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상고심이 있었다. 앞선 항소심에서 벌금 3백만 원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이 지사에게 이번 재판은 정치 생명이 걸려있는 중요한 재판이었다. 최근 대선 지지율 2위까지 오른 '잠룡'이기에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 지 법조계뿐 아니라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재명 지사 사건은 당초 대법원 소부에 배당됐지만 대법관들의 의견이 갈려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건이다.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유·무죄 판결이 달라질 수 있어 대법원 소부에서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여한 대법관 12명의 의견은 파기환송 7명 대 유죄 5명으로 나뉘었고, 다수의 의견에 따라 무죄 취지 파기환송 결론이 내려졌다. 결론적으로 이 지사는 도지사직을 유지하게 됐다.

이 지사가 받는 혐의는 직권남용 혐의 1개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 3개이다. 나머지 혐의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다. 남은 핵심쟁점은 이 지사가 친형의 정신병원 강제입원과 관련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토론회에서 해당 내용을 부인하고 일부 사실을 숨긴 행위를 허위사실공표로 볼 수 있는 지 여부였다. 2심에서는 이 지사의 말을 '허위사실공표'로 보고 벌금 3백만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 지사의 발언이 상대의 의혹 제기에 대한 답변·해명이라는 결론을 내놨다. 허위의 사실을 일방적으로 널리 드러내 알리려는 의도에서 한 적극 '공표' 행위로 볼 수 없다는 논리였다. 단지 반론 과정에서 부정확하게 답변한 것으로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고의로 허위 사실을 퍼트리려는 범죄 의도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이다.

특히 대법원은 이번 판단에서 TV토론회의 특성과 표현의 자유에 주목했다. TV 토론회는 즉흥적·계속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표현의 명확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토론에서 나오는 정치적 표현에 대해 엄격한 법적 책임을 전가한다면, 오히려 활발한 토론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게 요지였다. 다수의 대법관들이 토론회 발언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판결이 토론회 발언 가운데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해 구체적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자칫 후보자의 무책임한 발언을 규제할 수 있는 기준을 없앴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토론회를 통해 정보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선거를 해야 하는 국민의 정치적 판단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불교에서는 말로 짓는 죄를 구업(口業)이라고 한다. 살면서 지을 수 있는 죄 중에 가장 쉽게 저지를 수 있으면서도 그에 따른 책임은 무겁다. 법원의 해석이 그렇다 한들 불교적 관점으로 봤을 땐 이 지사가 정치인으로서 구업을 지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말하지 않고서는 정치를 할 수 없다. 말빚을 진 죄인의 심정으로 자신이 내뱉은 말의 무게를 느끼며 세상을 이롭게하고 오롯이 자신을 돌아보고 경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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