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그제, 9시간의 마라톤 논의 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 권고를 결정했습니다. 온전히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팽팽할 것이란 전망도 우세했는데, 결과는 13명 위원 가운데 10명이라는 압도적 찬성이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봐주자는 것이냐”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비판 여론을 예상해서 일까요. 심의를 마치고 청사를 나오는 일부 위원들의 입에서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했다”는 말이 새어 나왔습니다. 위원들의 언급을 전해 들으며 문득 ‘인지부조화 이론’이 떠올랐습니다.

인지 부조화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리언 페스팅어’가 만든 개념입니다. 사람은 인식과 현실 사이에서 부조화가 생기면 스트레스나 불편한 경험을 갖게 되는 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을 바꿔 그 불편함을 해소해버린다는 이론입니다. 담배가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긴장을 풀어준다는 둥, 담배를 피워도 장수한 사람이 있다는 둥, 자기 변명을 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이런 이론으로 설명 가능합니다.

수사심의위원들이 털어놓았다는 언급을 들으면서 페스팅어의 인지부조화 이론처럼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개념이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검찰 수사심의위는 재작년 문무일 검찰총장 시절, 검찰 수사 착수 단계에서부터 정치적 영향력을 없애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입니다. 2년여 동안 8차례 수사심의위가 열렸지만, 검찰이 이를 모두 수용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래저래 검찰의 고민은 깊어질 것만 같습니다. 수사심의위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재용 부회장을 불기소 처분하면 그간의 부실 수사를 인정하는 셈이 되고, 심의위 결과를 핑계로 ‘삼성 봐주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피할 수 없습니다.

반면 수사심의위 결과를 무시하고 기소하면 검찰 스스로 도입한 제도를 어겼다는 지적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아울러 앞으로 대규모 경제 범죄나 기업 비리 범죄를 피할 수 있는 일종의 지침(?)을 제공했다는 손가락질도 받게 됩니다.

검찰 수사심의위의 결정을 수용할 것인지를 두고, 인지 부조화를 겪고 있을 검찰 수뇌부가 어떤 합리화된 답을 내놓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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