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에서 반세기를 넘긴 내게 출근길은 단순하다. 3km 남짓의 거리를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루트가 달라질 뿐이다. 걸을 때나 자전거를 탈 때나 마을버스 혹은 승용차를 활용할 때 달라지지만 그것도 큰 차이는 없다. 목적지가 같기 때문이다. 데스크가 되면서 취재현장이 아닌 회사로 출근하다보니 일상화된 일이다. 하지만 도시에는 늘 새로운 도로가 생기게 마련이고 그러다보니 언젠가부터 내 주된 승용차 출근길도 바뀌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마주하는 오랜 건물 표지석의 시(詩)가 나의 아침이 돼버렸다.

윤동주의 '새로운 길'

  시인 윤동주는 1938년 이맘때 이 시를 썼다.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첫 해에 쓴 시다. 일제 강점기 암울한 현실에 대한 고민과 각오가 담겨있다. 힘든 시절을 겪었던 탓인지 이듬해에는 거의 시를 쓰지않았다고 한다. 지난 2016년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의 포스터에도 이 시는 등장한다. 윤동주와 사촌 송몽규가 교복에 큰 가방을 둘러메고 만주를 떠나 서울로 향하는 장면과 함께 말이다. 잔잔한 흑백영화속 배우 강하늘의 여린 음성이 귓전을 울리는 듯 하다. 스물아홉,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민족지성의 이 시는 이제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려있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난주부터는 출근길이 조금 달라졌다. 6년만에 라디오 아침 생방송을 다시 진행하게되면서 좀 더 빠른 루트를 택하게된 것이다. 서둘러 출근해 조간신문들을 읽고 질문 원고도 훑어봐야하기에 1분, 1초, 마음이 급하다. 윤동주 시인의 시(詩)를 감상하지못하는 아쉬움은 크지만, 앵커의 숙명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하루 하루 마음을 다지고 가야하는 ‘새로운 길’이 오늘도 펼쳐질 것이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20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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