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12대 전국비구니회 회장 본각스님.

"비구니회 회장 선거 당시 내걸었던 공약을 잘 이행하고 비구니회의 미래를 준비한 회장이었다고 평가받고 싶습니다."

조계종의 12대 전국비구니회 회장 본각스님이 4년의 임기를 보낸 뒤 어떤 회장으로 남길 바라냐는 물음에 고민 끝에 이렇게 말했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고 사회 진출도 활발해진 요즘 종교계는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있다는 지적이 높다. 불교계에서도 비구니 스님들의 행정 참여와 권익 증진, 종책 개발 등이 과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조계종에 소속된 비구니 스님들은 6천여 명. 종단 전체 스님의 절반이 넘는 숫자로만 봐도 비구니 승단의 위상과 역할 강화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이런 가운데 본각스님 체제에서 처음 꾸려진 '회의 기구', 회칙개정위원회가 만들어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실상 직선제로 치러진 지난 비구니회 회장 선거에서 마주했듯 미비한 선거 제도를 보완하겠다는 취지에서 설치된 것이다. 회장 선거 때마다 되풀이돼온 비구니 스님들 간의 갈등을 뿌리 뽑고 축제 분위기 속에서 치르고 싶다는 회장 본각스님의 강력한 의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하지만 선거법 개선 이전에 당장 포용하는 비구니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비구니회 회장 선거 막판 당시 연임에 도전한 육문스님 측이 본각스님에게 제기한 학력 위조 의혹의 여운으로 인해 아직도 앙금을 털어내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이렇듯 치열한 선거전을 겪으며 출범하게 된 본각스님 체제의 조계종 12대 전국비구니회는 화합이란 큰 과제를 앞에 두게 된 것이다.

비구니회관인 법룡사의 문을 활짝 열어뒀다고는 하지만 전 집행부에서 소임을 맡았던 스님들의 발길은 여전히 회관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하는 모양새이다. 선거 과정의 상대편을 포용하고 함께 이끌고 나가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의 요건일 수밖에 없다. 연임에 실패한 육문스님 측이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본각스님 측이 '원융화합'에 나서는 것이야말로 비구니회의 안정과 도약의 밑거름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특히 미래지향적인 젊은 비구니 스님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의 폭을 넓혀 주는 일도 비구니 승단을 대표하는 회장 본각스님의 몫이다. 비구니 스님들이 설수 있는 자리가 비좁기 때문이다. 조계종 총무원 부실장 가운데 재무부장 소임만 유일하게 비구니 스님이 맡고 있다. 비구니 스님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중앙종회 의원 81석 가운데 비구니 스님에 할당된 의석수는 단 10석에 불과하다. 사부대중의 의지처가 돼온 비구니 승단에 종단도 전향적인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비구니 승가의 또 다른 문제점은 스님들의 참여도가 낮다는 것이다. 사실상 직선제로 치러진 지난 12대 회장 선거에서 이러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날 투표자 수는 1880명. 역대 최대 투표율로 기록된 선거였다고는 하나 흔히들 비구니 승가를 '6천여 비구니 스님'이라고 표현했을 때 이는 3분의 1이 채 안 되는 셈이다. 전국비구니회장 선거라는 최대 정치적 이슈 속에서도 절반이 훨씬 넘는 이들 스님들에게는 격안관화(隔岸觀火)인 듯 축제 분위기 속에서 치러져야 할 선거는 무관심으로 방치됐다. 축제란 모름지기 함께해야 제 맛이고, 참여하는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채워져야 하는 법이다.

가부장적 사회 문화의 영향과 계율에 대한 그릇된 관념이 고착화되면서 종단 운영이 비구 스님 중심으로 이뤄진 것도 문제다. 불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 평등사상이 깊게 자리하고 있지만, 뚜렷한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복지와 교육과 같은 분야에서 비구니 스님들의 전문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출가자 감소가 이어지면서 출가 희망자에 대한 상담과 행자 관리에 대한 비구니 스님 역할의 중요성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어머니의 향기'를 제대로 전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하는 비구니 스님들이 적지 않다.

한쪽에서는 비구니회가 발전하려면 비구니 스님들이 자주성을 길러야 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한 비구니 스님은 새로운 출발점에 선 비구니회를 위해 한국불교의 한 축인 비구니 스님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이 스님은 예를 들어 비구 스님 500명, 비구니 스님 500명이 각각 있을 경우, 비구니 스님은 언제나 501번째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비구니 스님들 스스로에게 깊이 파고든 '관성의 법칙'처럼 여기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비구니 스님은 81석 가운데 10석밖에 안 되는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자리를 얻기 위해 이름만 걸어놓은 비구니회 회원이 아닌 실질적 회원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연장선에서 비구니 스님들이 정말로 비구니회의 발전을 원한다면 속된 말로 "비구니라는 껍질부터 벗어던져야 한다"는 말도 들려온다. 일제 강점기 때 조국을 위해 독립운동을 했던,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민주화운동을 했던 그 시대의 여성들처럼. 비구와 똑같은 부처님의 제자라면 비구니들도 시대를 선도하는 선각자로서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계종 12대 전국비구니 회장 본각스님은 누구보다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낄 것이다. 변화를 향한 비구니 스님들의 바람과 열망을 너무나 잘 알기에 비구니회 회장으로서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매우 엄중하다. 무엇보다 본각스님이 소통과 화합을 내세운 것처럼 미래를 준비하는 긴 안목을 갖고 소통의 힘으로 새로운 비구니회의 도약을 차분하면서도 신중하게 준비해야 할 때이다.

세납 3세에 출가한 비구니계의 대표적 강백 본각스님은 경자년 새해를 맞아 그 어느 때보다 힘찬 새 출발을 다짐하면서 활발한 대내외 행보를 펼치고 있다. 중앙승가대 교수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라디오 방송 진행, 국제무대에서 익힘 경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만큼 '소통의 채널'을 풍부하게 넓혀 비구니 승가의 변화와 혁신, 나아가 한국 불교의 새로운 발전을 이끈 전국비구니회 회장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끝>

*이 글은 전국비구니회지 제35호에 게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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