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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광우스님(서울 화계사 교무)

방송 : 2020년 8월 2일(일요일) 저녁 6시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 진행을 맡은 김봉래입니다. 뜨거운 여름 8월의 첫 일요일입니다. 인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코로나19의 위세가 여전한데요, 하지만 이는 또한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죠. 과거의 세계관, 과거의 생각과 습관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진실에 입각한 생각과 행동을 해야만 행복을 구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와 자비를 강조하는 불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교가 어떤 조망을 안겨주는지 다시한번 돌아볼 때입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은요, 방송 진행자로 활약하고 계신 스님이시죠. 화계사 교무 광우스님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네. 앞서 소개해드린 대로 화계사 교무 광우스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광우 스님 안녕하세요.

 

광우스님 : 예. 안녕하세요.

 

김봉래 : 네. 요즘 뭐 사찰에서 또 방송을 통해서 많은 분들과 만나고 계신데요. 코로나 때문에 좀 영향은 없으신지요.

 

광우스님 : 예. 영향이 많습니다. 뭐 이미 다 주지하고 계시겠지만 코로나 때문에 종교계에서도 또 이제 사찰에서도 법회라든가 그런 어떤 공부의 모임이 많이 축소되었고요. 저 같은 경우에도 개인적으로 각 지방 사찰에서 법회 요청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많이 좀 위축된 상황입니다.

 

김봉래 : 그러니까 뭐 예외가 없죠.

 

광우스님 : 예외가 없죠.

 

김봉래 : 뭐 사찰이라고 또 코로나가 피해가는 것은 아니고.

 

광우스님 : 그리고 또 사찰에 오시는 우리 불자님들 가운데서 자영업 하시는 분들 계시잖아요. 다들 너무 힘이 드신다고 해서 우리 불자님들 또 일반 자영업자 분들 이야기 듣다보며 저희도 가슴이 좀 찡합니다.

 

김봉래 : 그렇습니다. 이 위기를 지혜롭게 잘 극복을 해야 되는데, 그래서 그러한 지혜를 우리가 모아보기 위해서 우리 광우스님 이렇게 모셨습니다. 여름하면은요, 저희는 여름불교학교 내지는 하안거, 백중 뭐 이런 것을 떠올리게 되거든요. 스님은 어떠세요.

 

광우스님 : 예. 여름하면 일단 저는 여름이 되게 싫어요. 몸이 너무 열 체질이어서 여름이 되면 너무 싫고 또 여름 되면 저희가 더운 날에 가사장삼을 입지 않습니까. 그리고 칠칠은 49일로 해서 하안거 해제, 백중 49일 전부터 저희가 또 독경을 올리지 않습니까. 그래도 또 우리 불자님들 인연 있는 모든 조상영가님들 다 부처님 가피로 천도시켜드린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어떻게 보면 이 뜨거운 여름이 새로운 발심과 정진의 기간이 된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저도 예전에 대학교 시절에 여름수련대회 한 4박 5일,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이런 데 가보면 정진하는 시간이 굉장히 힘들거든요. 덥고. 그런데 틈틈이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프로그램과 프로그램의 사이, 그게 굉장히 꿀 같은 그런 맛이거든요. 지도하시는 스님들께서는 어떠셨습니까.

 

광우스님 : 저는 그냥 더운 거 자체가 싫어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에도 뭐 송광사 있었을 때 수련대회에서 잠깐 법사로 활동한 적도 있었는데, 일단 가장 중요한 게 자기들이 좋아서 수행하고 싶어서 온 시간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떨 때는 어떤 열성적인 불자님 같은 경우에는 휴식시간을 많이 줘도 싫어하시더라고요. 예. 그래서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김봉래 : 저도 약간 그런 과의 한 사람이었는데요, 나중에 조금 정상을 되찾았습니다만. 그래서 오늘 스님께 여쭤볼 것이 안거 있지 않습니까. 안거가 지금 우리 불교계가 한국불교가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살아있다, 이런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안거의 기원이라든가 의미라든가 이런 것을 좀 일반인들은 잘 알기가 어려워서요.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광우스님 : 원래 부처님 당시 초창기에는 안거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당시에 초창기에는 또 사찰이라는 것이 원래 없었어요. 그래서 부처님의 소수의 제자 분들이 나무 밑에서 수행을 하시고 혹은 동굴 안에서 잠을 주무시고 묘지에서 생활을 하면서 수행 정진하셨다라는 기록이 있지요. 그러다가 부처님의 제자 분들께서 점점 늘어나면서 우기 때, 우기가 인도에서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을 우기라고 하거든요.

 

김봉래 : 엄청 나게 오죠. 아샘 지방은 뭐 연간 10,000mm 이상이 온다고 하니까.

 

광우스님 : 한국의 장마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우기 때 모두 숲이 축축하고 습하다보니까 그 때 벌레들이 많이 나왔대요. 그런 벌레들이 나왔을 때 스님들이 만행을 한다고 왔다갔다 하다가 벌레들을 발로 밟아서 죽이게 됩니다. 그러니까 불교를 좋아하지 않았던 다른 종교를 믿고 있었던 이교도들이 “아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은 자비롭다고 하더니 그거 다 거짓이었구나. 자비롭다면 어떻게 우기 때 저렇게 돌아다니면서 벌레들을 함부로 죽일 수가 있냐.”

 

김봉래 : 살생하니까.

 

광우스님 : 그렇죠. 물론 실수로 밟아 죽인 거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보기가 안 좋았겠죠. 그리고 또 스님들이 길이 끊기거나 혹은 무슨 물에 휩쓸려서 목숨을 잃으신다거나 혹은 수행정진하시다가 맹수를 만날 때도 있고 여러 위험에 노출하게 됩니다. 그러다 부처님의 충실한 재가신자였던 빈비사라 왕이 부처님께 처음으로 사찰을 지어서 보시를 올리게 됩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죽림정사가 되겠죠. 그러면서 빈비사라왕이 부처님께 “부처님 지금 다른 종교에서는 안거라는 게 있어서 우기 때는 돌아다니지 않고 사원에서 거처하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 분들도 사찰에서 우기 3개월 동안은 안거에 드시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청을 올립니다. 사실 안거라는 게 불교 이전에 다른 종교에 있었던 겁니다. 인도 사회에서. 부처님께서 그 말씀을 들으시고는 옳다 여기시고 그 때 3개월 우기 때 안거제도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죠.

 

김봉래 : 그렇죠. 그것이 이제 동아시아에 와서는 동안거 또 하안거 전통으로.

 

광우스님 : 예. 눈이 많이 내리니까 동안거라는 게 또 생기게 되죠.

 

김봉래 : 또 무더위니까 하안거. 어떻게 보면 이제 불교가 어떤 하나의 사회적 역할, 사회 속에서의 기능 이런 것을 무시하지 않고 또 사회여론 이런 것을 무시하지 않고 그것을 충분히 감안해서 우리가 활동을 해왔다, 이런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지금 코로나 시대고 비대면 시대이기 때문에 그런 사회적 역할이 자칫 약화되는 것 아닐까 이런 걱정도 조금 있거든요.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될지요. 스님.

 

광우스님 : 불교는 굉장히 융통성이 강한 종교입니다. 대면의 시대일 때는 서로가 마주보고 서로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시대일 때는 그런 시간일 때는 많은 대중법회를 통해서 불법을 전할 수가 있고요. 요새 바이러스 때문에 소위 비대면 시대지 않습니까. 그 때는 이제 잠시 시끌벅적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한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으로 변화시키면 그것이 수행정진 하는데 또 크나 큰 공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봉래 : 네. 그렇죠. 그래서 요즘에는 안거, 동안거, 하안거 이런 것에서 새로운 형태의 안거들이 좀 나오는 것 같아요. 단순히 그냥 적막한 산 속, 산사에서만 정진하는 것 아니라, 그것도 좌선만 하는 게 아니라 행선이라고 할까요, 걸으면서 하는 그런 어떤 수행이라든가 또 새로운 명상 전통이 한국불교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어떤 수행문화를 만드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은데, 스님께서는 요즘의 그런 수행문화의 변화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계신지요.

 

광우스님 : 일단 수행 자체는 굉장히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2,600년의 불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절대 부처님의 가르침이 고정된 형태로서 전해져 내려온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도 율장에서 말씀하셨지만 그 시대와 그 문화나 그 나라의 환경에 맞춰서 자그만 소소한 계율은 조금씩 바뀌어도 된다고 허락을 하셨거든요. 그리고 또 2,600년 동안 불교의 역사를 보면 끊임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시대적인 변화와 요청에 따라서 조금씩 변화된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 숨어 있는 지혜와 자비를 발굴하는 게 중요하겠죠.

 

김봉래 : 네. 스님께서 말씀하신 불교의 융통성 이런 부분을 우리가 오늘날 다시 응용해서 한국불교도 한걸음 더 발전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사실은 불교가 8만 4천 법문이 있지만 한 글자로 요약하면 마음심(心) 자 하나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우리 마음가짐에 대해서 중시를 하고 있고요. 그런 마음가짐의 변화가 어떤 그 인격의 변화까지 이렇게 가는 것인데, 지금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여러가지 교육이라든가 또 사회시스템들이 어떤 좋은 사회로 만들고 좋은 사람으로 만들자는 어떤 큰 뜻은 좋지만 실제로 그것을 시행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시행착오도 겪고 결과도 그렇게 좋지는 않은 것 같거든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스님께서는 과연 불교가 사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데 어떻게 좋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광우스님 : 먼저 이 세상의 역사를 보면 완전했던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 시대 시대마다 불완전한 모습이 분명히 있었고요, 끊임없는 역사의 진행을 통해서 지금은 인권도 많이 개선이 되고 사람들의 인식도 예전보다는 많이 향상이 되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중생이라는 존재 자체가 굉장히 이기적인 면이 강합니다. 더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사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마음은 그대로 지속되어져 있거든요.

 

김봉래 : 저희의 DNA에 그렇게 입력이 되어 있다라고까지 서양 자연과학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광우스님 : 그렇죠. 뭐 <이기적 유전자>라고 해서 한 때 베스트셀러 책도 있었죠. 그런데 불교가 우리에게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은 금방 말씀하셨던 바로 수행의 힘입니다. 수행의 힘을 통해서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을 제거하면 제거할수록 나도 편안하고 행복해지고 더 나아가 모든 존재도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가 있거든요.

 

김봉래 : 그러니까 그것이 단순히 이기심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자기에게 이롭고 진실로 동시에 그것이 남에게도 이롭다. 그러니까 이기와 이타가 함께 어우러진다라고 보는 게 좋겠죠. 스님.

 

광우스님 : 아주 정확하게 짚어 주신 것 같고요. 그래서 예불문에서도 남을 성불시키겠습니다라고 표현하지 않고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나도 성불하고 자기 자신도 성불하고 타인도 성불하겠습니다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김봉래 : 그래서 요즘 자칫 오해하는 것이 남을 위해서 살라고 하면 자기는 제치고 남을 위해서 살라는 게 안 맞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혼동을 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아니라 정말 진정한 자리이타가 되어야 한다, 불교의 수행이 직결되는 길이다 이런 이야기인데. 결국 요즘 시대의 대세가 힐링 아니겠습니까. 힐링이라는 게 어떤 이기적인 욕망이 아니라 진정한 힐링은 그런 상구보리하화중생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스님께서는 요즘 붐이 일고 있는 힐링 붐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광우스님 : 저는 솔직히 말하면 힐링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먼저 힐링이라는 개념부터 좀 명확하게 해야 오해의 여지가 없을 것 같은데요. 이제 제가 싫어한다는 힐링이라는 것은 요새 힐링 강의, 힐링 법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딱 들을 때뿐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앉아서 들을 때는 박수치고 웃다가 집에 오면 변한 게 없어요. 제가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나봤고 대화를 하고 제가 직접 들었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박수치고 웃을 때는 뭔가 다 될 것 같은데 집에 오고 생활하면 원래 그 자리입니다. 변화가 없는 거죠. 그래서 제가 제안을 드리고 싶은 게, 힐링, 귀로 듣고 귀로 나가는 힐링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하고 몸으로 닦아나가는 수행이 중요하다라고 제가 꼭 여러분들께 강조를 드리고 싶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그러니까 몸과 마음이 같이 이렇게 가야 되는데. 사실은 불교를 처음 입문하는 분들이 그런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는 좀 일부 있습니다. 그래서 절에서 스님께 좋은 법문을 듣고 법담을 나눌 때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데 집에 들어가 보면 여러 가지 환경 속에서 그 생각을 이어가지 못하고 끊어지거든요. 그래서 번뇌에 시달리고 다시 또 사찰에 와서 스님 법문을 듣고 경전을 보다가 깨우치고 이런 과정을 시행착오를 겪다가 점점 지혜가 계발되는 그런 부분도 좀 있는 것 같은데요.

 

광우스님 : 이제 그런 것에 대한 비유가 이미 불교 내부에 굉장히 많습니다. 뭐 닦아도 닦아도 닦는 것 같지가 않아요. 자꾸 엎어지고 엎어져요. 그럴 때 이제 우리 선지식들께서 그것에 대한 비유를 많이 드셨는데요. 가장 적당한 게 있다면 콩나물에 물 붓는 것. 우리가 콩나물 키운다고 거기다가 이제 물을 쭉 부면 물이 다 어떻게 되죠. 쫙쫙 빠져나가죠.

 

김봉래 : 다 빠져 나가죠.

 

광우스님 : 그런데 빠져나가든 말든 물이 왜 이렇게 빠져 나가지? 그 때 어차피 물 다 빠져 나가는데 키워 받자 뭐하냐가 아니라 물이 빠져나가든 말든 계속 물주다 보면 어느 순간에 쭉 자라있지 않습니까. 그와 같습니다. 우리가 절에 다닐 때 불도를 닦고 불교를 수행할 때 비록 우리 수행의 공덕이 쫙쫙 빠져나가는 것 같아도 꾸준히 닦고 닦다 보면 어느새 쑥 성장해 있을 겁니다.

 

김봉래 : 저희들이 대학시절 또 젊은 시절에 흔히 겪게 되는 오류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스님들께서 청년회를 안 좋아해요. 대학생회를 안 좋아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남에게 요구만 하지 스스로 안하려고 한다는 거거든요. 그리고 아까 스님 몸으로 해야 된다는 말씀하셨지만 스님들께서 그렇게 고구정녕하게 수행을 이야기해도 머리로만 수행을 하지 몸으로 수행하는 경우가 적어서 그렇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해보거든요. 스님 어떠세요.

 

광우스님 : 제가 조계사 청년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2년 넘게 법문을 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조계사 청년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되는 청년회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김봉래 : 네. 지금도 꾸준히 진행이 되죠.

 

광우스님 : 네. 조계사 청년회에서 제 나름대로 인기 법사였거든요. 그 때 조계사 청년회 거기 소임을 보는 우리 청년 불자들한테 제가 조언을 들은 게, “스님 저희들한테 법문해주실 때 딱 유치원한테 법문해준다고 생각해주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청년이라고 해서 수준을 높이 보지 마시고 이제 갓난아기처럼 첫걸음을 떼는 그런 유치원생, 초등학생에게 강의를 해준다, 법문을 해준다는 마음으로 해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청년회 때문에 만약에 상처를 받으신 스님들이 계시다면 청년이라는 존재를 너무 기대보다 높게 생각을 하셨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을 해요. 청년들도 겉으로는 자랐지만 정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불교를 배우면서 아직 왕초보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왕초보를 가르친다라는 마음으로, 정말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수준의 그런 어떤 불교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한테 왕초보의 입장에서 이제 법을 가르친다라는 마음으로 마음을 비우니까 훨씬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김봉래 : 그 청년도 그것을 단순히 스님 말씀을 귀로 듣고 그것을 하나의 지식화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체화가 되면서 그것이 지혜로 발현될 수 있는 그런 조건을 형성시켜주신 거라고 보면 될까요?

 

광우스님 : 예. 그렇게 보셔도 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회 중에서도 쟤는 절을 몇 년을 다녔는데도 어째 저러냐라는 불자도 있겠지만 상당히 수준 높은 청년불자들도 몇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우리가 끊임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까이 하다보면 자기도 느끼지 못하게 향냄새가 몸에 배어나오듯이 지금 당장 내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얼만큼 이해하고 있고 얼만큼 받아들이고 있냐 그런 거에 너무 집착할 필요 없이 그냥 꾸준히 꾸준히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부처님의 은은한 향기가 배어나오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봉래 : 네. 우리 방송 듣는 우리 청취자 분들 모두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이죠, 불방일, 게으름 없는 정진, 다시한번 되새겨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도 보면 인간인지라 아직은 지혜가 부족한지라 늘 과거의 생각, 과거의 습관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가고 다시 되돌아가고 이런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 것 같은데, 사실 우리 사회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민주사회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민주에 대한 개념도 다르고 그러다보니까 또 정파적인 분쟁도 심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떤 한 사물을 볼 때 이렇게 공감을 얻어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점점. 민주라고 하는 하나의 단어를 이야기할 때는 다 오케이를 하는데 실제로 각론에 들어가서는 차이가 많거든요. 이런 부부에서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나아가는데 있어서 조금 뭐랄까 기로에 서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말씀을 주실 수 있을까요.

 

광우스님 :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끊임없이 다투고 싸우고 화합이 되지 않을까 끊임없이 고민을 해봤을 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결국 이기심입니다. 이것을 우리 불교의 심리학이라고 불리는 유식학에서는 바로 아집 혹은 나의 견해라는 아견 혹은 나라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아치, 내가 잘났다는 아만, 결국 ‘아(我)’이거든요. 나라는 생각.

 

김봉래 : 에고(ego).

 

광우스님 : 그렇죠. 영어로 하면 ego가 되겠죠. 그래서 저희가 무슨 생각을 하냐면 어떤 똑같이 서로가 옳다고 보는 것도 깊이 대화를 나눠보면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끊임없이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쉽게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사람들이 저마다 이렇게 생각이 다 다르구나. 그러면 왜 생각이 다를까. 결론은 또다시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결국 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는 이 '나'라는 것. 나의 집착과 나의 어리석음과 나의 견해라는 것 자체를 소멸하지 않는 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정한 불국토의 세계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김봉래 :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개인수행을 하면서도 내가 가졌던 생각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임시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도 많고, 또 잘못되었구나 하는 것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스님들도 참선을 하고 나오셔서 법담을 하시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대화를 하다 보면 대화를 잘 하다 보면 서로가 느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아. 내가 이 생각은 좀 잘못이었구나. 그래서 수행도 어떻게 보면 이 법담이라고 하는 것이 좋은 하나의 방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스님.

 

광우스님 : 부처님께서도 경전에서 말씀하시기를 항상 좋은 도반들과 법에 대해서 논해라. 법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라라고는 하셨지만 실제로 법에 대해서 대화하다 싸움 나는 경우도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른 스님들이 뭐라고 하시냐 하면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개구즉착이다. 입을 열면 다 틀린 거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입장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법담이라는 게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법담을 나누다보면 또 자기 견해, 자기 생각이라는 게 자꾸 드러나거든요. 그래서 법담이라는 것도 반드시 그 밑바닥에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김봉래 : 그렇죠. 겸손이 있어야 하고.

 

광우스님 : 그렇죠.

 

김봉래 : 사실은 방송도 늘 말로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말로써 말에 의한 집착을 제거한다라고 할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독으로써 독을 제거하듯이. 그래서 방송을 5년, 10년, 20년 이렇게 들으신 분들이 어느 날 마음이 좀 풀려서 정말 가정생활 또 사회생활을 잘 하는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스님. 실제로 방송을 하면서도 그런 사례를 많이 접하시지 않습니까. 어떻습니까?

 

광우스님 : 제가 방송 활동을 하면서 가장 주된 주제로 제가 많은 분들에게 다가간 것이 바로 부처님, 보살님, 불보살의 가피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동안 방송활동 하면서 공개한 가피 이야기만 수백 가지가 넘을 거예요. 그러한 가피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도 저와 친하게 지내는 불자님들 중에 정말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신비한 가피 받으신 불자님들이 많거든요. 그러한 불보살의 가피를 통해서 실제로 자신의 삶에 굉장히 아름답고도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한 모습들을 볼 때 오히려 스님이지만 제가 오히려 감동을 받을 때가 있었어요. 정말 대단하다. 불보살 가피가 정말 있구나.

 

김봉래 : 희망적이에요.

 

광우스님 : 불보살의 가피야말로 이 힘들고 괴로운 세상에 희망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김봉래 : 그렇죠. 보통 생각할 때는 될까 했던 일들이 공부를 하고 정진을 하다보면 어느새 풀려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을 하지 않고, 1층 2층을 쌓지 않고 3층만 바라보게 되면 언제나 3층은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이 돼버리지만 묵묵히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놓고 1층 2층을 쌓다보면 3층은 되는 거거든요.

 

광우스님 : 요새 부처님의 가르침이 서적으로 인터넷으로 방송으로 너무나 많이 공개되다 보니까 소위 이제 똑똑하신 불자님들이 많으세요. 똑똑하신 불자님들이 많으신데 그런 분들 중에 또 폐단이 생기는 형상이 뭐냐면, 입으로만 따져요. 몸으로 실천하지 않고 몸으로 수행하지 않고, 몸으로 체험하지 않고, 머리로 따지고 입으로만 따지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항상 불자님들에게 드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지식으로 따지지 말고 체험으로 얻어야 된다. 그래서 수행하고 정진해라는 말씀을 자주 드립니다.

 

김봉래 : 그러니까 문자가 지혜로 가는 사다리가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것이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말씀 아주 귀한 말씀으로 새겨듣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사실 여쭤보고 싶은 것은요, 사실 저희가 과거 현재 미래 3생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아무리 따져도 과거나 미래, 어떤 내생 이런 것을 아직까지는 밝혀내지 못하고 있거든요. 현대과학적으로요. 하지만 불교에서는 분명히 3세와 윤회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조상님 천도라든가 우란분절, 백중기도 굉장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어떤 말씀을 주실 수 있을까요. 스님.

 

광우스님 : 제가 19살에 처음 출가했을 때 오직 참선하려고 출가했거든요. 저도 제가 이렇게 책 많이 보고 말을 많이 할 줄 저도 몰랐어요. 오로지 참선해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출가를 했는데, 절에 와서 출가하고 보니까 제사를 많이 지내는 거예요. 천도재니 49재니 제사를 많이 지냈는데. 처음에 저는 그런 게 너무 마음에 안 들었어요. 아니 마음을 깨치는 게 바로 부처님의 법이지 무슨 절집이 귀신 팔아먹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점점 경전을 공부하고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닦으면서 염불도 하고 기도도 하고 또 여러 큰 스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돌아가신 영가 분을 위해서 재를 올린다는 게 절대 허투루 하는 게 아니구나. 분명히 그 안에 깊은 뜻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제가 확연하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김봉래 : 실제로 그런 기도를 통해서 가피를 받고 이런 경우도 많이 접하셨죠.

 

광우스님 : 너무나 많죠.

 

김봉래 : 그러니까 이게 예전에는 그런 것을 하나의 문화로만 치부하고 부처님의 어떤 깨달음, 어떤 지혜와는 다른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 말씀 들어보면 그것이 다 같이 녹아져있다, 이렇게 봐야 되는 것 같아요.

 

광우스님 :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부처님께서 지금 살아 있는 중생들을 위해서 살아 있는 중생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불법을 설해주셨잖아요. 반대로 죽은 중생을 위해서는 그 죽은 중생의 제도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과연 안하셨을까요. 살아 있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법을 설해놓았듯이 죽은 중생들을 위해서 또 깨달음의 길로 이끌기 위해 만들어 놓으신 방편법이 있죠. 그 죽은 중생들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방편법을 우리 불교에서는 네 글자로 영가천도라고 부르게 되는 거죠.

 

김봉래 : 네. 죽은 게 죽은 게 아니라 어떤 중음신의 형태로 존재 형식을 바꾸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죽는 게 죽는 게 아니다라고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 우리 불교계도 앞으로 또 많은 변화가 예상이 됩니다. 비대면의 시대라고는 하는데 지혜를 잘 발휘해서 정말 부처님의 가르침이 온 누리에 잘 퍼져 나갈 때 이 세상이 불국토가 될 것 같은데, 스님께서는 방송 하시면서 그 가능성을 좀 보고 계시지 않을까요.

 

광우스님 : 엄청나죠. 왜냐하면 예전에는 우리 노보살님이나 일반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잖아요.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지방에 살고 계시는 노보살님들이나 불자님들께서 큰스님들 법문 듣기가 그렇게 힘들었대요. 멀리 떨어져 있고 그리고 또 책이라든가 불교서적도 흔치가 않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야말로 과다 홍수의 시대입니다.

 

김봉래 : 아. 많습니다.

 

광우스님 : 인터넷에서 큰스님 법명만 딱 쳐도 모든 큰스님 법문이 죽 나오고. 서점에도 어마어마하게 좋은 책들도 많이 나와 있고, 바야흐로 미디어의 시대가 불법을 널리 전하는 데는 정말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겁니다. 예를 들어서 세계 영국이나 일본, 미국, 캐나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제 팬이라고 연락이 와요. 인터넷에서 보시고. 그런데 한 가지 느끼는 게 아무리 불법이 세상에 쉽게 전파가 된다 하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하는 사람은 하고 안하는 사람은 안 하더라. 이런 또 우리가 따끔한 시선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김봉래 : 그래도 스님께서 아주 쉬운 옛날에 재미있는 스토리들을 설명해주시니까 불자가 아닌 분들도 많이 이렇게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부처님께.

 

광우스님 : 제가 감사인사를 평소에 많이 받는데요. 그 중에 제가 원래 불교신자였는데 절에 안다니다가 스님 법문 듣고 다시 믿음을 되찾아서 절에 다니고 있습니다라는 인사도 많이 받았고요. 또 너무나 반가운 인사 중에 하나가, 스님 제가 불교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스님 법문 듣고 제가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엄청나게 큰 효과도 보았습니다라는 감사 인사 받을 때 제 자신이 너무나 고맙고 또 기쁜 생각이 들죠.

 

김봉래 : 그렇군요. 미디어.방송의 중요성 점점 커지는 상황입니다. 저희 BBS 불교방송도 올해 개국 30주년을 맞아서 새로운 또 발심을 더해가야 될 시간인데요. 불교방송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또 계실까요.

 

광우스님 :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의 공양 중에 가장 훌륭하고 뛰어난 공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법공양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법이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해질 수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지금 한국불교가 너무 쇠퇴하고 있다.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나 안타까웠는데, 불교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무엇을 보았냐 하면 과거 2,600년의 불교역사를 훑어보면 한결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크게 그리고 죽 흥하게 일어난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짓밟히기도 했고 때로는 정말 뿌리가 뽑히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고 실제로 인도에서는 불교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딱 하나, 법이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이 전하신 가르침 법이 있었기 때문에 26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들에게도 이 소중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지금 한국불교가 쇠퇴하고 있더라도 이 법이라는 게 있으면 미래 세상에 얼마든지 부처님의 가르침이 한국 땅에서 크게 꽃을 피울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 법을 전하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우리 불교방송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부처님의 법공양을 널리 잘 올리는 방송으로 거듭나시기를 바랍니다.

 

김봉래 : 네. 감사합니다. 시간이 되어서요. 그래도 마무리할 시간인데,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 비전 말씀을 주시면서 마무리 말씀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광우스님 : 제가 항상 부처님께 기도하면서 마음으로 항상 발원한 것이 있습니다. 살아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고, 죽으면 오직 아미타 극락세계 왕생하여지다라고 항상 발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언제 죽을지는 모르겠는데 그 날까지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 널리 널리 전하고 열심히 염불수행해서 다음 생에는 부처님 옆에 태어나는 게 제 소원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한결같이 수행하고 정진하고자 그렇게 마음먹고 있습니다.

 

김봉래 : 예.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봉래 : 네. 여러분 광우스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요, 불교가 융성하고 쇠퇴한 그런 부침이 있을 수는 있지만 부처님의 법이 살아 있어서 오늘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었다 하는 말씀에 주목을 해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자기만의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선지식으로부터 지혜를 구하는 일, 중요하다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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