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종교화와 출가자 감소 등으로 한국 불교의 치열하고 엄격한 수행 가풍이 흔들리고 세속화에 물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 지 않은데요.
하지만 법보종찰 해인사에서는 성철스님 입적 이후에 수용인원의 2배를 넘는 행자들이 엄격한 규율 속에 함께 생활하는 등 수행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월간 ‘해인’ 편집장 출신의 종현 스님이 치열했던 해인사 행자실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는데요.
첫 소식 홍진호 기자입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월간지 '해인' 편집장을 지낸 종현스님은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와 만나 1993년 조계종 종정 성철스님 입적이후 해인사는 행자들로 넘쳐 났다고 회고했습니다.
같은 해 해인사로 출가한 스님은 20명 남짓 생활할 수 있는 공간에 40여 명이 함께 있다 보니, 행자실의 규율은 해병대 보다 더 엄격하고 혹독했다고 전했습니다.
승복 대신 속복을 입은 그대로 삼 천배를 마치면 6일 동안 벽을 보고 2~3시간 서 있는 것은 기본이어서, 다들 삭발을 하며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쏟아냈다고 회고했습니다.
[종현 스님/ 대구 도림사 주지: 그러다 보니깐 본의 아니게 규율이 엄격하고 이것을 견디는 사람만이 그때 버틸 수가 있었죠. 그래서 많은 반 수 이상의 행자들이 해인사에서 버티지를 못하고 다른 사찰에 가서 계를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구 도림사 주지 종현스님이 지금과는 사뭇 다른 해인사 행자시절부터, 강원과 선원의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으로 냈습니다.
월간 ‘해인’ ‘해우소’ 코너에 실렸던 글들을 모아 엮은 것으로, 삭발한 뒤 머리카락을 사찰에 묻는 등 스님들만이 알 수 있는 내밀한 일화들로 넘쳐납니다.
범어사에서 정진 중 어느 여인이 길을 막고 물어 보았던 ‘질문’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이를 책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책에는 또 오직 깨달음을 얻기 위해 택했던 출가 인연도 가감없이 담았습니다.
[종현스님/ 대구 도림사 주지: 부모를 버리고 사회를 등지고 출가 한 것은 무명에서 벗어나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 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대의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참고 이겨내는 인욕생활, 그래서 해인사 행자실이나 승가대학은 그러한 것들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이러한 것들을 잘 가르쳐 준 곳이라 생각합니다.]
한국불교의 수행 중심 도량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가적 재난 극복에도 앞장섰던 해인사.
20여 년 동안 해인사에서 정진했던 스님이 들려주는 그 때 그 시절 치열했던 수행정진의 일화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요즘 더욱 새롭고 의미 깊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BBS NEWS 홍진호입니다.
(영상취재=남창오/ 영상편집=최동경)
따뜻한 글 한 줄에 푸릇한 마음도 익어갑니다.
도림사 주지 종현스님의 글을 읽고,
나의 진심(眞心)은 어디로 가야 이 길의 끝이 보이는지 사유하기를 바랍니다.
- 좋은 글은 황량한 마음에 아름다운 생각을 심어줍니다. - 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