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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5일은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되는 날인데요.

전쟁 당시 많은 사찰과 문화재들이 큰 피해를 입었고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진 스님들의 희생도 적지 않았습니다.

BBS뉴스 기획 5부작 ‘한국전쟁 70년 분단을 넘어 평화로’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해인사 폭격명령을 어기고,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故 김영환 장군과 해인사 스님들의 숨겨진 공헌에 대해 대구비비에스 정한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낮에는 인민군, 밤에는 국군이 가야산 일대를 번갈아 점령하던1951년의 8월.

故 김영환 장군의 제 1전투비행단에 출격 명령이 내려집니다.

법보종찰 해인사는 매년 故 김영환 장군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추모법회를 열고 있다.

작전 목표는 ‘공비 소탕을 위한 해인사 폭격’

강호륜, 박희동, 서상순 소령이 뒤를 잇고, 김영환 장군이 선두에 서는 무스탕 편대가 해인사 상공에 다다르자 김영환 장군은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상부의 명령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컬 것인가..”

김영환 장군은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해인사를 차마 폭격하지 못하고, 서너차례 해인사 상공을 선회하다 결국 되돌아가는 선택을 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린 이 용단으로 그는 이등병으로 강등되지만 잿더미로 화할뻔한 팔만대장경이 지켜졌습니다.

<인서트>김정기/ 故 김영환 장군 유족/ 비록 35살의 짧은 삶을 사셨지만 지난 세월 돌이켜보면 정말 저희 아버님께서는 승리의 삶을 사셨다고 생각이됩니다. 그래서 존경하고, 또 존경합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불심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고 자란 김영환 장군은 일찍이 팔만대장경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팔만대장경을 지키기 위한 해인사 스님들의 헌신도 컸습니다.

전란이 지속되는 내내 해인사 스님들은 경전이 모셔진 장경각 지붕을 태극기로 덮고, 내리기를 반복했습니다.

공습에 나선 조종사들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인서트> 해인사 홍제암 종성스님/ 오래가니 사그라지고 바래지고, 광목도 없잖아. 천을 기워...그때는 물감도 없고 하니까. 나무풀 뜯어 칠하고 검은색은 숯검정 칠해 태극기 만들어 매일 지붕을 덮었다고 합니다.

아픈 시대의 증인이 된 경성스님과 혼외스님, 그리고 이름모를 많은 대중스님들 모두가 팔만대장경 수호의 호법성신(護法聖神)이었습니다.

<인서트> 진각스님/해인사 총무국장/ 이런 문화유산이 이렇게 보존하게 된데 대해 후손들이 스님들의 노력을 전혀 알고 있지 못하고, 또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래서 안타까운점이 많습니다.

오늘날 전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 팔만대장경은 전쟁 포화에 굴하지 않은 수많은 불보살들의 염원으로 지켜졌습니다.

비비에스 뉴스 정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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