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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2020년 4월 5일(일) 오후6시20분부터 40분간

출연: 혜총스님(부산 감로사 주지, 전 조계종 포교원장)

담당: 김봉래(BBS 전법후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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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 진행을 맡은 김봉래입니다. 요즘 세상이 복잡하고 다단해서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이렇게 느끼시는 분들 계실 텐데요, 그래도 잘 찾아보면 안심할 곳은 있습니다. 불교는 세간을 뛰어넘는 출세간의 가치를 밝게 드러내 보입니다. 그렇다고 출세간이 세간을 버리는 것은 아니죠. 세간에 머무르되 세간에 매이지 않는 삶. 그러한 삶이 바로 영원한 행복, 열반이라 할 수 있다 하는 가르침으로 이해해봅니다. 항상 맑고 향기로운 삶을 지향하는 이들이 바로 불교를 따르고 실천하려는 이들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이 시간에는요, 맑고 향기롭게를 창립하고 맑고 향기롭게 운동을 주창하셨던 법정스님과의 인연담을 소개하실 분입니다. 조계종 포교원장을 지내신 부산 감로사 주지 혜총스님 모시고 말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대로 혜총스님 불교방송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혜총스님 안녕하십니까.

혜총스님 : 안녕하십니까.

김봉래 : 네. 멀리 부산에서 와주셨습니다. 요즘 코로나19로 해서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데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스님.

혜총스님 :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참회하고, 기도하고, 참선하고 사경하면서 본분사를 찾으면서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김봉래 : 불교에서도 이런 추세에 발맞춰서 어쩔 수 없이 법회까지 중단하고 우리 부처님 오신 날 봉축행사도 한 달을 연기했는데요, 전체적으로 어떻게 평가를 하고 계신지요.

혜총스님 : 국가적으로 또는 세계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법회라든지 종교 활동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건강, 안전 그리고 나라 발전이 더 우선하기 때문에 종교 활동은 자제하면서 조용하게 가정마다 절마다 기도하고 참선하고 염불하고 참회하고 사경하는 것이 국가 민족을 위해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해서 종단에서 한 것이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김봉래 : 예. 그렇습니다. 불교계가 국가적인 세계적인 어려움을 만나서 선도적으로 솔선수범하고 있다 이렇게 보시는 거죠.

혜총스님 : 당연하죠. 국가와 민족이 우선이지 불교가 우선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국가적인 시책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

김봉래 : 그러다보니 모든 국민들이 여러 가지 생활상 불편한 점이 많고 또 경제적으로도 여러 가지 활동이 상당히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혜총스님 : 사바세계는 참고 견디는 세계이기 때문에 국가 시책에 따라서 참고 견디면서 국가 시책에 따라서 잘 하면 잘 풀리리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김봉래 : 네. 변함없는 보편적인 진리에 의해서 이 세상이 작동하기 때문에 그에 수순하는 것이 바른 도리다 이렇게 이해를 하고 싶습니다.

 

혜총스님 : 그렇습니다.

 

김봉래 : 네. 오늘 혜총스님을 저희가 모신 것은 바로 무소유의 주인공이시죠, 법정스님. 돌아가신 지 10주년이 되어서 큰스님을 그리는 분들이 많고 아직도 큰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실천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법정스님과의 인연담, 우리 혜총스님과 법정스님과의 인연담을 듣고 싶어서 오늘 모셨는데요, 얼마 전 10주년 추모법회 때도 스님께서 추모법회에서 또 좋은 말씀을 전해주셨거든요.

 

혜총스님 : 법정 큰스님께서 벌써 열반에 드신 지가 10주년이 되었어요. 그래서 먼저 길상사에 가서 10주년 행사를 하면서 추모사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법정 큰스님하고 저하고 관계는 역시 자자 운자 스님(자운스님)과의 인연관계로 깊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법정 큰스님께서 59년도에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을 때 제가 그 자리에 자운스님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운 큰스님이 60년대에 해인사 주지를 두 번 하셨기 때문에 그 때 해인사 가서 법정스님을 친근하고 같이 지냈죠. 그래서 자운 큰스님의 심부름이라든지 또 같이 대중으로서 살다보니까 자연히 정이 들고 그것으로 인해서 돌아가실 때까지 여법하게 모시는 혜총스님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법정스님은 우리 불교계뿐 아니고 정말 우리 근현대사를 돌아볼 때도 정말 위대한 인물 중에 한 분 아니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법정스님을 보내드렸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굉장한 또 손실일 수 있고요. 그런데 법정스님이야말로 정말 청빈의 삶, 무소유의 삶으로 유명한데 제가 얼마 전에 변택주 작가님하고 인터뷰를 했을 때 스님의 사상은 어떤 한 마디로 크나큰 사랑이었다 그것을 또 강조를 하더라고요. 일반적으로 알려진 무소유 외에, 무소유가 가능한 것은 그 밑바닥에 어떤 큰 사랑이 간직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렇게 새삼스럽게 불교의 큰스님의 자비한 마음을 강조를 했었거든요. 스님께서 이렇게 법정스님과 오랜 인연을 겪으시면서 스님의 그런 그 애틋한 마음 그런 부분을 또 많이 엿볼 수 있으셨을 것 같아요.

 

혜총스님 : 제가 법정스님을 50여 년간 지켜봤거든요. 연세는 저보다 많으시지만 첫째로 그분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개개인이 불성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으셨고, 두 번째는 확실한 신심이 있으셨어요. 그리고 세 번째는 거기에 걸맞게 수행을 하셨고 거기에 걸맞게 또 포교를 하시고 깔끔하게 마무리까지 지으시면서 일생을 마치셨다고 생각을 먹거든요. 아까 김봉래 국장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석가모니 부처님도 80에 이 세상을 마치셨지 않습니까. 아쉽지요. 이 시대에 이렇게 어려울 때 법정 큰스님 같은 분이 계신다면 우리로 봐서는 좋겠지만 큰스님으로 봐서는 일을 다 하고 가셨다고 생각했고, 그 스님이 또 유언장에도 보면 다음 생에도 이 한반도에 태어나서 한국말을 하면서 한국문학을 하면서 불교를 퍼트려서 못한 일을 다 하시겠다는 말까지 하셨는데, 그 영향은 발심할 때부터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이 불구몸의 엿장수를 학창시절 때 친구들과 속이면서 엿을 친구들이 슬쩍하는 것을 보고, 그 엿장수는 그것을 모르고 지나는 것을 보고서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하는 말씀을 하고 계시거든요. 나한테도. 본질은 다 착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출가하게 된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우리나라에서 종정도 역임하신 효봉 큰스님을 몸시봉, 그대로 몸시봉을 했습니다. 손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시봉하는 거예요. 방도 닦아드리고 빨래도 해드리고 음식도 챙겨드리고 하는 것을 그렇게 직접 하셨고, 그 다음에 우리나라에서 율을 주창하신 것은 알다시피 36년 간 일본불교가 들어와서 결혼하고 취처하고 하는 여러 가지를 봤을 때 한국불교가 그게 아니지 않느냐 해서 자운 큰스님이 율이 살아있을 때 불교가 살아있고, 계율이 죽었을 때 불교가 죽는다는 그런 철두철미한 사상을 가지고 계시는 율을 전공하신, 참선도 하시면서 역시 향곡 큰스님이라든지 성철 큰스님이라든지 이런 분들, 또 운허 큰스님, 영암 큰스님, 청담 큰스님 이런 분들하고 다 열심히 참선도 하셨지만 자운스님을 만난 것이 큰 서로의 도움이 되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난 연후에 제가 볼 때는 영암스님을 만났고 행정에 능력가이신, 그리고 강의에 석학이신 운허 큰스님한테 또 이렇게 글도 배우셨고 또 영향을 받으셨고, 역경원장 하셨을 때 같이 역경도 하시는 것을 제가 봤거든요. 그리고 또 알다시피 운허스님, 자운스님, 영암스님, 그리고 난 연후에 도반으로서 지관스님, 또 조카지만 송광사 중흥 불사의 주인이신 현호스님하고 관계가 깊었어요. 그러면서 나는 자동적으로 자운 큰스님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스님을 이렇게 존경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미 그 분들이 가깝게 계시는 분들이 이미 큰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법정스님도 그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한국불교를 중흥시키고 부처님의 정법을 이 세상에 펴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도반이 그만큼 중요하고 선지식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법정 큰스님이 가시고 난 오늘에 더 뼈저리게 생각이 들게 되네요.

 

김봉래 : 그렇군요. 사실은 그 때 1960년대 70년대야말로 종단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혜총스님 : 그렇습니다.

 

김봉래 : 이른바 정화불사 비롯해서 여러 가지 사연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이렇게 좋은 훌륭한 선지식과 도반들이 한국불교를 이끌어왔다, 큰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날 한국불교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생각이 드는데, 그 중심에 또 우리 법정스님이 계셨다는 것이고, 그것을 또 우리 혜총스님께서 같이 지켜보면서 지금까지 살아오셨다 하는 것에서 참 저도 굉장히 깊은 존경의 말씀을 안 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혜총스님 : 한 때 해인사 50년대 후반 60년대 초반에 법정 큰스님께서 불교신문을 통해서 부처님 전에 상설해가지고 상소문을 올린 게 있어요. 하나의 고발이지. 사찰에서 하는 것이 잘못 되고 스님 내외 하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불교신문을 통해서 고발한 적이 있어요.

 

김봉래 : 예. 바른 소리를 하신 거죠.

 

혜총스님 : 바른 소리했지. 그러니까 해인사 대중이라든지 행정을 하는 분들이 법정스님을 좋아 안했어. 자운스님은 특별나게 법정스님을 사랑하셔요. 그래서 용돈이라든지 의복이라든지 약이라든지 음식이라든지 촛동아리까지도. 옛날에는 해인사가 종이가 없었거든요. 초를 켜고 공부를 할 정도인데, 그것을 나를 시켜가지고 혜총을 시켜가지고 계속 자운스님이 갖다 주려고 해서, 한 때는 법정스님께 안 가져다 드릴랍니다 그러니까, 왜 안 가져다 드리려고 하느냐, 대중이 싫어하고 혜총이 내가 싫어하는데 내가 뭐 하러 가져다 드립니까. 심지어 자기가 쓰던 자운 큰스님이 쓰던 방까지 비워서 그 방에 계시도록 하면서 극진히 모시는 거예요. 그런데 자운 큰스님께서 이렇게 말을 하셔. 그런 말 하지 마라. 한국불교와 한국종단을 위해 크게 할 분이니까 잘 모셔라, 잘 모셔라 그래요. 그리고 지관스님한테도 잘 모시라 하고. 또 지관스님한테 일화도 있습니다. 지관스님은 항상 자운 큰스님한테 올 때 물품 하나 사가지고 오는 게 없어요, 선물을. 몇 십 년간을. 자운스님은 항상 베푸는 쪽에 계시는데 받아만 먹고 계시는 거야. 동국대 총장하면서도 맨손으로 오신 거야. 그래서 내가 자운스님 큰스님 계신데 오지 말라고 했지. 그러니까 가고 난 연후에, 야 네가 그렇게 말하면 되나. 그러나 내 시자로서는 난 섭섭합니다. 지관스님도 앞으로 종단을 위해 크게 일할 사람인데, 그러지 마라, 잘 모셔라. 그리고 광덕스님, 광덕스님을 누구보다도 자운스님께서 사랑하셨어요. 재단법인 대각회를 만들 때도 광덕스님이 주무 장관이 되어가지고 용성스님의 뜻을 받드는 일을 중추적으로 하셨어요. 우리 스님 보경스님이라고 해서 자운스님의 맏상좌 감로사 주지인데, 그 때 감로사의 재산을 출연해서 대각회의 근본재산으로 만들어서 대각회가 지금 오는 건데, 일생에 세 분, 법정스님, 지관스님, 광덕스님을 잘 모셔라, 크게 종단을 위해서 일할 분이다 하는 말씀을 한 적이 있는데. 좌우간 법정스님 일생을 들여다보면 정말로 그렇게 사실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김봉래 : 아주 올곧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미일관한 그런 스님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갑자기 지금 혜총스님께서 좀 눈물을 흘리실 정도로 울컥하신.

 

혜총스님 : 마음이 울컥하네요. 정말로.

 

김봉래 : 법정스님께서 또 이렇게 우리 자운 큰스님의 애제자죠, 혜총스님을 아끼셨던 거 아닌가. 그래서 우리 혜총스님의 첫 에세이집 <꽃도 너를 사랑하느냐> 추천사를 직접 써주셨다고요.

 

혜총스님 : 불교방송에서 제가 2년 반 동안 96년도부터 99년도까지 방송을 했습니다.

 

김봉래 : 네. 저희 BBS에서요.

 

혜총스님 : 그것을 원고를 추슬러가지고 책을 만들었는데, 법정 큰스님이 글을 잘 쓰시고 또 나한테도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대학 가라는 것도 법정 큰스님이 가르쳐 주셨고 경전만 가지고 안되니까 학교를 가라 그런 말씀도 하셨고 해서 항상 자문을 얻었지요. 그래서 책을 내려고 하니까 법정 큰스님이 생각나더라고. 그래서 원고를 가지고 갔더니 원고를 한 번 보자 그러면서 책머리에 하고 수유산방에서 99년도 겨울에 옥고를 써주셨어요. 그래서 내가 (법정스님 열반) 8주년 때 BBS 불교방송 TV를 통해 법문을 한 번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꽃도 너를 사랑하느냐, 그 때 종단이 하도 많이 싸움을 하니까 제목을 뽑아달라고 하니까, ‘그래도 강물은 조용히 흐른다’, 부처님의 진리는 스님 내외가 싸움박질 해도 흐른다는 뜻을 가지고 써주셨어. 그래서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스님! 나는 자운 노스님의 경책인 ‘꽃도 너를 사랑하느냐’, 그것은 네 입장에서 쓰지 말고 꽃의 입장에 서라는 말씀이거든,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래서 하니까 그래 그게 더 좋겠다 하면서 추천서를 써주시면서 나에 대해서 아주 극찬을 해주셨어. 극찬. 나 아마 그것으로 인해서 스님 생활 더 잘하는지 몰라요. 극찬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내가 책을 내가지고 첫 번째 에세이집을 낸 것이 <꽃도 너를 사랑하느냐>, 그 다음에 지관스님으로부터 추천서를 받아서 <새벽같이 깨어 있어라>, 그리고 총무원장 하던 자승스님이 <공양 올리는 마음>을 추천서를 써주셨고, <아미타경 강설>을 내가 2년여에 불교신문에 연재를 했는데 그것을 책을 만들면서 설악산 조실 무산스님께서 추천을 해주셨어.

 

김봉래 : 혜총스님께서도 많은 도반과 스승의 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혜총스님 : 그런데 자운스님 사시는 모습은 그것으로 있지 저는 덕이 없고. 법정스님께서 나한테 글을 써주시면서 써달라는 사람이 많았지만 한 번도 쓴 적이 없고 혜총의 너로서 끝이고 마지막이다 하면서 그 추천서를 써주신 거예요. 아주 귀한 겁니다.

 

김봉래 : 전무후무한 법정스님의 추천사, 우리가 기억을 해야 될 것 같아요. 법정스님과 해인사에서 코스모스 인연이 있다고 제가 들었는데요.

 

혜총스님 : 예. 그것은 61년도지, 법정 큰스님께서 대구에 나가셔서 코스모스 씨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나를 불러서 혜총아. 예. 야 해인사 해우소가 너무 험하니까 그 주위를 꽃밭으로 만들자. 너하고 나하고 만들자. 둘이 만들자고 해서 둘이 꽃밭을 심고서 가꿨더니 이 코스모스가 다른 풀보다도 웃자라서 다른 풀이 나기 전에 먼저 나니까 그것이 가을이 되니 꽃이 피었어요. 그러면서 나를 나오라고 해서 나갔더니, 혜총아. 예. 산에는 꽃이 피네. 그리고 나도 스님! 산에는 꽃이 피네요. 그렇게 감상한 적이 있어요. 그렇게 꽃을 좋아하시더라고. 나중에 보니까 류시화 시인하고 책을 만들어서 <산에는 꽃이 피네>하는 책을 만들었어요.

 

김봉래 : 에세이집을.

 

혜총스님 : 에세이집을. 그러면서 그 책을 하나 주시더라고. 나는 알지만 스님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같습니다 하니까 야 너 하고 나하고 해인사 해우소에서 코스모스 심어놓고 꽃 필 때 내가 산에는 꽃이 피네 하니까 너도 산에는 꽃이 피네 그렇게 안했나. 나도 그거 압니다. 그렇지만 스님이 그렇게 기억하고 계시면서 그 때 처음으로 산에는 꽃이 피네 하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김봉래 : 네. 참 법정스님께서 겉으로 볼 때는 근엄하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런 어떤 깊은 사랑을.

 

혜총스님 : 아유. 자비가 넘치는 분입니다. 자비가 진짜 넘치는 분이예요.

 

김봉래 : 오늘이 마침 식목일이거든요. 나무 심는 날인데, 1년 지계는 농사라고 하고 10년 지계는 나무를 심는 일이라 하고 100년 지계는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혜총슨미 ; 좌우간 사바세계는 더불어 살기 때문에 산에는 나무가 있어야 되고 들에는 곡식이 있어야 되고 도시는 사람이 살아야 되고,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더불어 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 방법이지. 불교는 무엇보다 인재를 길러야 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지금 조계종 스님 내외가 13,000여 명밖에 안되는데, 스님의 숫자가 너무 적아서 승가영아원, 승가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치고 승가대학, 동국대학교 들어가서 인재를 만드는 일을 종단에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산에는 나무를 심지만 우리도 장래를 봐서 불교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세계인의 정서를 위해서도 스님 만드는 불사를 많이 해야 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봉래 : 네. 스님. 지금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불교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정말 더불어 살기 위한 수단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법정스님께서 주창하셨던 맑고향기롭게가 바로 그것이 핵심이 아닐까 싶은데요, 스님.

 

혜총스님 : 법정스님의 삶 자체가 맑고 향기롭게 사셨는데 그것을 성문화시키지 않았지만 성문화시킨 것은 1994년도에 맑고 향기롭게를 결성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때 만들어가지고 부산에 오셨어요. 그래서 제가 범어사 부주지 할 때고 부산불교연합회 사무총장 할 때 활발하게 복지관 관장도 활발하게 할 때인데 오셨어요. 그 때 감로사에 법정 큰스님하고 노영심이라는 가수하고 김광석 가수를 아주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항상 옆에 끼고 다니면서 맑고향기롭게 운동을 하고 그 때 연주도 하고 늘 그러셨어요. 그래서 나중에 김광석 씨는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때 지금 원로회의 의장이신 세민스님이 주지로 계시는 수안사에서 49재를 지냈어요.

 

김봉래 : 네. (김광석 씨는)저희 불교방송도 오래 진행을 했었어요.

 

혜총스님 : 그 때 내가 49재 참여해서 재를 지냈습니다.

 

김봉래 : 나무아미타불.

 

혜총스님 : 대단한 불자이지요. 그렇게 그런 분들을 키워가며, 그리고 알다시피 법정스님이 장학금 준 사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김봉래 : 네. 나중에 알려졌죠.

 

혜총스님 : 돌아가시면서도 신문 배달하는 사람한테도 혜택을 주고 숨어서 한 분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래요. 내가 알기로는 원고금이 생기고 강연비가 생기면 다 그런데 쓰고 무일푼으로 사신 분이야. 무소유로.

 

김봉래 : 말씀하신 대로 무소유를 실천하신 거죠.

 

혜총스님 : 그러니까 맑고향기롭게를 끝마무리를 못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항상 무소유를 주장하셨지 않습니까. 무소유는 나하고는 깊이 토론한 바도 있어요. 나는 몸이 있으니까 소유하는데 그럼 몸을 버려야 할 거 아닙니까 하니까 법정스님께서 혜총 나에게 말씀하신 대목 무소유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하다’는 말씀을 저 혜총한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김봉래 : 무소유에 대한 오해를 저도 한 동안 많이 했습니다. 스님 말씀은 단순히 갖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베풀라는 뜻인데.

 

혜총스님 : 베풀라는 뜻이에요. 다시 보면 베풀라는 뜻이에요.

 

김봉래 : 네. 그런 말씀인데 흔히 세상에는 너무 갖지 않는 쪽만 이렇게.

 

혜총스님 : 열심히 해가지고 벌어가지고 그것을 독식하지 말고 그것을 어려운 데 나누라는 뜻이에요. 그게 욕심 없는 것, 비우는 것.

 

김봉래 : 그렇죠. 그게 뭐 불교의 지혜죠.

 

혜총스님 : 사실 불교의 수행도 비우라는 말은 탐진치 삼독을 비우라. 다시 말해서 오욕락에 꽉 차 있는 마음을 비우면 본래 청정한 자리가 나온다, 그게 부처이기 때문에 그런 행동으로 하라는 뜻에서 무소유가 나온 겁니다.

 

김봉래 : 그렇죠. 그게 이제 사회의 실천 강령으로 실천되고 했던 것이 맑고향기롭게인데, 전국 어디를 가도 사실 맑고향기롭게 스티커가 반갑게 맞아주고 지금도 뭐 어느 사찰에 가보면 그 때 20년 전 25년 전에 붙였던 스티커가 지금도 남아 있는 곳이 있어요.

 

혜총스님 : 있어요. 있어요. 사실 법정 큰스님이 제일 처음에 봉은사에 계시면서 사실 집필한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나도 그 때 갔었고, 영암스님 계시고 할 때. 74년도에 하다가 74년도에 송광사 불일암에 가셔서 74년도에 <영혼의 모음>이라고 해서 만드셨어요. 그 책을 나한테 주시더라고 첫 번째. 그런데 그것이 인기가 없으니까 제목을 ‘영혼의 모음’을 갖다가 ‘무소유’로 바꿔 가지고 그게 히트가 된 거야. 그 때부터 법정스님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죠.

 

김봉래 : 그러니까요. 우리 혜총스님도 그 동안에 여러 권의 책을 내셨습니다. <꽃도 너를 사랑하느냐>, <새벽같이 깨어 있으라>, <공양 올리는 마음>, <아미타경 강설> 이렇게 하셨는데, 혹시 더 뭐 출간하실 계획이 없으신가요.

 

혜총스님 : 있지요. 제가 지금 책을 한 열 댓권 냈는데, 책을 많이 만들었는데, 지금도 불교신문에 토요일마다 나오는 ‘불보살은 어디서 오셨는가’ 하는 것을 지금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산에서 부산여성신문이라고 있습니다. 거기에 칼럼을 지금 집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산문인을 위해 가지고 실상문학상 이사장을 한 20여 년간 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여전히 포교와 수행에 전념하고 계신 우리 혜총스님이십니다. 자. 우리 BBS 불교방송도 ‘깨침의 소리 나누는 기쁨’으로 개국해서 언 30주년이 되었거든요. 저희 불교방송 같은 매체에도 혹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계실까요.

 

혜총스님 : 불교방송 개국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역시 국민의 깨침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불교는 깨침의 종교이기 때문에 그것을 방송에서 앞장서서 해주시니까 고맙고 후원을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잘 하고 계시는데, 후원이 부족한데, 그래도 만공회라는 것을 결성해서 전국에 있는 불자들이 도와주시니까는 고맙습니다. 만공회 회원뿐 아니라 온 국민, 불자가 일심동체가 되어서 불교방송이 깨침의 소리를 포교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지금 열심히 동참하고 있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김봉래 : 사실 불교방송이 종교방송이기는 하지만 지금 코로나 사태가 저희한테 가르쳐주는 것은 그런 어떤 종교나 사상이나 이념을 떠나서 모든 것을 떠나서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바로 보여주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코로나 사태의 전과 후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이런 생각도 해보고 또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분도 계신데 스님께서는 좀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혜총스님 : 정말 깨달아야 됩니다. 불교방송을 통해서 정말로 마음을 깨달아야 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 한 방울에 2,600년 전에 물 한 방울에 9억 마리의 생명체가 있다고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럼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그러니까 그 생명체가 얼마나 가지각색으로 많습니까. 상생의 원리로써 들여다봐야 되고 바이러스까지도 우리는 생명의 원리로 봐야 됩니다. 사람의 욕심에 의해 몸에 좋다고 하니까 박쥐도 막 잡아먹고 뱀도 막 잡아먹고 이래서 결론적으로 그 병균이 퍼지게 된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먹는 것도 간소하게 먹으면서 깨끗하게 먹어야 되지 몸에 좋다 해서 많은 것을 먹게 되면 결론적으로 병밖에 안 옵니다. 옛날 유럽을 휩쓴 흑사병이라든지 또는 메르스라든지 에볼라라든지 이런 게 다 그런 데서 온 겁니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병균이 그렇게 된 거다. 그래서 우리 마음을 청정히 하고 마을을 청정히 하고 몸을 청정히 하고 물질을 청정히 해서 가는 것만이 서로 상생으로 살 수 있는 극락세계다, 이것을 우리는 깨우쳐 줘야 합니다, 불교방송에서. 그래서 국민 전체가 다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서로서로 상생하는 원리를 찾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김봉래 : 네. 오늘 혜총스님 이렇게 법정 큰스님과의 인연으로 모셨는데 이러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다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끝으로 짤막하게 마무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혜총스님 : 법정스님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법정스님의 삶을 따라가야 됩니다. 그러면 맑고 향기롭게, 무소유로 살면서도 행복한 세상을 너나없이 누리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최종 열반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정스님이 그립습니다.

 

김봉래 : 네. 스님 오늘 아주 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혜총스님 : 감사합니다.

 

김봉래 : 지금까지 부산 감로사 주지 혜총스님 모시고 말씀 나눴습니다.

 

네. 여러분 혜총스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혜총스님이 하신 법정스님 이야기를 들으면서요, 인연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우리는 사람과 자연, 모든 인연 관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인연을 소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마저도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중요시하는 존중하는 그런 세계관이 필요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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