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한 구절입니다. 막연한 대상에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를 통해 의미있는 존재로 탈바꿈 시켰다는 뜻입니다. 선거 또한 그렇다고 봅니다. 무수한 공약을 내건 후보나 정당에게 유권자는 표를 몰아줘 공약을 현실화시키고 공식적인 정치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니까요.

21대 국회 4·15 총선 비례대표 후보 투표용지에 적힌 정당이 무려 35개입니다. 생소한 이름의 정당이 대부분입니다. 원래 정당 이름은 이념적 가치와 정치적 지향점을 나타낼 수 있는 단어로 조합하기 마련인데요. 35개 정당을 훑어보니 이름만 봐도 어떤 사람들이 모였겠구나 짐작하게 만드는 당이 있는 반면 헛웃음을 짓게 만드는 당도 있습니다.

외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1990년 12월 폴란드에는 '맥주 애호가당'이 등장했습니다. 체코나 러시아 등 맥주 좀 마신다는 국가에는 존재한다는 당이랍니다. 환경보호를 내건 녹색당처럼요. 우리나라도 녹색당이 활동합니다. 농담으로 시작해 장난으로 모인 당원들이 세운 '맥주당'은 1991년 10월 선거에서 의원 16명이 당선됐습니다. 장관까지 배출하고 폴란드 전국에 보드카 대신 맥주 문화를 꽃피웠지만 다음 총선에서는 한명도 당선되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마치 맥주가 금방 김빠지듯이.

이번 총선에 폴란드 '맥주당' 같은 느낌의 정당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국가혁명배당금당'입니다. 허경영 대표가 이끄는 배당금당은 20세 이상 국민에게 배당금으로 1인당 150만원을 지급한다는 등의 정책을 내걸고 있습니다. 공약을 보면 거의가 돈 준다는 말 뿐입니다. 누구나 혹하는 달콤한 공약입니다. 그런데 "소는 누가 키웁니까?". 같은 아시아권의 브루나이처럼 산유국 정도는 되야 세금없이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는게 현실인데요. 

역대 선거에서 혁신적인 당명으로 성공한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친박연대'입니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복당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운 정당입니다. 지역구 6석과 비례대표 8석을 포함해 14석을 얻으며 파란을 일으킨 ‘친박연대’는 오로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운 막무가내 정당이었습니다. 친분만을 내세운 정치인이나 찍어준 유권자나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입니다.

우후죽순처럼 탄생한 정당들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부작용으로 보여집니다. 다양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자는 취지인데 권력 쟁취가 목적인 사람들의 교두보로 활용될 여지가 있어 안타깝습니다. 비례대표 의석은 정당투표에서 3% 이상 표를 얻어야 배분받을 수 있는데 역대 총선 비례대표 당선 사례를 보면 한 정당이 얼추 65만여 표 넘으면 국회의원 뱃지를 답니다. 경기 안산시 인구와 비슷한 만큼 안산 시민들이 담합하면 정당 하나쯤은 탄생시킬 수 있는 겁니다.

선거는 심판입니다. 국민 전체가 배심원인 셈입니다. 정치와 경제 등 각 분야에 걸쳐 누가 잘하고 못하고, 어느 정당이 낫고 떨어지고를 판단하는 일은 바로 국민의 몫입니다. 유혹에 넘어가거나 장난삼아 하는 판단으로 자칫 오류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나 하나 쯤이야'가 아니라 '나 하나라도" 하는 마음으로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소중한 주권 행사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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