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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소식]제주 약천사 창건주 혜인 대종사 추모 4주기 법회
안지예 기자 | 승인 2020.06.23 10:36

●출연 : 안지예 기자

●진행 : 이병철 기자

●2020년 6월 15일 제주BBS ‘아침저널 제주’

(제주FM 94.9MHz 서귀포FM 100.5MHz)

●장소 : BBS제주불교방송 / 제주시 임항로 14(덕산빌딩 4층)

●코너명 : 교계뉴스

[앵커멘트]

매주 월요일 한 주간 불교계 소식을 전하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안지예 기자가 어떤 불교계 소식을 갖고 왔을지, 스튜디오에 안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지예]안녕하세요.

[이병철]첫 소식은 어떤 내용인가요?

[안지예]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제주 관음사가 윤달에 올리는 대표적 불교의례인 생전예수재 회향법회를 지난주 토요일 대웅전 앞에서 봉행했습니다. 회향법회는 불교 전통 재의식으로 봉행됐고, 제주불자들은 49일 동안 기도정진하며 살아 있을 때 자신이 지은 업장을 소멸하고 남은 생애 동안 선업을 짓겠다는 서원을 세웠습니다.이날 관음사 회주 우경 스님이 법문을 하셨는데요. 스님은 “살아 생전에 미리 다 씻어내고 미리 다 내려놓고 미리 다 고하는 것이 바로 생전예수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이날 불자들에게 지전춤을 선보였는데요. 흰 창호지로 만든 수십장의 지전을 80㎝ 가량 내려뜨린 것을 양손에 쥐고 사방으로 휘저으며 추는 춤을 지전춤이라고 하는데요. 흔히 굿에서 많이 보여 온 춤인데 망자가 이승에서 풀지 못한 원한을 춤으로 풀어내는 감동을 전했습니다.

[이병철] 올해 윤달에는 성대하게 봉행이 된 것 같네요. 그리고 이번주 관음사는 방생법회를 봉행한다면서요?

[안지예] 관음사는 오는 25일 그러니까. 이번주 목요일이죠. 방생법회 및 삼사순례를 떠납니다.관음사 불자들은 이날 오전 8시30분 쯤 제주종합경기장 시계탑 앞에서 집결해서 대정읍 모슬포에 자리한 서산사로 향합니다. 그 앞 바다에서 방생법회를 봉행하고 삼사순례를 떠나는데요.관음사의 말사 사찰이죠. 서귀포시 하논 봉림사와 관음사 회주 우경 스님이 주석하고 계시는 구좌읍 김녕리 백련사를 차례로 순례할 예정입니다. 방생법회에 동참하실 분들은 동참비는 3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참가 문의는 755-6830 관음사 종무소로 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달(7월) 5일에는 대웅전에서 불자들의 수행을 점검하고 보살행의 실천을 다짐하는 경자년 보살계 수계법회를 봉행합니다.

[이병철] 이번주 토요일 그러니까, 27일 태고종 제주교구 종무원장 취임식이 있잖아요?

[안지예] 네 맞습니다. 옥불사에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무기한 연기될 전망입니다.

[이병철] 무기한 연기라...그 이유가 궁금한데요.

[안지예] 태고종 제주교구 종무원장 구암 스님의 피치 못 할 개인사로 인해 무기한 연기 됐음을 알려드립니다. 올해 3월 3일 태고종 제주교구가 신인 구암 스님을 종무원장으로 선출하고 행정업무의 정상화에 돌입했는데요. 당시 제주교구는 주지대회에서 종무원장에 단독 입후보한 구암스님을 투표 없이 당선증을 교부했고, 종단 현안 문제 때문에 취임식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번 취임식을 3개월 동안 준비해 왔는데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해서 취임식은 당분 간 하지는 못할 듯 싶습니다.

[이병철] 네 안타까운 사연이라고 그러니...아무튼 구암 스님이 아픈 마음을 하루빨리 털어내고 다시금 힘찬 출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도 소개는 했지만 붇다클럽 행사도 다시한번 소개해 주시죠.

[안지예] 네, 오는 25일 붇다클럽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매년 개최하는 행사입니다. 제3회 세계평화의 섬 발전기원법회와 제28회 붇다대상 시상식이 오는 25일 목요일 오후7시 제주칼호텔 대연회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붇다클럽은 어린 새싹들에게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 세계평화의 포스터 공모를 시작해 이날 수상자 시상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붇다클럽의 역사와 함께해온 붇다대상은 전통문화예술부문과 사회봉사부문, 효행부문으로 시상이 되는데요. 제주사회의 밝은 사회 조성에 앞장서 온 분들에게 상금과 상패가 주어집니다.

[이병철] 약천사의 창건주이죠. 혜인 대종사 추모 4주기 법회가 열린다면서요?

[안지예] 네 맞습니다. 스님은 지난 2016년 양력 6월 23일, 음역으로 5월 19일 입적하셨습니다. 그 추모의 뜻을 함께 하고자 약천사가 23일 오전 10시 약천사 대적광전에서 봉행됩니다. 주관은 약천사 포산문도회가 합니다. 또 추모다례재는 오는 7월 9일 목요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팔공산 영천 은해사에서 봉행됩니다.

[이병철] 사실, 혜인 스님은 제주불교계가 낳은 고승이신데...벌써 입적하신지가 4년이 되셨네요. 제주불자들은 대부분 혜인 스님에 대해 아시겠지만 제주도민들을 위해 혜인 스님에 대해 설명을 좀 해 드려야 될 것 같은데요.?

[안지예] 혜인 스님은 지난 2016년 세수 75세 법랍, 62세로 원적에 드셨는데요. 혜인 스님은 1943년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화순리에서 출생했습니다. 1956년 열세 살의 어린 나이로 출가한 스님은 경상북도 팔공산 동화사에서 일타 대화상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1962년 10월에 가야산 해인사에서 자운 대율사를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셨습니다.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제방선원에서 안거 수선하면서 선교를 겸수하셨습니다. 1971년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팔만대장경각에서 대신심으로 108만배 기도를 성취했습니다. 지난 1981년 고향인 제주에서 약천사 대작불사의 원력을 세웠고, 1988년 큰법당 불사를 착공해,1996년 9월 약천사 대가람의 낙성식을 가졌습니다.

약천사 불사는 제주불교계에 한 획을 긋는 대단위 사건이었습니다. 스님은 열세 살에 불문에 들어간 후 일타대종사를 스승으로 모시며 항상 스승의 삶을 좇고 스승처럼 살고자 발원했습니다. 평생을 자비보살로서 한 중생의 마음도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심을 베풀면서 보살행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전국방방곡곡 스님의 법문을 듣고자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부처님법의 수승함을 전했습니다. 불자들에겐 늘 착한 마음으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정이 화목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당부하시며 부처님의 자비심을 배우면서 항상 기도할 것을 일깨우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모습으로 남고자 원을 세우신 스님은 모든 것을 상좌들에게 물려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영천 은해사 기기암선원에서 수선안거에 드셨다가 더 이상의 사바세계의 고통 없는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세계로 떠나셨습니다. 평생을 올곧게 수행에 몸담고 부처님의 제자로서 살아간 혜인 스님의 영결식에는 스님과의 인연에 감사하고 스님의 극락왕생을 비는 수많은 사부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안타깝게 지켜보면서 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했습니다.

[이병철] 스님의 일화 가운데 100만백는 지금도 한국불교계에 회자가 되고 그러는데요. 그 얘기도 해 주면 좋을 것 같네요?

[안지예] 맞습니다. 혜인 스님하면 백만배 원력이죠. 이는 스님을 수행자로 거듭나게 했던 원력이었습니다. 스님은 나이 서른이 되자, 백련암의 성철 스님을 찾아뵙고 “백만 배 기도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했더니, 성철 스님이 “절? 좋지. 그런데 하다가 중간에 그만둘 바에는 시작하지 말고 끝장 낼 작정이라면 한번 해봐라.”라고 하셨고, 혜인 스님도 선뜻 “하겠습니다.”고 나섰습니다. 그 결심을 듣고 성철 스님은 “명심해라. 지금까지 절하다 죽은 놈 없고 절하다 죽더라도 지옥은 안 간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번 시작했으면 멋지게 회향해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해인사 장경각에서 시작한 죄업 청산의 길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중간 중간 코피를 엄청나게 많이 쏟았고, 그럴 때면 장경각에 들어가 하늘로 고개를 쳐들어 코피를 삼키고 말리고 나서 다시 절을 했습니다. 무릎에는 고름이 들었으나 무시하고 절을 하다 보니 나중에 저절로 없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이병철] 그야말로 스님은 철저하게 자기와의 싸움하셨네요. 스님도 100만배를 하시면서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절을 하면서 한두번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안지예] 네 맞습니다. 스님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절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였다고 합니다. 방석 밑에 송곳이나 못이 들어 있어 찌르는 것처럼 무릎이 아픈 것이었습니다. 매 시간 매 분 너무 괴로웠는데 어느 순간, 아픈 것이 더는 올라갈 곳이 없을 만큼 고통의 절정을 느낀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고통이 두 손을 들고 항복하는 걸 보고, 확실히 고통의 절정을 느낀 후부터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고 합니다. 절을 하는 거나 안하는 거나 똑같았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중간에 물론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절하다 죽은 놈 없고 절하다 죽어도 지옥은 안 간다.”는 성철 스님의 한 말씀 때문에 스님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병철] 스님은 2백일 만에 100만 배를 무사히 마치고 수행자로서 거듭나게 하는 힘이 되었던 거네요.

[안지예] 네 맞습니다. 스님은 기도로써 세세생생에 탐‧진‧치 삼업으로 말미암아 억겁 천생에 윤회해 온 이 모든 악업을 금생에 청산하고 참회하려 하셨답니다. 지금까지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참회했고, 그동안 불보살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올린 것이죠.

스님은 백만 배를 다 마치고 난 뒤부터 법상에 앉게 되면 법문이 끝없이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즉, 모든 것은 원력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없게 된 것을 몸소 보이신 겁니다. 스님은 제주도 중문에 3만5천평의 약천사 부지를 확보하고 대웅전과 요사채를 지어 약천사를 완공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신심으로 염불하고 절을 한 덕분이라고 생각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스님은 세월이 흘러 그 당시 백만 번 이라는 숫자에 걸려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셨다고 합니다.

절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살아 계신 부처님 대하듯 정중하게 또 한 번 정중하게 또 한 번 정중하게 그렇게 해야 하는데 하루 오천 배를 해야 하니까 팔랑개비처럼 절을 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스님은 기도를 마칠 때 ‘숫자에 집착하는 절은 그만하고 무게가 실리고 정성이 실린 그런 절을 정말 해야겠구나.’ 생각하셨습니다. 스님은 출가 시절 돌아보면 순수하기만 했던 초발심 시절은 떳떳하고 당당한 출가수행자의 길을 훤히 열어준 고마운 시절이었다고 회상하셨습니다.

[이병철] 네 정말 다시금 우리가 잊고 지내지는 않았는지 혜인 스님의 100만원력을 다시금 느껴본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수고 많이 했어요. 안기자.

[안지예] 다음 시간에는 더 알찬 교계뉴스를 갖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안지예 기자  ahnjiye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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