 생각을 해봤거든요.

 

김장실 : 예. 옳으신 말씀입니다. 옛날에 큰 제국을 건설한 나라들은 처음에는 군사력으로 이웃을 지배합니다. 그러다가 군사력과 경제력만으로 오랫동안 이웃을 지배를 할 수 없습니다. 심리적인 승복을 이루어 내려면 문화력이 뛰어나서 심리적 승복이 이루어져야 그 지배가 오래갑니다. 대체로 세계사에 빛나는 강국들은 그들의 걸맞는 위대한 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경제나 군사의 밑바탕에 정말 강력한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메카니즘을 가져야 훌륭한 선진국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김봉래 : 그렇기 때문에 독립운동으로 일관했던 김구 선생님도 문화입국을 바란다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아요.

 

김장실 : 그렇습니다. 김구 선생님이 그렇게 강조하셨던 것은 첫째도 문화이고 둘째도 문화이고 셋째도 문화이고, 하여튼 가장 갖고 싶은 것은 위대한 문화력이라고 했고. 타고르라는 인도 출신 시선으로 일컬어지는, 유명한 ‘동방의 빛’이라는 시를 썼는데, 거기에 보면 한국이 세계사에 빛나는 그런 국가가 될 거라고 예언을 했는데, 결국 그렇게 되려면 세계적으로 가장 호소력이 있고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위대한 문화를 가져야 합니다. 상당히 그런 징조가 보이고 있습니다. 한말에 나라가 망하기 일보 직전에 우리 선각자들이 물질이 중심이 되는 선천시대에는 되는 한국이 꼴등이지만 정신이 중심이 되는 후천개벽시대에서는 한국이 일등이 된다고 했는데, 그게 우리의 문화력이 그만큼 강력해져야 그런 사회가 된다는데, 지금 조짐을 보시면 요즘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만 오늘 아침 모 신문에 보면 K팝 한류 팬이 1억 명이 넘고 그 시장 가치는 8조가 넘는다는 것을 제시했습니다. 앞으로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K-트로트까지 이어가지고 더해지면 아마 우리 드라마, 케이팝,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 한류가 엄청나게 한국인의 자신감을 부여하고 국부 창출에도 영향을 크게 주리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김봉래 : 예. 그런 것 같아요.

 

김장실 : 21세기에는 콘텐츠 국가입니다. 그런데 이런 대중문화 한류를 넓게 하고 깊게 하는 작업을 계속 해야겠지만 이것 가지고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다음 단계로는 아무래도 한국이 먹고 입고 자고 하는 의식주와 관련한 생활문화 전반에서 세계 모델이 될만한 것을 창출해야 합니다. 지금은 보면 옷은 어떤 옷을 입고 회의할 때는 어떻게 하고 밥을 먹을 때는 어떻게 무엇을 하고가 전부 서양식입니다. 그런데 그 서양식을 한국식으로 바꿀만한 강력한 문화력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생활문화 한류라고 하겠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김장실 : 그 다음에 마지막 단계는 성공한 한국인들을 이끄는 정신이 뭔가. 서양은 산업화의 성공을 하면서 서양의 이데올로기가 전 세계를 지배를 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민족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부터 해가지고 모든 사회를 디자인하는 시스템, 이데올로기는 전부 서양식 사고였습니다. 그 다음 삶을 즐기는 방식 중의 하나로 삶을 운용하고 즐기고 지향하는 방식의 하나로 미국식 실용주의가 지배를 했죠. 자. 그러면 앞으로 50년, 100년, 200년, 300년 후에 새로운 미래 세상을 지배하는 신념, 관념,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를 우리가 고민해가지고 선진화시키고 고급화시키고 이러다 보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이데올로기가 세계적인 이데올로기가 되고 보편성 있게 받아들여질 시대가 오는 것을 준비를 해야 된다. 저는 그게 바로 정신문화의 한류라고 봅니다.

 

김봉래 : 네. 정신문화의 한류.

 

김장실 : 네. 그래서 우리 정신문화의 한류를 만드는 데는 지난 1,700년 동안 한국에 와 가지고 가장 우리 사상, 이데올로기 삶의 원리로서 가장 근본적으로 되어 있는 베이직 이데올로기가 되어 있는 불교가 이런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서 좀 선도를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네 편 내 편을 가르지 않는 그런 불교의 지혜와 자비의 정신이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데요. 불자 정치인으로서 앞으로의 역할을 꿈꾸고 계시고 지금까지 말씀하신 정신문화의 한류를 위해서도 앞으로 일을 더 해주시기 바라는데, 혹시 종단에 바라는 바도 계실까요.

 

김장실 : 예. 우선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외국 유학 중에 보면 일본불교나 중국불교를 설명하는 서적들은 참 많은데 한국불교를 설명하는 서적은 거의 없습니다. 중국불교는 원형을 상실했고 일본불교는 지나치게 일본 토착화해가지고 1,700년 전에 한국에 건너왔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원형 그대로 고수한 한국불교는 원형을 살리는 데는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서 재해석해가지고 무언가를 세계인에게 제시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인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 게 앞으로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 다음에 또 하나는 요즘 뭐 물질주의가 번성하다보니까 속가에 있는 재가불자들, 또 실제로 스님들이든 맹렬한 수행을 하시는 분들이 조금 적아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듭니다. 그래서 수행제일로 가서 정말 보통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그런 것을 보여주셨으면 하는 것이 재가불자로서의 저의 희망입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뭐 혹시 저희 BBS 불교방송 같은 매체에도 혹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지요.

 

김장실 : 네. 우리 불교방송이 창립된 지 오래되었는데 국민 속에서 편안하게 받아들여져서 널리 영향을 미치는 그런 방송으로 되길 바랍니다. 정말 그 동안 많이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봉래 : 네. 더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끝으로 의원님 원력이나 계획 같은 것이 있으면 이런 기회에 간단히 소개해주시죠.

 

김장실 : 네. 우선 한국이 조금 더 선진화하고 더 발전하는데 지금 너무 정체상태가 심하고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상황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내년이 대통령 선거 기간이기 때문에 선거를 잘 해서 다시 한국이 재도약할 수 있도록 좋은 나라 만드는데 제가 아주 작게나마 힘을 보태보려고 생각 중에 있습니다. 잘 하겠습니다.

 

김봉래 : 네. 의원님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출연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김장실 : 감사합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김장실 전 국회의원과 함께했습니다.

 

김봉래 : 네. 여러분 김장실 전 국회의원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요. 저는 오늘 말씀 중에서요 한류의 세 단계를 돌아보고 싶습니다. 먼저 대중문화의 한류, 그리고 이어서 생활문화의 한류, 그리고 마침내는 세 번째로는 정신문화의 한류가 나와야 한다 하는 말씀 되새겨 봅니다. 경쟁과 갈등으로 신음하는 인류에게 따뜻한 부처님의 대자대비가 세상을 가득 채우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불교방송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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