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만개한 국회 윤중로

  여의도 윤중로에 벚꽃비가 내리지만 이를 맞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매년 열렸던 벚꽃 축제는 취소됐다. 둘레길 곳곳을 철제 바리케이드가 막고 있다. 대신 국회 정문 근처엔 ‘봄꽃 거리두기’ 캠페인 부스가 생겼다. 휴일에도 구청직원들이 나와 타인과의 안전거리 ‘2m'를 지키자고 홍보한다. 국회 안으로 들어와도 안전거리는 유효하다. 총선 후보자들은 악수 대신 주먹과 팔꿈치를 부딪친다. 비대면 선거운동, 온라인 유세가 주를 이루면서 언제나 선거철이면 느꼈던 떠들썩함도 사라졌다.

  우리의 삶을 비롯해 정치권의 풍경까지 바꿔놓은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떤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봄날의 나른한 공기와 함께 떠오른 장면에서 나는 여전히 국회 안에 있다. 엘리베이터 7층 버튼을 누르고 올라갔던 의안과 앞 복도. 벌겋게 달아오른 사람들의 얼굴, 땀에 절은 와이셔츠에서는 하얀 김같은 게 뿜어져 나왔다. 어깨와 어깨를 부딪친 채로 여(與)는 야(野)를, 야는 여를 밀어내고 있었다. 0m의 거리에서 살을 맞대고 비비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격동 가운데 나 역시 약간의 흥분을 느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가까울 수 있었을까.

  그게 1년 전이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난해 연말 국회를 통과했다. 그동안 서로가 밀고당겼던 날들이 여야의 '줄탁동시'라고 여겼던 건 순진한 착각이었다. 많은 기대를 했지만 돌아온 건 실망감 뿐이다. 지역구 대부분은 민주당과 통합당의 1대1 대결이 치러진다. 제 3당의 존재는 희미하다.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 투표 역시 '여야 위성비례정당'이 만들어지면서 '정치적 양극화'가 불가피해졌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진영간 선명성만 남았다. "소수 정당의 진출을 돕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지금껏 그늘에 가렸던 다양한 색들이 조금 더 선연하게 불거져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썼던 지난 취재수첩이 부끄럽다.

  비례의석 47석, 그 중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적용을 받는 '캡'을 씌워 마련한 '까치밥' 30석은 거대 양당의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다수에 자리를 내줬어야 했던 소수자들, 권력도 금력도 없는 사람들, 희생이 당연했던 이들을 위한 몫이었다. 하지만 제도 설계의 실패로 그 몫을 지켜내지 못했다. 선관위는 위성정당의 창당을 가로막지 않았다. 그러자 선거판은 '의자뺏기' 싸움이 됐다. 유권자들의 선택이라는 마지막 보루가 남아있지만 안타깝게도 대결의 정치는 비례성을 무너뜨려 정치개혁을 무색하게 했다. 대의(大義)를 잃은 대의민주주의,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도 "뽑을 놈 없다"는 이웃들의 한숨소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건 만연하고 있는 '정치적 거리두기' 때문일까.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하지만 올해, 윤중로에서처럼 그 꽃비를 맞긴 글렀다는 생각이 든다.

저작권자 © BBS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