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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 80주기...다시 조명되는 용성 대종사
권송희 기자 | 승인 2020.03.18 14:15

 

< 앵커 >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이자 불교 개혁 운동을 펼쳤던 대표적인 선지식 용성 스님이 원적에 든지 오늘로 80년이 됐습니다.

불교의 대중화와 현대화에 앞장섰던 용성스님의 생전 가르침과 사상은 갈등과 혼란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정신이자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권송희 기자입니다.

 

< 기자 >

3.1운동 민족대표로 참여한 스님 가운데 한 명인 백용성 대종사.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주도하며, 불교혁신 운동을 이끈 선각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성스님은 독립운동 역사와 한국 불교계에 미친 영향에 비해 생애와 업적이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덜 알려져 왔습니다.

도문스님 (장수 죽림정사 조실·조계종 명예원로의원): “대각회를 창설했을때 그때 우리 어머님이 차로 모셔와서 동헌 조사님께 바쳤거든요. 자료가 다 없어져버리고, 그 자료를 모아서 동헌 조사님이 보관하고 있다가 세상 떠나면서 "도문아 네가 해라"..”

1964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한 용성스님은 일찍이 16살에 해인사에서 출가해, 23살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후 일제에 맞서 한국 불교의 정통성을 수호하기 위한 임제종 운동을 전개했고, 서울 대각사를 지어 ‘내가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자’는 대각사상을 바탕으로 불교의 대중화를 선도했습니다.

동봉스님 (서울 대각사 전 주지): “용성스님도 여기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또 삼장역회(三藏譯會)를 통해서 역경 사업을 하셨던 그런 도량이 대각사입니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만해스님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고,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불교의 현대화 필요성을 절감한 스님은 출옥한 뒤, 한자로 된 금강경을 누구나 쉽게 읽으며 새길 수 있도록 한글 번역했고, 찬불가를 제작하는 등 대중 포교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왜색으로 물든 불교의 계율을 바로잡는데도 전력했습니다.

혜총스님 (조계종 전 포교원장): “그야말로 조어장부(調御丈夫)다. 모든 삶을 일깨워주고 그 일깨운 상태에서 모든 대중을 몰고 가는 또는 이끌어 가는 이 시대의 스승이 아니신가.”

스님이 세상을 떠난 지도 오늘로 꼭 80년이 지났습니다.

문도회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 맞은 올해 코로나 19의 여파로 용성스님 80주기 추모 법회를 대중들과 함께 하지 않는 대신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 이사장 법륜스님과 장영수 전북 장수군수 등이 참여한 가운데 간소하게 다례재를 봉행했습니다.

이와함께 당초 오늘(18일)로 예정됐던 기념 심포지엄은 오는 5월 1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역사의 굴곡진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불교 정화에 앞장선 용성스님의 가르침과 사상은 갈등과 혼란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시대 정신이자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BBS 뉴스 권송희입니다.

(영상 편집=남창오 기자)

 

 

 

 

권송희 기자  songhee.kwon@bbs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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