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동의대학교 영화학과 교수(영화촬영감독)
-변방 부산에서 만들어진 작은 독립영화가 해외서 주목 받아
-부산서 만들어진 최초 영화는? '운영전'으로 많이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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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연 : 정성욱 동의대학교 영화학과 교수(영화촬영감독)
● 진 행 : 박찬민 BBS 기자

 

 

다음은 주간섹션 시간입니다. 새롭게 지난주부터 선보이는 시간인데요. 부산 지역 독립영화를 포함해서 영화제작현장의 소식과 함께 지역 영화발전을 위한 현장의 제안 등을 드리는 시간으로 꾸며집니다. 영화S토커, 정성욱 동의대학교 영화학과 교수이자 영화촬영감독과 함께 앞으로 해 나가겠습니다. 전화연결하겠습니다. 정성욱 교수님 안녕하세요?

 

 

지난 주에 시간이 짧아서 아쉬웠습니다..

(정성욱) 네(하하)

 

 

지난 주에 독립영화란 무엇인가, 부산이 그나마 영화도시로 조금씩 발전해 나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는데요. 이번 주는 부산의 장편 극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볼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질문이기도 한데요. 부산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영화가 무엇인가요?

(정성욱) 영화가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1895년 탄생되었습니다. 영화의 성장기에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 시기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영화를 보급한 것도 사실 일본인들에 의해서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부산엔 1924년 조선 최초의 주식회사 형태의 영화 제작사가 설립됩니다. 그 이름이 조선키네마 주식회사인데요.

 

 

조선키네마?

(정성욱) 네네, 그 당시 이 제작사의 명성은 현재의 충무로에 비견될 정도로 컸다고 하고요. 조선키네마의 두번째 작품이 당시 유명감독 윤백남의 <운영전>이었는데 이 작품에 <아리랑>을 연출한 춘사 나운규, 감독이자 배우였죠. 나운규가 배우로 출연했습니다. 조선의 민족영화 선구자로 알려진 분이시죠. 영화로 독립군 활동을 하셨다고 평가받는 배우이자 감독입니다.

 

 

영화 운명전입니까?

(정성욱) 운영전입니다.

 

 

운영전이 부산 지역 최초 영화라고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정성욱) 그 앞에 다른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 작품은 흥행도 실패하고 그 나마 운영전이라는 작품이 조금 유명한 감독인 윤백남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에 알려지게 된 겁니다.

 

 

그렇군요. 최초를 따지자면 논란이 있을 수 있겠어요?

(정성욱) 춘사 나운규가 출연했던 영화였기 때문에 운영전이라는 작품이 최초의 작품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긴 합니다.

 

 

알겠습니다. 부산의 영화 역사가 그 처음이 유명배우였던 나운규 씨가 출연해서 무척 화려했다고 느껴집니다. 그런가요 감독님?

(정성욱) 나운규 안백남 같은 유명 영화인들이 부산에서 활동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연출하거나 출연했던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흥행에는 실패했군요?

(정성욱) 네(하하) 조선키네마주식회사의 설립자나 운영자도 일본 상인들이었다고 하고요. 다만 이 당시 유행했던 영화제작이 지금의 남포동에 일종의 극장거리와 영화 타운이 형성되었고 그 전통이 현재에까지 이어져 부산국제영화제의 탄생에 남포동이라는 동네가 일조하게 되었습니다.

 

 

현대식, 근대식 영화의 시작은 지금부터 약 100년 전인거에요?

(정성욱) 다시 생각을 해보면 영화라는 매채 자체가 조선, 우리나라에 알려지는데 부산이 큰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판단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부산의 영화가 우리 시민들에게 알려지게 된 다른 계기가 있을까요?

(정성욱) 네, 해방이 되고요. 영화산업은 서울 충무로를 중심으로 큰 성장을 하게 됩니다. 지역의 영화인들은 모두 서울로 몰려들게 되었고요. 1982년에 현재 부산 경성대학교에 연극영화학과가 설립되게 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현재 이사장인 이용관 교수님이 재직하면서 지역의 한계를 딛고 열정적으로 단편영화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작게 영화제작의 명맥을 유지해 오다 1997년 우리 영화계가 깜짝 놀랄만한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건입니까?

(정성욱) 그게 바로 바로 전수일 감독의 데뷔작인 영화 <내안에 우는 바람>이 깐느국제영화제 메인섹션인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초청이 됩니다. 그 당시만 해도 깐느영화제에 초청된 한국영화가 역사상 그리 많지 않을 때 였습니다. 1982년에 이두용 감독의 <물레야물레야>, 1989년에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정도의 작품들만이 깐느를 통해 소개된 정도였어요.

그런데 느닷없이 충무로의 메인스트림도 아닌 변방인 부산에서 만들어진 작은 독립영화가 깐느에 초청되니 한국영화계가 사실 깜짝 놀랄 사건이 된 거죠.

 

 

서울도 아닌 변방이라는 부산에서....

(정성욱) 네(하하) 그 당시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요. 1997년이라고 하면 부산국제영화게 1996년에 탄생을 하거든요.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리에 개최되어 단시간에 아시아 영화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이듬해에 일어난 일이니 자연스럽게 한국영화 산업의 모든 이목이 부산으로 집중될 시기였습니다.

 

 

부산이라는 곳이 여러 가지 역사적인 흐름도 있겠지만, 1996년, 1997년 대한민국에서 부산이 영화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그런 시기인 것 같네요?

(정성욱) 네, 맞습니다. 영화제나 작게 이어져 오던 많은 단편영화 제작자들, 감독들의 움직임이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부산의 영화, 영화도시 부산이 본격적으로 발판을 마련한 계기까지 말씀을 해 주셨고요. 다음주는?

(정성욱) 오늘 말씀들렸던 전수일 감독에 대해서...부산의 독립영화를 부산 영화를 국내를 비롯한 해외에 알린 감독님이기  때문에 그 이후에도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드셨어요. 현재도 작품활동 하고 계시고요,

 

 

내안에 부는 바람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고, 전수일 감독님의 작품활동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번 시간을 통해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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