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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시사 정통 프로그램 '뉴스와사람들' 

진행: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엄상호 불교인재원 이사장

방송: 2020년 5월 3일(일요일) 오후6시 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 진행을 맡은 김봉래입니다. 한 나라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교육, 인재양성 분야도 한 가지가 될 것입니다. 우리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해서도 인재양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종립대학에서 불교학과가 개설되어서 인재양성에 나서고 있고, 종단이나 단위사찰 차원에서 불교대학이나 각종 불교 교양 과정들이 개설되어 있죠. 또 포교사들도 대거 양성되어서 사회 속에서 불교인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특히 불교방송이 1990년 5월 1일 1600년 한국불교사에 첫 공익 방송으로 개국함으로써 미디어를 통한 불교 교양 교육에 신기원을 이룩한 것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 이 시간에는요 불교방송 출범 때부터 재단 이사회 이사로 활동하시면서 불교 인재 양성에 매진하고 있는 분이시죠. 엄상호 불교인재원 이사장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김봉래 : 네. 앞서 소개해드린 대로 불교인재원 엄상호 이사장님 불교방송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이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엄상호 :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김봉래 : 이사장님은 불교인재원 이사장이시면서 또 저희 BBS 불교방송 이사로 활약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엄상호 : 우선 뭐 이렇게 이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뭐 요즘 기업에도 관여하고 있고, 또 불교인재원에도 봉사 활동으로서 최근에 몇 년 되었습니다만 한반도 한반도발전전략연구원 명예이사장으로도 있으며 우리 엄문회, 영월 엄씨 대종회 회장으로서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한반도발전전략연구원 명예이사장이어서 통일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그런 말씀이신데요. 오늘은 특히 불교방송 개국 30주년을 기념하면서 이사장님 모셨기 때문에 불교방송 관련 이야기도 저희가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불교방송이 만 30년 되기까지 돌아보면 참 영광과 고난이 함께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불교방송 30년을 지켜보시면서 때로는 아쉬움도 느끼시고 때로는 보람도 느끼셨을 텐데요, 어떠신지요.

 

엄상호 : 뭐 30년이라고 하니까 오래되었다고 하면 오래되었고 참 엊그제 같은 세월입니다. 저는 그 당시에 불교방송 설립할 때 운이 좋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민영방송에도 참가하게 되었고, SBS 서울방송. 그리고 여기 이제 불교방송 개국에도 창설 이사로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사부대중과 불보살님들의 가피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을 해봅니다. 서울방송에 참가하게 된 것은 어떤 경제적 이익을 바라고 했던 거라고 보면 되고, 불교방송 참여는 우리 선친부터 불교를 신봉해왔고 저도 불교활동을 하면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해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김봉래 : 네. 불교발전을 위해서,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홍포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엄상호 : 홍포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서울방송하고 이렇게 비교를 늘 하면서 지켜봤는데, 서울방송은 경제적 이익이 목적이었으니 주식이 최고조로 픽업으로 올라갔을 때 처분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사실 출자금의 한 20배 정도일 때 정리를 했습니다.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지. 그러나 불교방송은 그런 경제적 이익은 없었지만서도 오랫동안 이렇게 진행하는 과정에서 보람은 더 느끼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가 이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저희 BBS 불교방송이 설립되게 된 데는 사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공약이 큰 역할을 했고요. 불교계로서는 정말 1600년 만에 큰 경사였습니다. 그래서 종단 차원에서도 적극 참여를 했고요. 당시 총무원장 의현스님께서 재단법인 BBS 불교방송의 초대 이사장을 맡으셔서 개국하고 또 초기 운영을 지도를 했었는데요. 개국 당시, 개국을 전후한 그 당시 상황이 좀 궁금합니다.

 

엄상호 : 네. 개국 당시에 보면 기독교는 이미 방송이 있어서 잘 운영이 되고 있었던 상태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허가를 받지 못해서 방송국이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마침 87년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대통령께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를 해서 그렇게 시작되었는데, 노대통령께서는 불교 신도이지만서도 법사들, 군법사들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불교 공부를 어느 정도 하신 분입니다, 내가 알기로는. 그래서 불교공부를 가르친 군법사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우리 어머니도 이런 불교의 진리를 알고 믿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렇게까지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분입니다. 그러니까 불교를 제대로 아시는 분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어머님이 또 대구 팔공산 파계사, 동화사 신도잖아요. 신도시고. 또 홍 여사님께서는 상당한 불심이 있는 것으로 지역에는 널리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분인데. 마침 또 동화사 주지스님으로 계시다가 총무원장으로 올라오신 의현 총무원장님과의 관계가 인연이 아주 깊게 연결된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마침 대통령 후보로 출마를 했으니까 불교계가 대통령 후보를 밀어드리는 것도 좋지만 동시에 불교계 현안 문제들이 많으니까 선거 공약으로 걸었던 것이 아닌가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때 당시의 선거 공약 중의 하나가 대구 동화사의 약사여래통일대불, 우리 민족은 8천만 남북 합쳐서 해외 동포까지 한 8천만 명이 되는데 이 분들의 전부 다 가장 큰 고통이 뭐냐 하면 통일이 안되고 있는 것이 우리 민족의 가장 큰 고통이 아닌가.

 

김봉래 : 예. 이산의 고통.

 

엄상호 : 그렇게 본 거죠. 모든 부분에서 경제적 문제나 뭐 이산 문제나 여러 가지. 그래서 약사여래통일대불을 건립도 하게 되었고 불교방송이 동시에 개국하게도 되고 이렇게 해서 시작이 된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불교방송 개국 이후에 약사여래대불이 잘 진행이 되어서 하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에게 가장 존경하는 북방외교, 중국이나 소련 동구권 공산권과의 그 수교가 이루어집니다. 노태우 대통령 그 당시에. 그리고 그것을 보면 부처님의 큰 가피가 우리 불교계에 또 우리나라에 있었던 게 아닌가 이렇게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불교방송의 개국 허가라든지 또 그런 큰 불사들은 우리 불교로서는 큰 계기가 되었고, 먼 장래에는 통일에 대한 어떤 큰 지름길을 마련한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절에 가면 늘 스님들이 국태민안을 발원하시고 또 남북 평화통일을 발원하시는데 불교방송도 그런 큰 흐름 속에서 출현했다 이렇게 말씀을 해주시는데, 그 때 개국관련해서 뭐 에피소드 같은 것이 좀 있을까요.

 

엄상호 : 에피소드라기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대통령이라는 분이 불교이고, 제대로 불교를 아시는 분이고, 또 자친 어머니께서 아주 신실한 불교신자이고 이러하니까 이것을 다 주변에서 아니까 우리 각 종단, 우리 조계종뿐 아니라 각 종단에서도 아주 참여하게 되고 또 우리 불교신도회에서도 주변에 재력 있는 분들에게 연락해서 또 그렇게 협력을 끌어들이고 그런 과정에서 저 개인이 또 총무원장님 말씀도 있고 그 당시에 장 회장님(장상문 동국제강 회장) 말씀도 있어서 모 그룹에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결심을 받고 개국 모임이 하나 크게 있었는데, 그 모임에 갈 때 전부 다 준비해가지고 나오겠다고, 준비를 해서 나오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시간이 되었는데도 안 나와. 그래서 시간을 좀 넘겨가면서 원장님하고 장 회장님하고 시간을 넘겨가면서 기다리다가 끝내 안나타나가지고 내가 실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김봉래 : 그 분이 개국 관련해서 불교방송에 큰 후원을 하도록...

 

엄상호 : 후원 약속이죠. 그 때 1구좌라는게 있었는데 1구좌 정도는 후원하겠다고 그랬는데 16구좌의 총금액에서 1구좌 정도 후원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또 좀 신망 있는 분이니까 저도 확실하게 약속을 듣고 약속을 원장님한테도 하고 장 회장님께도 말씀드리고 이렇게 해서 큰 모임에 참여하고, 그 때 모두 준비해서 나오기로 했는데 안 나와서 몇 십 분 기다리다가 끝내 해결이 안됐습니다. 그런데 그게 보니까 그 분이 자금 사정이 어려워서 그 그룹이 부도가 나더라고요.

 

김봉래 : 아. 나중에요...

 

엄상호 : 나중에 얼마 안 되가지고. 그래서 내가 오해가 풀린 적도 있습니다. 원장님한테도 체면이 안서고 장 회장한테도 체면이 안서고, 뭐 에피소드지만서도 잠시나마 그런 홍역을 치렀던 적이 있습니다.

 

김봉래 : 당시에는 뭐 많은 종단들이 동참을 했을 뿐 아니라 재가단체에서도 많이 동참을 했는데 이사장님 역시 당시 조계종 전국신도회 수석부회장으로서 활동하시면서 자연히 불교방송 개국 불사에 동참하셨다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엄상호 : 네. 당시에 박완일 회장이라고 전국신도회 회장님이 계셨고.

 

김봉래 : 네. 유명하시죠. 법사로서도.

 

엄상호 : 네. 유명합니다. 제가 또 경제계로 해서 참여하게 되어서 수석부회장까지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참가했고, 그 이외에 여러분, 우리 정동호 장군님이나 여러 분들의 협력이 되어가지고 민간인도 참여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김봉래 :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불교방송은 부처님 뜻을 널리 펴는 일인데요, 거기에는 재정의 기초가 든든하지 않으면 사실 어렵거든요. 그래서 저희도 뭐 IMF 사태를 겪고 중간에 힘든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10만 공덕주의 모임이죠, 만공회가 크게 성공하면서 발전의 기초를 쌓게 되었는데, 그런 거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지난 30년 간 불교방송을 가까이 보시면서 갖가지 영광과 고난을 보셨는데요.

 

엄상호 : 불교방송 개국 이후에 자체 불사로서는 많은 불사를 이룩했지만서도 만공회 결성은 대단한 의미가 있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의 원력보다는 많은 사람의 원력으로 불사하는 경우는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 있다는 것. 저도 그 당시에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사업이 좀 잘 되고 하니까 강남에 포교당을 하나 건설해야겠다는 입장에서 인연이 되어서 시작을 했는데, 시작을 해놓고 몇 달 후에 어떤 큰 사업가, 큰 재벌이라고 해도 관계 없지. 그런 분이 단독으로 큰 사찰을 지어가지고 운영하는 것을 봤습니다. 운영하는 상황을 볼 때는 그 분은 돌아가시고 운영이 됐는데, 어느 날 가서 보니까 사찰이 아니고 그 분의 개인 사당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신도는 없고 스님은 계시는데 공덕주 불공이나 드리는 것 같고, 신도가 없더라고요. 그 큰 사찰에. 그래서 저도 깜짝 놀랐지. 이게 뭔가 불사는 혼자 돈 있다고 하는 게 아니구나. 그래서 제가 하던 포교당 건립을 중단하고 한 6개월 간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공사하던 것을 중단하고 6개월 간 중단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 상당히 말이 많았죠. 그런 과정에서 또 큰 선지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큰스님을 뵙고 하는 과정에서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많은 불자를 참여시키는, 그래야 이게 성공한다 이런 생각을 해서. 사실 우리 아파트 건설해서 분양할 때 보면 땅만 사놓고 입주자는 분양하면 집도 안 짓고 돈을 먼저 받고 하는 그런 아이디어하고 연관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방법을 연구를 해가지고 불자를 많이 모아서 그렇게 연구하니까 생각대로 엄청난 소액기부 하는 분들이 참여하더라 이겁니다. 그러다보니 한 군데 하기로 했던 것이 많은 분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아파트 짓는 곳마다 5백 세대 이상, 천 세대, 2천 세대 단지마다 포교당을 해나갔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엄상호 : 나가다보니까 내가 기초만 깔아주면 되는 것이고 그 이후 문제는 다 불자들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해서 성공을 했고, 그 성공은 결국 그 운영도 많은 분이 참여해서 하니까 운영이 잘 되더라. 운영이 안 되면 문제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만공회도 그런 측면에서 7만 명, 8만 명, 10만 명까지 앞으로 생각을 하시는 모양인데 이것은 참 잘 기획하고 좋은 방안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김봉래 : 말씀대로 저희가 힘을 모아서 만공회가 더욱 더 성공할 수 있도록 정진을 하겠습니다.

 

엄상호 : 한 마디 첨언하면 재정 관리도 철저히 해주셔야 될 것 같고 조직관리가 잘 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조직관리가. 이러면 반드시 성공하지 않겠는가...

 

김봉래 : 그렇죠. 지금 7만 명이 넘기 때문에 한 분 한 분 저희가 잘 응대하고 또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죠.

 

엄상호 : 그것을 전산화해서 철저히 하면 그것이 될 것 같습니다.

 

김봉래 : 혹시 저희 불교방송 라디오나 TV 많이 듣거나 보시는지요.

 

엄상호 : 네. 라디오는 오래부터 많은 발전을, 불교발전에 역할을 했지 않습니까. TV도 그 이후에 하기는 하고 있습니다만.

 

김봉래 : 저희가 뭐 좀 개선해야 될 부분이 있을까요.

 

엄상호 : 라디오는 그런대로 잘 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보고 있는데, 늘 안타까움이 불교TV는 아날로그입니까.

 

김봉래 : 네.

 

엄상호 : 채널망이 많이 부족하니까. 들리는 이야기로는 500만 600만 700만 시청권이 해결이 안 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역대 사장님들이 그것을 해결해보겠다고 말씀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어려움이 어떤 게 있는지 우리는 기술적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지만서도 그것을 해결해야 되지 않는가 생각을 합니다.

 

김봉래 : 그 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고요. 참고로 저희 케이블TV는 두 가지 채널로 운영이 됩니다. 아날로그 채널하고 디지털 채널인데요, 디지털 채널은 뭐 많은 채널들이 있기 때문에 저희가 뭐 열심히 해도 되는데, 아날로그 채널에 새로 들어간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저희가 조금 더 뉴미디어의 발달에 따라서 그것에 맞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서 세계 곳곳에 널리 퍼지게 하는 것이 관건일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뉴미디어 발달에 부응하는 그런 불교방송으로 우리가 거듭나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엄상호 : 하나 더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김봉래 : 네.

 

엄상호 ; 근데 뭐 시대적으로 봐서 삼국통일의 어떤 기본정신은 불교정신이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불교가 중심이 되어서 삼국통일이 이룩되었다 이렇게도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김봉래 : 원광법사 세속오계도 그렇고요.

 

엄상호 : 그렇죠. 불교가 무슨 한 시대마다 특별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또 필요하지 않은가. 이조시대(조선시대)는 승병으로부터 우리가 불교가 역할을 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새 시대를 맞아서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제일 뭐니뭐니해도 아까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남북평화통일,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이 고통, 이 아픔이 가장 큰 문제 아닌가. 이것을 볼 때 먼 훗날 2,30년이 될지 100년이 될지는 몰라도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보더라도 당시의 불교가 큰 역할이 있어서 통일이 이루어졌다, 이런 무슨 씨앗을 뿌려야 되지 않는가, 불교가 그런 큰 것을 하나 해야 되지 않는가, 생각을 해봅니다. 현실적인 삶에 어떤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 장래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일들을 한 번 해주십사하고 부탁드립니다.

 

김봉래 : 예. 알겠습니다. 미래불교를 위해서 불교가 발전을 해야 하고, 불교방송도 발전을 해야 되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래 인재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고, 마침 불교인재원을 이끌고 계시기 때문에 현재 우리 불교계의 인재개발, 인재양성의 현황을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엄상호 : 제가 불교인재원에 인연이 있어가지고 이사장으로 취임한지가 오래됐습니다. 처음에는 운영비 이런 부분의 걱정을 좀 하기 때문에 크게 뭐 걱정 안하고 가볍게 생각을 했는데, 한 5, 6년 지나고 이렇게 하다보니까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고, 이게 참 개인, 민간인, 우리 일반 신자가, 일반 신도가 이런 것을 운영하는 데는 참 문제가 있다...

 

김봉래 : 어려움이 많다.

 

엄상호 : 어려움이 많다 이런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일반 개인신도가 하는 그런 단체들은 성공하기가 극히 드물어요. 제가 하나 경험이 있다면 조계사 부근에 지금 동산반야회라고 있습니다. 거기 그 당시에 무진장스님이 계셨는데, 법주로, 저하고 김재일 회장하고 인연이 되어서 제가 설립이사를 몇 년 맡은 적이 있어요. 그것을 쭉 지켜보니까 그것은 성공한 단체다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김봉래 : 네. 지금 와서 볼 때요.

 

엄상호 : 네. 그래서 포교당이라든지 이런 불교단체는 반드시 스님하고 잘 하모니가 이루어져가지고 같이 동참해서 해야만 되는 것이지 일반신도들이 아무리 뛰어난 수완이 있다 하더라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하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래도 불교인재원이 여러 가지 경전 강의 프로그램도 만들고 해서 굉장히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엄상호 : 그럼요. 우리가 주로 큰 선지식, 큰스님들을 모시고 많은 법회를 했습니다. 해가지고 사실 우리나라 한국불교의 서울이니까 더 하겠습니다만 거의 10만 명 이상이 거쳐 갔습니다. 상당한 수준의. 그래도 아주 최상위의 지도급 인사들이 거쳐 갔습니다. 거쳐 가기는 거쳐 갔는데 남는 게 없다. 거쳐 가기는 가셨는데 우리 단체 자체로 봐서는 거쳐만 갔지 물론 뭐 역할을 안 한 것은 아닙니다만. 인재원은 10년 전이나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같습니다. 이사장님 하실 분이 없어서 내가 얽매여가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김봉래 : 그래도 불교를 알기 쉽게 안내해주는 어떤 인재양성의 산실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 아닌가...

 

엄상호 : 뭐 그런 점도 있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지금 생각하기를 절에 가면 법요집이 있는데 불교와 동시에 불교를 이해하면서 불교 신행을 동시에 하는 여건, 체계, 불경이 안 보여. 그래서 제가 별거 아니지만 아이디어입니다. 불교를 깊이 이해하면서 동시에 신행행위도 할 수 있는 책을 하나 엮어가지고 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엄상호 : 그래서 발간이 되는 과정에 우리 인재원하고 인연이 있는 분들 모시고 법보시로 한 500페이지 되고, 그 내용이 말하자면 그게 아이디어입니다. 절에는 주로 법요집만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불교를 가볍게 이해도 하고 동시에 신행행위를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서 엮었는데, 그것을 몇 천 권 출판해가지고 신도들에게 법보시 해볼까 지금 하고 있습니다. 준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거의 다 됐습니다.

 

김봉래 : 불교인재원의 역할이 이제 굉장히 소중한데요. 이러한 불교인재원의 어떤 비전이라든가 계획 같은 것을 성취함에 있어서 저희 BBS 불교방송 같은 매체가 할 수 있는 역할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엄상호 : 네. 사실 도움 받으려면 상당히 도움 받을 일이 많죠. 과거에도 우리가 법회 할 때 마다 BBS나 불교TV에서 늘 와서 촬영해서 홍보하시고 많은 당시 선지식 법문은 몇 백 명밖에 안 오는데 방송함으로 해서 몇 천 명, 몇 만 명이 시청하게 되고, 이런 역할을 저희가 나름대로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도 앞으로 신경 써주시면 안 좋겠나 하는 생각이고. 또 한 단계 더 나아간다면 아까 불교가 무슨 일을 했는가 하는 시대적 소명, 저도 통일에는 전혀 문외한입니다. 문외한인데. 성철스님 100주년 순례사업을 하다가 성철스님으로부터 어떤 영감을 내가 받았습니다. 쓸 데 없는 짓 하지 말고 통일기도나 하라고. 이런 영감을 어느 날 받고 내가 통 자도 모르는 사람이, 2012년이니까 벌써 한 8년 전이네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 꾸준하게 통일에 관심을 가지고 쭉 일하다보니까 나도 통일에 대해서는 어느 학자나 어느 대가 못지않게 이해를 하는 입장은 됐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나만 이렇게 되는 게 아니고 우리 국민이 다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는가, 모든 국민이 통일의 지식은 다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대로 공부를 좀 옳게 해가지고 옳은 통일의 지식을 다 연마하고 그렇게 흡수했으면 안 좋겠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불교방송 같은 데가 앞장서면 안 좋겠나.

 

김봉래 실제로 우리가 통일을 준비해야 하거든요. 독일 같은 경우도 보면.

 

엄상호 : 몇 십 년을 했습니다.

 

김봉래 : 그리고 언제 통일될 거라고 예견하기도 전에 어느새 통일이 되었다 그렇게 말씀을 하더라고요.

 

엄상호 : 독일은 그렇게 준비를 해도 통일 이후에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이 있었잖아요. 그런 것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왔을 때 그 혼란은 통일이 오지 않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 이거야. 미리 잘 준비를 해놔야 합니다. 그것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통일전문가가 되어야지. 저런 경제학에 관심 있는 이상으로, 경제는 국민들이 관심이 많잖아요. 그거와 같은 관심을 통일에도 불어넣어줘야 한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김봉래 : 부처님의 가르침이야말로 연기(緣起)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상호공존을 천명하는 그런 가르침이기 때문에 통일을 이루어나가는 데 아주 긴요한 사상적인 기반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실제로 통일 관련 공부를 하시면서 어떤 생각이 좀 드셨나요.

 

엄상호 : 통일의 공부도 하고 많은 서적도 읽고 강연도 듣고 해봅니다만 이게 참 우리 부처님 정신 아니면 통일을 해도 엄청난 문제가 안있겠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연기설, 연기, 인연, 이런 것을 잘 깊이 연구해서 하나하나 배려해서 우리가 남북을 잘 아울러서 통일해야 되지 그것을 잘못 생각하면 무력이나 잘못 생각하면 우리가 좀 산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흡수한다든지 이런 생각을 해서도 안 되고, 일 대 일 우리 같은 민족이고 민족이 아니라도 우리 불교사상은 온 마음이 하나잖아요. 이것을 본다면 말이지 우리는 정말로 통일에 대해서는 경제문제 이상으로 국민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된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김봉래 : 물리적인 통일 이전에 정신적인 통일 노력이 중요하다 이런 말씀...

 

엄상호 : 평소에 꾸준하게. 어느 날 갑자기 하면 안 된다 이거지.

 

김봉래 : 그리고 보면 엄상호 이사장님께서는 늘 넉넉한 웃음으로 편안함을 주시면서 생활에서 실천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정말 부처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고 계신 거 아닌가 이런 느낌을 주는데요. 혹시 평소에 건강 유지 비결이나 수행이나 어떤 것들이 계시는지요.

 

엄상호 : 뭐 좋은 말씀해주셨지만 아직까지도 넉넉한 삶을 못살고 있습니다.

 

김봉래 : 아이고 무슨 말씀을요. 겸손의 말씀이시죠.

 

엄상호 : 뭐 한 때는 그룹으로까지 사업을 성장해가지고 열심히 가다가 접고 요즘은 조그만 기업을 위해 후진을 위해 양성도 하고.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오전 일은 늘 그래도 기업에 나가서 80이 되어도 일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그게 건강한 비결이 아닐까요.

 

엄상호 : 그 다음에 그거 끝나면 봉사도 해야 하니까 인재원 일도 봐야 되고 또 우리 통일 문제, 재단 내 문제도 봐야 하고, 제가 또 엄가니까 영일 엄 씨 대종회 회장인데, 한 20년 지금 회장을 아주 독재를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아유. 바쁘세요.

 

엄상호 : 그래서 그런 일 저런 일 이렇게 해서 아주 시간적으로서는 여념이 없고 한 밤 12시 11시 되어야 아주 넉넉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칩니다. 마치고 제가 한 33년을 신행을 하는 중에 절을 해봤습니다. 절을 해봤는데, 한 1년 전에는 나이도 있고 해서 330배는 한 달에 만 배를 목표로 했거든요. 33년은 했으니까, 좀 나이도 있고 하니 줄이자고 해서 그래서 108배 이내로 절하면서 예불은 늘 하니까요. 아침 예불은.

 

김봉래 : 아. 그러니까 절을 매일 330배씩.

 

엄상호 : 330배 한 달에 만 배. 그것을 한 33년을 했죠.

 

김봉래 : 지금은 이제 108배로 줄여서 하고 계시다.

 

엄상호 : 108배로 줄여서 하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예불을 늘 합니다. 천수경을 위시해서... 요즘은 뭐 10분, 20분, 뭐 기도도 30분 이내에 아침 시간이니까 참선을 좀 하고 있어요. 그것도 하기는 오래했습니다. 오래하고 있고.

 

김봉래 : 저희 후배들이 많이 좀 본받아야 될 것 같아요.

 

엄상호 : 그런데 우리 현대인들은 우리 집에도 내가 불상 모시고 참선한다고 준비해놓고 이러고 있는데, 젊은 우리 자손들은 그 방에 들어오는 것을 좀 꺼리더라고. 부처님 모시고 뭐 이러고 있으니까. 그래서 좀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김봉래 : 자기도 모르는 새 좀 경건해질 것 같아요.

 

엄상호 : 저는 사실 거기에 들어가면 마음이 아주 그 순간이라도 경건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재가지도자이시죠, 엄상호 불교인재원 이사장님과 말씀을 나눠봤는데요. 이렇게 하다 보니까 벌써 시간이 흘러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마무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엄상호 : 부끄럽게도 아직 불교를 그렇게 오래 믿어왔지만 고쳐지지는 않아요. 성격이 안 고쳐져. 급하고 이런 것은 안 고쳐지는데, 그럼 불교를 내가 헛 믿었지 않은가 늘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사람이 날 보고 불교를 믿어서 나아졌다 우리 집사람은 그래도 나아졌다 생각하는데 나를 대하는 일반 만나보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김봉래 : 아닙니다.

 

엄상호 : 그렇습니다. 그래서 뭐 자랑할 것도 없고. 오히려 부탁을 말씀드린다면, 여기 불교방송의 개국 당시의 큰 뜻을 잘 헤아려가지고 불교방송이 큰 역할을 해주셨으면 하는 말씀으로 끝을 맺기로 하겠습니다.

 

김봉래 : 예. 고맙습니다. 오늘 스튜디오에까지 나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엄상호 : 감사합니다.

 

김봉래 : 엄상호 불교인재원 이사장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BBS 방송이 불법 홍포에 큰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해달라는 말씀 되새기고자 합니다. BBS가 30년의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앞으로 뉴미디어 시대에 더욱 적응해서 글로벌 미디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하겠다, 이렇게 다짐해봅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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