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몇 번 다니다보니 부동산 전문가를 불신하는 버릇이 들었다. 심지어 그들 견해의 반대라야 잘 될거란 고약한 오기마저 생겼다. 사고 파는 타이밍을 제대로 못맞춘 과거 실패담의 핑계, 아니면 통찰력있는 전문가 조언이 필요할 때 결과와 다른 전망치를 던져준데 대한 원망에서 비롯된 것일게다. 가깝게 지낸 인물도,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도 서울 아파트값 시세 전망 만큼은 번번히 틀리곤 했다. 억대의 빚을 안고 집을 사려던 순간 대형 부동산 컨설팅사 간부가 “지금은 적기가 아니다, 기다리면 기회가 온다”고 귀뜸해준 것은 결정타였다. 지금 그 아파트값은 6년 전 당시의 3배에 육박한다. 이후 매년 연도가 바뀔 무렵 신문사들이 내놓는 ‘새해 부동산 시장 특집기사’를 반드시 챙겨본다. 그들 예측이 빗나가는 것을 확인하는 머지않은 날의 짜릿함(?)을 기대하며 최근에도 2021년도 부동산 전망 기사에 담긴 전문가 견해를 찾아 한숨섞인 냉소를 보냈다. 그리고는 이런 내 생각이 팩트에 근거하는지 옛 자료를 찾아 따져봤다.

   고강도 부동산 규제가 쏟아진 2020년 1년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평균 15.29% 올랐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06년 이후 사상 최대 규모 상승률이다. 아파트 절반 이상이 매매가 9억원을 넘어설 만큼 작년 서울에는 부동산 광풍이 불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하지만 국내 한 유력 경제신문의 1년 전 특집기사(M신문 2019.12.27일자)를 보면 부동산 전문가 6명 가운데 서울 집값이 오를 거라고 한 사람은 2명에 불과했다. 모 대학 부동산학과 교수, 모 부동산 연구소 소장, 모 부동산 정보업체 간부는 약보합이거나 상승세 둔화를 예측했고, 모 금융기관 전문위원은 단기조정이 이뤄질거라고 내다봤다. ‘집값 급등’을 점친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다.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13.56%에 달했던 2018년 벽두 이 신문사 특집기사는 더 참담할 지경이었다(M신문 2018.1.2일자). 부동산 전문가 15명을 한 설문조사에서 13명이 서울 집값이 ‘보합세’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토대로 뉴스는 “적어도 집값이 크게 요동칠 걱정은 없어보인다”는 친절한 해설도 곁들였다. 그로부터 2년 뒤 이 신문사는 역시 15명의 전문가들을 모셔놓고 부동산 시장을 내다봤는데 13명이 “새해에도 오른다”고 전망했다(M신문 2020.12.29일자). 비로소 서울 집값이 잡힐 시점이 도래했음을 나는 순전히 직감으로 느꼈다. 부동산 전문가 집단과 거꾸로 가는 ‘억지스런 청개구리 심리’인지 대세에 휘둘리지 않는 ‘한발 앞선 투자심리’인지 어느 한쪽은 분명히 틀릴 것이다.

   각종 언론매체와 SNS를 누비는 수많은 부동산 전문가들의 안목과 전문성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실거주건 투자건 수익률에 목마른 개미들의 욕망에 맞춰 예언론자나 점쟁이 가면을 써야 하는 ‘마케팅’ 측면이 과도한 탓이다. 반복된 정부 부동산 규제정책에 찬반 논란이 커진 것도 전문가들의 ‘확정 편향적’ 전망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소비자 정치 성향에 편승한 유튜브 논객간 가입자 경쟁이 더해져 부동산 시장이 정치판 처럼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것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들이 그랬듯 줄기차게 ‘집값 폭락론’을 설파해온 한 부동산 논객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가입자가 40만 명에 이른다. 10여년 전 ‘대폭락’ 키워드로 수많은 이들을 부동산 시장에서 탈출(?)시켜 원성을 샀던 한 작가도 10만 가입자를 두고 떳떳이 활동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특정 지역 집값 상승을 위해 부동산 스타 강사와 유튜버들이 조직적으로 뭉친 정황이 포착됐다고 한다. 시장의 앞날을 두고 예언을 멈추지 않는 부동산 전문가들의 발언을 단순히 전문가적 소신이나 고집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들의 견해가 맞고 틀리고는 어쩌면 부차적 문제일지 모른다. 집권 후 24번이나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은 문재인 정부처럼 전문가들 영역마저 진영 논리에 갇혀 작동한다면 왜곡과 교란은 더할 수 밖에 없다. 내집 마련에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무주택자들 앞에서 ‘부동산 정치학’은 사라져야 한다/경제산업부 이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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