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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인천불교총연합회 회장 능화스님

방송 : 2020년 11월 29일(일요일) 저녁 6시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 진행을 맡은 김봉래입니다. 선진국이 될수록 문화의 힘을 자랑하게 되죠. 우리나라도 K뮤직부터 스포츠,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인의 각광을 받으면서 오천년 문화의 저력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내면 또 우리의 정신문화가 남북평화통일 나아가서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계를 하나로 묶는 데는 특히 불교문화의 힘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불교의 저력을 기대해봅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요 불교 고유의 음악인 범패 기능 보유자이시고 인천지역 포교에도 앞장서고 계신 분이시죠. 인천불교총연합회 회장 능화스님 모시고 말씀 나누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김봉래 : 네. 이 자리에는 인천광역시 범패와 작법무 예능 보유자로 문화 포교에 앞장서 오신 능화스님 모셨습니다. 능화스님 안녕하세요.

 

능화스님 : 예.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김봉래 : 네. 인천불교총연합회 회장 소임을 맡으신 지가 얼마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능화스님 : 네. 지난 11월 2일 날 소임을 맡고요. 이사진 구성 또 내년도 활동 계획, 그 다음에 그런 일들을 세세한 부분을 찾아서 지금 준비 중에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자. 그동안 문화 포교에 매진해오셨는데요. 또 이렇게 인천 불교를 대표하는 총연합회 회장을 맡으시면서부터는 지역포교에는 더 매진해야 하는 상황이죠?

 

능화스님 : 그렇죠. 이제 진짜 머슴이죠.

 

김봉래 : 머슴이다 이렇게 표현을 하셨는데.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내년도 연합회 계획을 논의했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얼마 전에 간담회가 있었던 모양이죠?

 

능화스님 : 종단 대표하고 인천의 단체장들하고 모임을 저희가 갖고 거기서 실무진들하고 같이 일할 수 있게끔 인원 구성에 대한 논의를 했었습니다.

 

김봉래 : 인원구성이요. 그러면 전체 집행부라든가 이런 구성원은 다 완료가 된 거죠?

 

능화스님 : 지금 80%는 되어 있고요. 그래서 저희가 20%는 좀 더 찾아가 뵙기도 하고 또 여러 사람을 통해서 100%까지는 어려워도 95% 정도의 모임을 짜임새 있게 짜려고 노력 중에 있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그렇다고 한다면 어쨌든 본격적인 활동은 이제 새해부터 시작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뭐 전반적으로 수도권 포교가 중요하다 그런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총연합회는 조계종을 비롯해 인천 지역에 망라되어 있는 대부분의 종단들이 다 들어와 있는 거죠?

 

능화스님 : 그렇죠. 태고종, 천태종, 화엄종 해서 종단협의회에 일단 가입이 되어 있는 사찰이 우선으로 모여지고요.

 

김봉래 : 예. 30여 개 종단이 될 것 같습니다.

 

능화스님 : 그렇죠. 그렇게 되고. 혹시라도 종단협에 안 되었더라도 의사가 있으시면 같이 활동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지금 뭐 문호를 개방했다는 말씀 굉장히 힘 있게 들리는데요. 왜 그러냐 하면 인천 지역이 다른 대도시 지역에 비해서 불교세가 좀 약하다, 이른바 취약지역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스님께서는 실제로 인천 지역에서 오랫동안 포교를 해오셨지 않습니까?

 

능화스님 : 제가 올해 36년 째 하고 있고요.

 

김봉래 : 예. 구양사.

 

능화스님 : 구원할 구(救), 버들 양(楊), 양류관세음의 유지를 받들어서 세간을 구원하라 해서 큰스님께서 저희 사찰 명을 지어주셨고요. 저희가 통계를 내어보니까 타종교는 한 4천 개 정도의 시설이 있고 저희는 한 250개에서 280개 정도 사찰이 있다 보니까 상당히 열악하죠. 상당히 열악한데, 그래도 알차게 하고자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앞으로 활동이 기대가 되는데 실제로 지금 규모가 적다 이렇게 또 말씀하셨지만 그런 규모에 비해서는 짜임새 있게 나름대로 활동을 해온 게 인천불교사암연합회 활동, 총연합회 활동일 것 같은데. 실제로 그동안 보시면서 어떻습니까. 피부에 느끼는 것이.

 

능화스님 : 역시 이제 피부에 느끼기까지는 아직 미약하고요. 사실은 그래서 각각의 스님들이 주위 분들에 대한 불우이웃돕기나 장학사업 이렇게 작지만 실천하고 계시고, 저희 같은 경우는 현충재를 저희가 한 18회 째 봉양하고 있고요. 그래서 지역에서 꼭 필요한 활동이 뭔가 그런 것을 찾아서 하고 있고, 또 저희가 우취인들하고 연합을 해서 우표 전시회를 하는데, 그것이 나름대로 뭐랄까요, 활동의 의미가 크지 않나 지금 보고 있습니다.

 

김봉래 : 우취인이요.

 

능화스님 : 네. 우취인들이 있어서 그 분들이 이제 우표를, 올해 같은 경우 저희가 김구 선생을 테마로 해서 우취 그 모임을 갖고, 또 저희가 우체국 소인을 정부로부터 받아내서 그것을 찍고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나이가 드신 분이나 또 어린 학생들까지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김봉래 : 예전에 저희 때는 우표 수집이 유행이었고요.

 

능화스님 : 우표를 떼서 모으는 것은 잘못된 거고 봉투로 모아서 그것으로 작품을 만들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저희가 불교계에도 접합을 시켜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도록 그리고 또 역사적인 거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좀 가깝게 할 수 있는 그런 모임을 저희가 구상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문화포교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능화스님 : 그렇죠.

 

김봉래 : 그래서 인천 지역의 포교가 매우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잘 안 되어왔다고 한다면 그 부분에서의 원인이나 이런 분석들이 나와 있을 것 같습니다.

 

능화스님 : 저희가 많은 연구를 했었어야 하는데요. 그런 면에서는 조금 뒤처진 면이 없지 않아 있죠. 그런데 저희가 나름 없는 것 갖고 하기에는 힘들고, 있는 것 같고 좀 하자 그래서 무형문화재를 활용한 그러한 포교활동이라든지 또는 앞으로 전시회를 통해서 사진이랄지 또 뭐 동양화랄지 민화랄지 그런 것을 더 활성화시키고요. 특히 예술인들이 많이 계세요. 문학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또 이렇게 소설을 쓰시는 분들, 하여간 그런 분들이 많이 계신데 그 분들을 응집할 수 있는 그러한 모임을 갖고자 합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거꾸로 말하면 그러한 부분이 좀 약했다 이런 분야가 되는 건데, 결국 조직, 인력, 재정 그 어느 하나도 사실은 녹록치 않은 분야잖아요.

 

능화스님 : 그렇죠. 저희가 한 개도 가진 게 없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요. 그런데 없으면 가질 수 있는 확률이 커지고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지니까 좀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나.

 

김봉래 : 저는 뭐 없다기보다는 스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미 갖추어진 것에서 시작한다 이런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이미 갖추어져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것이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내느냐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정말 총연합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런 생각이 좀 들거든요.

 

능화스님 : 상당히 중요하죠. 그래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그러한 예능인들, 문화인들 또 뭐 이렇게 사회복지하시는 분들을 잘 저희가 요소요소에 일할 수 있게끔 또 뭐랄까 모시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봉래 : 네. 그렇습니다. 모든 게 마음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과 마음이 통하게 되면 연합회 활동도 훨씬 활성화될 수 있지 않을까.

 

능화스님 : 그렇죠. 많은 분들이 사실은 도와주고는 싶은데 이것을 해가지고 빛이 날까 아니면 해가 될까 그 우려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빛이 나고 실제적으로 꼭 필요한 그런 사업이 되도록 그렇게 노력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김봉래 그런 면에서는 총연합회 회장을 맡으신 능화스님의 리더십이 또 시험대에 올랐다 이렇게 봐도 될까요?

 

능화스님 : 그렇죠. 제가 태고종이라고 하는 곳의 종무원장을 하다보니까 처음에는 반발 아닌 반발이 오더라고요, 사람들이. 그래서 제 생각에 아까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무슨 장이 아닌 머슴으로 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또 같이 와주시더라고요. 또 도와주려고 하시고. 그래서 총연합회 맡으면서 이제 큰 머슴이 되었다. 내가 좀 더 하심을 하고 열심히 하다보면 더 빛나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앞으로 인천불교총연합회 활동에 기대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문화포교의 중요성을 좀 주목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딱딱한 어떤 교리라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문화로 스며드는 그런 문화포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스님께서 한 말씀 주시면요.

 

능화스님 : 그래서 저희가 이제 제가 동국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논문을 쓰면서 강화에서 팔만대장경을 옮기는 그런 장면이 나와요, 조선왕조실록에. 그래서 무슨 행사를 하려면 종교라서 안 돼요, 불교라서 안 돼요, 자꾸 이렇게 부딪히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문화재로 딱 지정을 받고 보니까 그 때부터는 일하는 데 굉장히 수월하더라고요.

 

김봉래 : 어떤 게 문화재로 지정을 받으셨죠?

 

능화스님 : 저희가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10-1호, 10-2호 해가지고 범패와 작법무. 아까 말씀 주신 그 문화재를 갖고서 저희가 학생들 포교. 그래서 저희가 전수학교가 두 군데가 있습니다.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하고 문학정보고등학교 두 학교가 있어서 저희가 학생들을 지도하고 매년 발표회도 하고 그렇게 문화적인 행사를 갖고요.

 

김봉래 : 그것은 재단차원에서 하는 건가요?

 

능화스님 : 인천시 차원에서 하는 거죠.

 

김봉래 : 아. 인천시 차원에서요.

 

능화스님 : 인천시 차원에서 전수학교를 지정한 거죠. 두 개를. 그래서 전국에 유일하게 전수학교가 두 군데가 지정이 되어서 저희가 직접 가르치고 지도하고 있어요.

 

김봉래 : 그러면 그것은 구양사 차원에서 가르치는 겁니까?

 

능화스님 : 범패작법보존회 차원에서 가르치는 거고요. 범패와작법무보존회. 저희가 나름대로 느낌이 있다면 학교 교장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아이들이 예전에는 나가서 사고를 많이 쳤는데 요즘은 애들이 싸움질을 안 합니다. 범패 가르쳐 볼만합니다. 그런 표현을 쓰시더라고요.

 

김봉래 : 아. 그렇군요.

 

능화스님 : 그래서 문화의 힘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 같아요. 상대방을 이해해 줄 수도 있고 불교의 가르침이 가볍게 녹아드는 것 같은 그런 의미를 담는 것 같습니다.

 

김봉래 : 어떻게 보면 능화스님께서는 그런 문화포교를 위한 후진양성 그런 쪽에 오랫동안 또 해오셨지 않습니까?

 

능화스님 : 제가 어떻게 하다보니까 박송암 큰스님 하고 인연이 되어서 제가 쭉 뵈어 오면서 올해 범패를 한지는 햇수로 40년 째 되더라고요. 그러다보니까 동국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중앙대학교에서도 저희가 범패를 가르쳐봤고요. 지역 내에서 일반 불자들이 범패를 많이 배웠고요. 따지고 보니까 한 4천명 정도의 뭐랄까요,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공연을 하거나 행사를 할 때 인원을 모으는 데 큰 부담이 없어요. 전화 한 통만 하면 거의 인원이 차니까. 하여간 그분들이 범패라고 하는 문화의 장르에서 부처님의 말씀, 부처님의 교리를 잘 이해하는, 물론 이해하시는 분도 계시고 안 이해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래도 봉사해야 되고 또 이렇게 와서 헌신해야 한다는 마음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김봉래 : 서로 유대도 있고 불사를 아주 잘 해나갈 것 같은데. 저는 사실 스님을 뵈면 아주 오래 전에 거의 25년 이상 전에 김포의 대곶중학교라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바라반을 지도하시고 하던 그 모습이 뇌리에 남아있거든요.

 

능화스님 : 아. 그러시군요. 저희가 우연치 않게 거기에 그게 왜 시작이 되었냐면 10월 23일인가가 음력으로 가장 추울 때라고 이야기합니다. 손돌공 추위라고 해가지고 손돌공이 왕이 피난 갈 때 뱃사공이 손돌공인데 자꾸 막혀있는 쪽으로 가니까 방향을 틀라고 왕이 방향을 틀라고 하니 그 뱃사람의 고집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가지고 결국 말을 안 듣다가 죽임을 당해요. 그런데 죽기 전에 이 바가지가 가는 대로 배를 몰고 가면 피난할 장소가 있습니다, 그런 일화가 있는데.

 

김봉래 : 네. 아주 충절이 있던 분이시죠.

 

능화스님 : 그래서 돌아가시면서까지도 왕의 목숨을 걱정했고. 그 때 죽기는 죽었는데 굉장히 추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대곶중학교 학생들이 가서 위령제 아닌 위령제를 저희가 하고 있고.

 

김봉래 : 아. 지금도 계속 하고 있습니까?

 

능화스님 : 제자가 바톤을 받아서 지금 진행을 해 왔는데요. 얼마 전에 그게 도시화가 되다보니 거기도 이제 아마 2, 3년 전에는 끝난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쭉 이어서 저희가 해왔었죠.

 

김봉래 : 그렇군요. 어쨌든 후진양성의 길을 걸어오셨고 한데 특히 범패박물관 운영하시면서 문화포교와 접목이 되고 있으시잖아요.

 

능화스님 : 그렇죠. 제가 범패박물관을 처음 시작하게 된 동기는 큰스님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입적하시고 나면 쓰시는 물건들이 다 버려지더라고요. 저희가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다보니까 그것을 잘 수집, 전시, 보존해야 되는 것이 후학들의 어떻게 보면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저희들이 범패박물관을 만들어서 하고 있고.

 

김봉래 : 아까 그 범패와 문화포교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조금 말씀을 해주셨는데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능화스님 : 저희가 범패박물관하고 지금은 이름을 작년 재작년에 범패민속문화박물관이라고 명칭을 개칭을 했는데요. 그래서 학생들이 처음에 범패라고 하면 색이 너무 강하다 보니까 약간 희석하는 것도 있고 시대에 맞춰서 민속과 문화를 접합시키는 게 좋겠다 해가지고 저희가 2008년도에 정식으로 등록을 했고요. 그리고 나서 매년 2,000명에서 4,000명까지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뭐랄까요 향내음을 자연스럽게 맡을 수 있는 그러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오시면 종이나 북이나 운판을 직접 두들겨 보는 체험 프로그램이 되는 거죠.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까 저희 지역에서는 프로그램이 뜨면 바로 인터넷에 올리면 바로 2, 3일이면 체험할 수 있는 접수자들이 끝이 날 정도로 되고 있고요. 그리고 거기에 3D 프린팅을 이용한 유물을 제작을 하거나 또는 학생들이 체험 프로그램 할 수 있는 것을 직접 만들어서 직접 와서 하면 굉장히 선풍적인 인기라고 할까요, 그런 것이 있습니다.

 

김봉래 : 놀라운 것이 요즘 학생들 그러면 전부 공부하느라고 바쁘고 게임하느라고 바쁘다 이런 인식을 갖기가 쉬운데, 현장에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좀 보여주고 계신 것 같아요.

 

능화스님 : 저희 동네 가운데 송도라고 하는 동네가 있거든요, 국제도시인데요. 거기 있는 학생들이 토요일마다 저희 박물관에 와서 체험 프로그램을 하는데 부모님들이 토요일에 그 학생들을 깨우려면 굉장히 어려운데 저희 박물관에서 체험하다보니까 일찍 일어나서 빨리 가자고 박물관에, 그렇게 조를 정도로.

 

김봉래 : 그 쪽에 국제중학교도 유명하지 않습니까.

 

능화스님 : 그렇죠. 그래서 학생들이 아무튼 저희 제자 가운데 디자인으로 박사를 딴 제자가 있어요. 그 제자가 3D 프린팅을 이용해서 게임보다도 더 재미있게 또 활용도가 높게 그렇게 디자인해서 체험 프로그램을 지금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자연스럽게 불교가 문화 속에서 녹아들면서 포교효과가 커진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사실 스님께서는 국제교류 쪽에서도 활동을 많이 해오지 않으셨습니까?

 

능화스님 : 저희가 한 16개국 정도를 왕래하면서 서로 교류도 하고 가서 공연도 저희가 해보고요. 그렇게 했었죠. 오스트리아, 독일, 벨기에, 미국, 일본, 아무튼 저희가 캄보디아, 태국, 중국, 여러 군데 가서 했고요.

 

김봉래 : 지금은 또 코로나 때문에 주춤할 수도 있겠습니다.

 

능화스님 : 쉬어야죠. 쉬고 있는데, 제가 반가운 소식을 접한 것은 2010년도에, 2011년도 되겠네요. 미국 라크마 박물관에서 우리나라 신흥사에 있는 영산회상도를 복원하는 사업을 했었어요. 그 미군병사인지 누가 잘라가지고 괘불을 잘라가지고 가져갔는데 그게 수장고에 있는 것을 우리 한국인 학예사가 발견해서 그것을 복원 작업을 했어요. 저희 팀이 가서 점안식도 하고 행사를 했는데, 저희가 기분 좋았던 것은 거기에 있는 지식인이랄지 교수 분들 이야기가 여태껏 많은 공연을 봤지만 감동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그런 말씀이 너무 좋았고. 또 한편 기쁜 것은 거기 모셔져 있던 그 영산회상도를 이번에 신흥사에서 모시고 왔어요. 모시고 와가지고 그 쪽에 가운데 계시는 분이 아주 성대하게 맞이하는 식도 하고. 참 인연이라는 것이 참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죠.

 

김봉래 : 노력하신만큼 결실도 거두었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계시네요. 그런데 사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가 될 것이다 그렇게 예측을 많이 했었고 한데요, 실제로 현장에 계시면서 뭔가 이런 부분은 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국가 정책적으로 반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도 상당히 있을 것 같아요.

 

능화스님 : 올해 저희가 백범 김구 선생님 사업을 하면서 본인이 원하는 것은 문화가 강한 문화가 훌륭한 나라가 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김봉래 : 문화강국.

 

능화스님 : 문화강국. 그런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 저희가 전수생이나 이수생들을 배출하면 한 3, 4년 지나면 안 나와요.

 

김봉래 : 왜 그렇습니까.

 

능화스님 : 왜 안 나오느냐를 처음에 모르고 제가 전화를 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배가 고프다.

 

김봉래 : 생계문제가 있죠.

 

능화스님 : 생계문제가 가장 큰 것이 그게 이제 저희가 해결을 해야 될, 그것이 직업이 될 수는 없는데, 그래서 지금은 제자들한테 본인이 직업이 확실하고 문화 전승, 문화재를 전승하는 부분은 취미로 해라. 왜냐하면 뭐랄까요, 생계유지까지 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그런 말씀을 드렸고.

 

김봉래 : 그런데 사실은 국방비에 수십 조 씩 들이는 현실을 보면 문화예산이 너무 적지 않습니까?

 

능화스님 : 그러니까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은 3%의 소금 때문에 썩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과연 문화 쪽에 3%가 쓰이고 있는지, 그냥 어느 한 연예인이 뜨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지. 그러니까 그것은 좀 생각을 많이 해봐야겠죠.

 

김봉래 : 그렇죠. 그런 부분에서도 쏠림 현상이 좀 심한 것 같아요.

 

능화스님 : 그렇죠. 문화는 표로 봤을 때는 이게 뭐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는 썩 정치하시는 분들한테 뭐랄까요, 와 닿는 부분이 아니지 않나 생각이 들고, 어느 때는 문화를 굉장히 사랑하시는 분들이 시장이 되었을 때는 저희가 나름 뭐랄까요, 사는 것 같은 기분도 든 적이 있었는데요. 그렇지 않은 경우는 뭐 적당히 알아서 하면 됐지 이런 류의 사람도 없지 않아 있었거든요. 저희는 일단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외부에서 어떤 바람이 불던 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준비하다 보면 펼칠 수 있는 기회는 많이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래서 어떻게 보면 계신 지방자치단체죠, 인천광역시에도 뭔가 주문하고 싶은 그런 부분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능화스님 : (후보자로) 출마 하실 당시는 찾아오셔서 뭐가 필요하십니까 뭐 부탁 아닌 부탁을 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데 막상 되고 나면 워낙 바쁘다 보니까 잊어버리는 그런 게 없지 않아 있어요. 그래서 전에는 제가 많이 기대고 많이 도와줬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은 없어요. 없고. 좀 행정적으로나마 도와줬으면. 그렇게 해서 공연을 좀 깔끔하게 또 우리가 하는 문화행사가 시민들한테 널리 알려질 수 있는 그런 창구를 개설해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죠.

 

김봉래 : 그런데 실제로 인천이 굉장히 큰 광역시임에도 불구하고 이름값과 규모에 걸맞지 않게 문화적인 측면이나 인지도나 이런 면에서는 조금 뒤떨어지지 않나 이런 생각이 좀 드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능화스님 : 그런 면에서는 사실은 좀 부끄럽죠. 부끄러울 정도로. 그런데 이제 인천시가 사실 모라토리엄까지 가려고 했던 곳이 인천입니다.

 

김봉래 : 아. 그렇습니까.

 

능화스님 : 그러니까 40% 이상 되면, 38%까지 갔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저희도 크게 목소리를 아직 못 내고 있어요. 사실은 점점 그런 게 개선이 된다면, 지금 많이 개선은 되었어요, 개선이 되어 가고 있고.

 

김봉래 : 재정 자립도가 상당히 떨어진다 이 말씀이시죠.

 

능화스님 : 그렇죠. 그런 것도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는 있는데요. 그렇게 되면 저희가 많은 것을 또 요구를 해야 되겠죠.

 

김봉래 : 자. 어떻게 하다 보니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요. 우리 불교계 종단 차원, 범불교적인 차원에서 뭔가 좀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능화스님 : 저는 사회복지학 전공을 먼저 했어요, 사실은요.. 그래서 1급 사회복지사 자격을 따고 나서 어떻게 하면 불자들한테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까 생각을 하고 있다가 웰빙까지는 거의 어느 정도까지는 수준이 와 있다고 보고요. 앞으로 불교에서 할 일은 웰다잉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죽자.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죽는 것이냐. 병원에서나 요양원에서 죽는 것 보다는 남방 불교 쪽에 가다 보니까 나이 많이 드신 분들이 보리수 아래에서 염주를 돌리고 정진을 하시는데 어떻게 보면 성스럽기까지도 하고. 그래서 전국에 풍치 좋고 장소 좋은 곳에 절이 많이 있는데 웰다잉 할 수 있는, 불자들이 평생을 부처님께 공양을 하고 큰스님들 시봉을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그런 불자들을 위해서 불교에서 시봉을 좀 들 때가 되지 않았나. 그래서 아 나 앞으로 절에 가서 염불하면서 정진하다가 세상을 내가 바꿔 타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시는 게 이런 프로그램이 앞으로 좀 많이 나와 줘야 되지 않겠나. 제가 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나 불교방송에서도 더 세미나도 좀 하시고 또 그러한 운동을 많은 분들이 하고 실질적으로 연세 드신 우리 불자님들이 절에 가서 부처님 곁에서 한 번 이렇게 생을 마감도 하고 좋은 곳으로 가실 수 있는 그런 극락의 교두보로 삼으면 좋지 않겠나 그런 안을 제가 제시해봅니다.

 

김봉래 : 연세 드신 분들에 대해서도 말씀을 주셨지만 이렇게 젊은이들 또 불자도 좋고 불자 아닌 젊은이들도 좋은데 어떻게 한 말씀을 주시면요.

 

능화스님 : 지금 청소년들이 사실은 뭐 4포, 5포 이렇게 이야기 하는데요. 스트레스도 많이 쌓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 자연스럽게 사찰에 가기만 해도 물소리, 바람소리, 그 산세의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피톤치드라고 그러시는데 그런 것 정도만 맡아도 그리고 산사에 들어오는 순간만 해도 학생들한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가 되었든 아니든 아니신 분들도 사찰을 자주 찾아가는, 그래서 또 절하는 것도 배우고 참선도 배우고 일상 속에서 사찰이 불교가 묻어날 수 있는 그런 게 되어줘야 청소년들이 뭐랄까요 바른 길을 갈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해보고요. 언뜻 생각해보니까 옛날에 집도 절도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사회복지학은 최고죠. 집이 없으면 절이라도 가서 다 해결이 되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쉽지 않거든요. 그런 것도 사찰에서 진짜 문호를 많이 개방하는, 와서 편안하게 지내는. 쉼터가 뭐 가깝게 있는 것도 좋은데요. 진짜 마음의 고향인 사찰에서 쉼터를 찾는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나 생각이 듭니다.

 

김봉래 : 네. 그래서 불교가 어떤 의지처가 되고, 마음을 평안하게 할 수 있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요즘 뭐 코로나 때문에 사찰 방문도 쉽지가 않아요.

 

능화스님 : 그러니까 꼭 사찰 들어가는 것보다 들어갈 수 있으면 좋고 산에 포행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가지면 좋지 않겠나 생각해봅니다.

 

김봉래 : 자연과 가까이 할 때 자연스러운 마음, 인간의 어떤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본래 가진 이타적인 마음,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 듭니다. 자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끝으로 앞으로 스님의 비전 말씀해주시는 것으로 오늘 인터뷰 마칠까 하는데요. 한 말씀 주시죠.

 

능화스님 : 제가 인천광역시 불교총연합회 회장을 맡으면서 테마를 어떻게 잡을까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불교인’을 갖고서 인천불교연합회를 또 앞으로 불교활동을 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능화스님 : 많이 가진 사람이나 적게 가진 사람이나 또 많이 배운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행복한지 물어봤을 때 행복하지 않다는 말을 많이 해요. 불교라고 하는 종교는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라고 부처님이 깨우치신 건데 사람들은 고행하는 것만 생각하거든요.

 

김봉래 : 그것은 과정인데. 어떻게 보면.

 

능화스님 : 과정일 뿐인데요. 그러니까 열매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행복한가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고 또 정진하겠습니다.

 

김봉래 :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능화스님 : 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김봉래 : 지금까지 인천불교총연합회 회장 능화스님과 함께했습니다.

 

김봉래 : 네. 여러분. 인천불교총연합회 회장 능화스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 중에서요 3%의 소금이 바닷물이 썩지 않는 이 항상성을 유지시켜준다 하는 것처럼 3%의 문화예산이 우리 국민의 행복을 뒷받침할 수 있다 그런 취지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21세기 문화의 세기라고 하는데요, 범패를 비롯한 우리 전통문화가 그러한 역할을 다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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