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부산역사'S Talker) "피란수도 시절 우리의 소리, 세계문화유산 등재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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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연 :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
● 진 행 : 박찬민 BBS 기자

 

 

부산BBS가 진행하는 ‘부산역사'S Talker’ 시간입니다. 피란수도 시절 부산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이 시간은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님과 함께 합니다. 김한근 소장님 안녕하세요?

구덕망깨소리 정기공연 모습(제공:부경근대사료연구소)

피란수도 시절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에 대해 소개하면서 지난 2주 동안 아미동 피란민들 마을을 중심으로 전승되어온 부산의 무형문화재 네 가지를  소개하면서 이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아미동 대성사 창건주 효담스님의 특이한 생애를 들려주셨습니다. 스님에 대한 사회적 예우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이후 전수 과정은 어땠습니까?

-스님이 발굴하신 무형문화재 전수를 위해서 1991년에 서구 서대신동 대신공원 안에 구덕민속예술관을 건립하는데에도 많은 노력을 하셨어요. 이런 여러 공로들이 서구문화상 뿐 아니라 MBC문화상에 이어서 부산시문화상도 수상하시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그리고 인간문화재로 등록되었지요. 뿐만아니라 스님의 내자이신 김귀엽 보살님 역시 스님과 같이 세가지 문화상 수상과 더불어 스님의 뒤를 이어서 구덕망깨 쾌지나칭칭소리 보유자, 즉 인간문화재가 되셨고 현재 부산구덕민속예술보존협회 이사장과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연합회 이사장이라는 막중한 직책을 맡고 계십니다. 

게다가 스님의 둘째 따님은 운문사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신 뒤 현재 대성사를 이어받고 있으며, 네째 따님은 구덕망깨소리 전수교육 조교이며, 아드님은 부산농악 상쇠 전수교육 조교로 스님의 뒤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대한불교조계종을 제외한 다른 종단에서는 비록 출가자이지만 가족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님의 가족들이 그 뒤를 뒤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매우 고무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젊어서부터 곁에서 뒤바라지를 하시면서 배우신 보살님이나 어려서부터 소리와 연희를 보고 자란 자제분들이 뒤를 이어왔다는 것은 참 바람직한 상황인거지요. 어찌보면 비록 가족이지만 다들 나름의 다른 삶을 꿈꾸었을 수도 있을텐데 같은 길을 걸으면서 전통을 이어오신 점에서는 크게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개발자의 입장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지내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관심적 입장에서 배우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법이지요. 

구덕망깨소리 정기공연 모습(제공:부경근대사료연구소)

유네스코 피란수도 부산 유산에 아미동 일원이 생활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노력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피란시기 아미동 피란민 부락에서 일군 우리 소리, 우리 연희들도 함께 등록되었으면 좋을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14년에 농악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습니다. 특정지역이 아닌 우리나라 농악 전체를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에 포함됨으로써 부산농악을 보존하고 있는 부산도 함께 자랑스런 유산을 지닌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효담스님께서 평생 일구신 노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 피란수도 부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팀에서는 2017년에 잠정목록 8곳을 선정하여 신청했습니다. 당시 잠정목록이 피란수도 당시 경무대로 사용되었던 임시수도기념관, 임시중앙청이었던 현 동아대박물관 건물, 국립중앙관상대였던 대청동 관측소, 미국대사관 겸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던 부산근대역사관, 피란민과 유엔군 기착지였던 부산항 제1부두, 유엔군 기지로 사용되었던 하얄리아부대, 현 부산시민공원, 유엔기념공원, 부경대 안에 있는 워커하우스 등 8곳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워커하우스의 경우 전투지휘 장소라는 전쟁의 직접적 이미지가 너무 강한 측면이 있어서 이를 빼고 대신 피란시기 생활상 유산으로 아미동비석문화마을과 우암동 소막 피란민주거지가 추가 되면서 9곳이 잠정 등재 대상이 되었습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기준이 10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금번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경우 이 10가지 가운데 3번과 5번에 해당됩니다. 즉, 3번은‘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유일한 또는 독보적인 증거’에 해당하는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5번은‘탁월한 보편적 중요성이 있는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앙, 예술, 그리고 문학 작품과 직접 또는 유형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쉽게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만 우리 고유의 전승 연희가 피란시절 피란민 부락을 중심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면서 마침내 무형문화재로 등록이 되었다는 점이 어찌보면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던가요?

-지난 2001년 10월에 부산시 무형문화재 11호로 등록된 구덕망깨소리가 있습니다. 망깨질이라는 것이 집을 짓기 전에 터를 다지는 일인데 이 과정에서 노동의 피로감을 덜어주는 연희 동작과 소리로 구성하여 전승되어 온 노동요인 구덕망깨소리가 1942년에 건립된 토성동 경남중학교 옛 건물을 지을 때와 1956년 건립된 경남고등학교 건물을 지을 때 망깨로 터를 다지면서 망깨소리를 불렀다 합니다. 특히 2011년 12월 문현금융단지 내 부산은행 본점 신사옥 기공식에서 구덕망깨 터 다지기 공연을 했다는 것입니다. 전승놀이를 현재에 재현한 실제 사례가 된 것인데 공공의 건축 뿐 아니라 대형 건축공사 현장에서 구덕망깨소리를 재연하는 것을 부산의 전통으로 삼았으면 하면 생각이 듭니다.

망깨는 나무망깨, 돌망깨, 쇠망깨가 있는데 구덕망깨는 돌망깨를 쓰는데 집터를 다지는 작은 망깨와 기둥 주춧돌을 놓는 자리에 큰망깨가 등장합니다. 이 망깨질을 다른 지방에서는 달구질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이 망깨터다지기는 이미 선사시대 움집 유거에서도 발견되고 특히 통일신라 때 경주 황룡사 건축 당시 기중 주추 아래에 기와장이나 잡석 등을 넣어 다진 흔적들이 고고학적 발굴조사를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망깨소리 공연에는 큰 망깨 하나와 오방을 의미하는 작은 망깨가 다섯개에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40명, 가래질에 12명 여기에 악사와 소리꾼, 기수, 잡색을 포함하면 70명 조금 넘는 인원이 동원되는데 현재 이 연희 동참하는 아미동 주민이 약 30퍼센트 정도인데 초기에는 50퍼센트가 아미동 사람들이었다 합니다. 

우선 구덕망깨소리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 구덕망깨소리, ‘쾌지나칭칭소리’~

집터를 다질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단어들을 사용하시네요?

-구덕망깨소리 가운데 마지막 ‘쾌지나칭칭소리’를 이 소리의 보유자이신 인간문화재 김귀엽 보살님의 소리를 자진모리 가락으로 들으셨습니다.

이 소리는 2019년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기록화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1호 구덕망깨소리’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부산시에서 제공해 주신 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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