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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변택주 작가

방송 : 2020년 3월 8일(일요일) 저녁 6시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 진행을 맡은 김봉래입니다. 최근 한 아르바이트 포털이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법정스님이 가장 존경하는 불교계 인물로 꼽혔다고 합니다. 평생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법정스님의 열반 10주기를 맞아서 스님의 삶과 가르침을 되새기는 다양한 행사들이 마련되고 있는데요. 10주기 추모법회가 봉행이 되었고, 사진전이 봉행이 되었고, 음악회도 봉행될 예정입니다. 더불어 불교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무소유>를 비롯해서 법정스님의 주옥같은 글들을 모은 추모집과 수필집 등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법정스님은 평생 쏟아놓은 말빚을 갚고자 한다면서 더 이상 당신 이름으로 된 출판을 원치 않는다 이렇게 하셨지만 10주기를 계기로 해서 스님의 가르침에 대해 깊은 사색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 이 시간에는요, 법정스님과의 깊은 인연으로 스님의 가르침을 선양하는 데 힘써온 분이시죠. 변택주 작가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에 찾아 뵙겠습니다.

 

김봉래 : 예. 앞서 말씀드린 대로 변택주 작가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오늘은 열반 10주기를 맞은 법정스님과 관련된 이야기 집중 나누기 위해서 모셨는데요. 안녕하세요.

 

변택주 : 네. 반갑습니다.

 

김봉래 : 자. 우리 법정 스님이 열반하신 것이 양력으로는 3월 11일이죠.

 

변택주 : 예. 음력으로 1월 26일이고요.

 

김봉래 : 음력으로는 1월 26일. 그래서 스님과 관련한 이야기를 집중해보겠는데, 먼저 우리 법정 큰스님과의 인연 간단히 좀 소개해주실까요.

 

변택주 : 저는 뭐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글로, 책으로 스님을 먼저 뵈었고요. 그 뒤로는 1997년 길상사가 문을 열고 난 이듬해 봄 법회에 아내가 가보고 싶다고 해서, 찾아가서 뵙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 12년 동안 법정스님 법석 사회를 맡아왔죠. 그런데 이제 인연 가운데 좀 주목할 만한 것이라면, 혹시 국장님은 법정스님이 신도들과 맞절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김봉래 : 잘 못 들어봤는데요.

 

변택주 : 네. 2000년 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청법가를 부르고 나면 스님은 법상에 올라가셔야 하잖아요. 그런데 안 올라가시고 합창하고 눈감은 채 서 계신 거예요. 진행자인 저로서는 느닷없는 일에 굉장히 놀랐죠. 그래서 어쩐 일이시지, 어쩐 일이시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뭔가 갸웃거리다가 딱 생각난 게 그 전 2월 법회 때 당신이 덕이 그렇게 높지도 않은데 청법가를 듣는 것을 비롯해서 절을 받는 게 민망스럽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안 올라가시는 것 같은데 진행자는 이게 어떻게 진행을 해야 될지 굉장히 난감했어요. 하는 수 없이 대중을 세워놓을 수는 없으니까. 일단 앉으시겠습니다, 앉은 다음 입정에 들게 했죠. 입정 뭐 죽비 3성에 시작하고 죽비 3성이면 마치는 거니까 금세 끝나잖아요. 끝난 다음에 스님이 일어나서 법상으로 가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딴 사람들은 못 느꼈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 짧은 시간이 굉장히 길었고 그 다음에 스승은 그럼 절을 안 받으시겠다는 건데, 대중은 스님에게 절을 해야 되는 상황, 그러면 진행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굉장히 난처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법정스님 법회 때 보통 1,500분에서 3,000분 정도가 오시는데요. 법당이 좁았기 때문에 그 당시에도.

 

김봉래 : 그렇죠. 작죠.

 

변택주 : 꽉 들어차고 바깥에도 있으니까, 대중이 많아 비좁은 관계로 앉은 자리에서 합장 반배로 삼배를 대신 하겠다 이렇게 했어요. 대중이 삼배할 때 스님도 합장하시고 똑같이 맞절을 하셨어요. 그 뒤로 법정스님 법회 때는 한결 같이 그렇게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마 처음부터 그랬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런 게 아니시고 2000년 봄부터 그렇게 바뀌었죠.

 

김봉래 : 그게 스님의 어떤 또 내면의 큰 어떤 변화하고도 연관이 될 것 같아요, 스님께서. 그런데 그렇게 지금까지 법정스님을 돌아볼 수 있는 책들을 계속해서 내고 있거든요. 뭐 <법정스님 숨결>, <법정 나를 물들이다>, <달 같은 해>, 그리고 최근에 <법정스님 눈길> 책을 내셨거든요. 이게 어떤 인연입니까.

 

변택주 : 2006년에 스승 잠언집,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가 나왔습니다. 그것을 뭐 사서 여러분한테 드리면서 선배한테도 한 권 드렸는데, 그 선배가 강원도에 홀로 사는 스님이 우리하고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런 책을 자꾸 주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당혹스러웠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아우르는 어른인데 무슨 소리야 싶었죠. 그런데 시간을 두고 돌이켜보니, 아 스승을 잘 알지 못한다면 저렇게 말씀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스님의 따뜻한 면 이런 것을 좀 알려야겠다 싶어가지고 글을 쓰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제가 쉰 살이 넘도록 일기 한 번 써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그 뒤로 5년 동안 글쓰기 연습을 해서 펴낸 것이 <숨결>이었죠. 그랬어도 그것뿐이었을 텐데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스님이 입적하시면서 절판하라고 하셨잖아요. 그 유언을 우리 맑고향기롭게 임원들이 발표를 했는데요. 제가 발표하고 나오면서 바로 맑고향기롭게 이사를 사임했습니다. 왜냐하면 절판하게 되면 수십 년 동안 스님의 글을 읽을 수가 없잖아요, 사람들이 책을. 그러면 스승의 사상이 단절될 게 뻔하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태 동안을 스승하고 관련 있는 한 40여 분을 찾아다니면서 그 분들을 안에 담긴 스승의 사상, 그리고 그 분들의 삶 이런 것들을 가다듬어서 그려낸 게 <법정 나를 물들이다>, 그리고 <가슴이 부른 만남>이었죠. 그리고 나서 이제 <달 같은 해>는 그 두 권에 담긴 이야기 중에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추려서 엮은 책이고요. 이번에 펴낸 <법정스님의 눈길>은 스님의 가르침인 사랑을 바탕에 두고 현대를 사는 우리가 새겨봐야 할 것을 좀 명상해서 드러낸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이번 <법정스님 눈길>은 법정스님의 어떤 일화와 언행이 함축되어서 많이 들어있는데, 그 중에서 사랑이다 이런 이야기죠. 우리는 흔히 법정스님 그러면 무소유 이렇게 일치가 되어 있는데, 특별히 이번 책에서는 사랑에 주목이 되어 있다 이런 말씀인가요.

 

변택주 : 제가 이제 스님 책을 읽거나 말씀 들은 것을 정리하면서 보니까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자비와 사랑이었어요. 아마 부처님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그리고 또 그랬거나 아니면 중국을 거쳐서 불교가 들어오지 않고 직접 들어왔다고 한다면 아마도 자비라는 말보다는 사랑이라는 말을 더 우리가 쓰게 되지 않았을까 싶고, 실제로 스님께서는 자비보다는 사랑이라는 낱말을 훨씬 많이 쓰셨어요.

 

김봉래 : 아. 그럴까요. 보통 자비희사(慈悲喜捨)라고 하면 보통 자와 비가 한꺼번에 되어 있는 게 불교의 특징인데 스님께서는 오히려 사랑 쪽에 무게를 두셨다. 그래서 법정스님이 어떤 큰 그림을 사랑으로 그리셨고, 무소유는 그 가운데 하나다 이런 이야기가 쓰여 있더라고요.

 

변택주 : 그 일환 가운데 하나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김봉래 : 그러니까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이 결국은 커다란 의미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변택주 : 그렇죠.

 

김봉래 : 저는 사실 법정스님을 대학 시절에 1983년도 송광사 수련대회 때 수련대회를 하고 그 중에 이제 암자순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처음 뵈었는데 그때도 뜨거운 여름인데도 방문객들이 줄을 잇고 스님께서 나와 가지고 이렇게 잠시 대중들과 이야기하는 그런 것을 지금도 기억을 하는데, 어떻게 보면 스님께서는 글로써 수행을 하신 분이 아닌가, 단순한 작가가 아니라 이런 생각이 좀 들거든요.

 

변택주 : 네. 국장님이 스님하고 원판 대조는 훨씬 먼저 하셨네요. 선배이신데요. 저는 이제 조금 전에 국장님 말씀하신 것처럼 글로 풀어내신 것을 수행이라고 생각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스님은 배운 것을 세상에 돌리지 않으면 제구실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일깨우셨거든요. 그러니까 개체에서 전체로 나가는 것이 수행이다.

 

김봉래 : 아. 개체에서 전체로 나가는 것이.

 

변택주 : 네. 그러니까 마음은 닦아야 한다고 하면 굉장히 관념으로 놀기 쉬운데, 마음을 써야 닦인다 이렇게 이야기하시면서 수행은 거듭 실천해가면서 닦아내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리고 깨달음을 얻으려고 수행한다고 생각하지마라, 굳이 이야기하자면 깨달음은 보름달처럼 본디 가진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죠. 그러니까 가장 많이 말씀하신 게 사랑과 실천이셨어요. 행하라.

 

김봉래 : 그렇군요.

 

변택주 : 제가 스승 말씀 바탕에서 불교를 짚는다면 ‘사랑’과 ‘하다’ 그러니까 ‘사랑하다’라고 정의하는 게 맞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김봉래 : 뭐 명사라기보다 동사다.

 

변택주 : 부처님은 동사다 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봉래 : 그런 법정 스님의 그런 수행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어떤 일화 중에 우리 작가님께 가슴에 남아 있는 그런 것은 어떤 게 있을까요.

 

변택주 :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스승이 맑고향기롭게 창립법회 때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명상과 사랑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따뜻한 눈길, 그리고 끝없는 관심이라고 말씀하시거든요.

 

김봉래 : 아. 따뜻한 눈길, 끊임없는 관심.

 

변택주 : 끝없는 관심.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명상입니다. 여기서 이제 제가 책을 한 단락 읽어드리고 싶은데요. “때를 정해놓고 명상 시간을 가져라. 우리가 아무 잡념 없이 깊은 명상에 잠겨있을 그 때 우리는 부처다. 우리 안의 불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명상에 깊이 들수록 의문이 가라앉는다. 안으로 돌이켜보면 남에게 물을 일이 하나도 없다. 진정한 스승은 밖에 있지 않고 우리 마음 안에 있다. 바깥에 있는 스승은 우리 안에 있는 스승을 만나도록 길을 가리킬 뿐이다. 성인의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종교 이론은 공허하다. 내게 있어 진정한 앎이 될 수 없다. 남한테 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남이 겪고 말해놓은 것을 가지고 내가 아는 체할 뿐이다. 참다운 앎이란 내가 직접 겪은 것, 이것만이 나를 형성한다.”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이게 이제 수행자로서의 아주 저는 진면목이 드러났다고 보여집니다.

 

김봉래 : 네. 그래서 말씀하셨듯이 이제 사랑하기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보면 넓게 확산시켜나가는 것이 바로 맑고향기롭게 운동이 아닌가. 94년도에 시작이 된 것으로 아는데요. 보면 덕목들도 있어요.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그 속에서 우리 변택주 작가님께서 해 오셨던 일들, 그 부분이 조금 중요할 것 같아요.

 

변택주 : 이제 저는 맑고향기롭게에서 크게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청학스님이 종단살림을 맡아서 떠나시면서 이 자리가 비어서 제가 이 자리를 메웠을 뿐이고요. 한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길상사 법회 때 불자들에게 맑고향기롭게 행동을 하는 것이 부처가 되고 보살이 되는 길이라고 소개했을 뿐이고요. 또는 제가 경영하는 회사의 매출을 떼어서 이웃들과 나눴다든지 이사가 된 다음에는 맑고 향기로운 살림살이를 하는 이사회 참석을 했을 뿐이고요. 다만 삶터를 맑고 향기롭게 해야 된다는 생각에서 작게나마 제가 사는 마을이나 제가 일하는 일터를 맑고 향기롭게 애쓰고 있죠. 그 가운데서 이제 2030년 우리 아이 어떤 세상에서 살도록 하고 싶은가 하는 화두를 들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면서 평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맑고향기롭게 살이 가운데 한 걸음이라고 할 수 있죠.

 

김봉래 : 아. 그렇군요. 맑고향기롭게의 덕목을 보면 결국은 심청정 국토청정(心淸淨 國土淸淨), 우리들의 마음이 맑으면 세상도 맑아진다 이런 것들이 구체적인 어떤 덕목, 실천요강으로 들어와 있던 것 같아요. 욕심을 줄이며 만족하며 삽시다라든가 화내지 말고 웃으며 삽시다, 뭐 나누어 주며 삽시다, 뭐 다양하게 많은데, 이 운동과 관련해서 저희가 이 시간에도 윤청광 선생님을 모시고 방송을 한 바가 있는데, 그 때의 배경 이야기를 좀 들으신 게 있으신가요.

 

변택주 : 아. 그게 1993년에 독립기념관이나 청와대 연못에서 연꽃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그릇된 충성심이 벌인 일들인데, 스승이 이것을 보고 연못에 연꽃이 없더라하는 글을 쓰셨어요.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윤청광 선생이나 정채봉 작가, 청학스님 같은 분들을 몇몇 분을 법련사 뒷방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중이 밥값이나 하고 가야겠다 하시면서 여섯 글자를 내놓으셨어요. 맑고 향기롭게. 이것을 이제 윤청광 선생이 마음과 세상, 자연으로 풀어내서 실천 덕목을 세 가지씩 담아 낸 거죠. 그런데 시민모임 맑고향기롭게 상징이 여덟 잎이 달린 연꽃입니다. 여덟 잎은 팔정도를 가리키는 거죠. 바르게 보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 옹근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이 말씀을 따라서 저마다 제가 사는 그 자리에서 맑고, 자기가 있는 삶터 일터를 맑고 향기롭게 만들자, 이렇게 하면 그대로 부처와 보살살이가 된다. 이른바 요즘에 종단에서도 했던 ‘붓다로 살자’ 운동과 결을 같이 하는 운동을 이미 그 이전에 펼쳐내셨다고 보면 됩니다.

 

김봉래 : 그렇죠. 그래서 지금도 지방 곳곳에 가면 그 때 배부했던 스티커가 고색창연하게 우리 마음을 정말 맑고 향기롭게 해주거든요. 저도 뭉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방에 내려가서. 그런데 이러한 맑고향기롭게의 실천 덕목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꾸준히 실천해야 될 일인데, 이것이 어떤 우리 불교계뿐 아니라 사실은 전 종교계, 나아가서 우리나라, 전 세계가 함께 실천해야 될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좀 들었거든요.

 

변택주 : 그래서 맑고향기롭게는 회원들 가운데 대개 종교단체라고 이해하고 있지만, 요즘에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임원으로 있을 때만해도 다른 종교인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리고 맑고향기롭게 활동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일을 하죠. 주로 세상 부분에서는 결식 아동이나 독거 어르신들에게 반찬을 해다 드린다든가 김장을 담가드리거나, 그런가 하면 다른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밥차 같은데서 밥을 퍼드리거나 설거지를 하는 일이라든지 또는 양로원이나 장애시설, 종교단체를 따지지 않고 가서 밭을 가꾸어 드린다든지 목욕을 시켜주거나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또는 개개인은 목욕탕을 하는 분은, 지금은 그 목욕탕은 문을 닫았던데, 쉬는 날이면 걸인들에게 문을 열어서 목욕을 할 수 있도록 하게 해준다든가, 반찬 배달은 요구르트나 화장품 아줌마, 택시기사 같은 어른들이 해주셨고요. 주로 이제 삶 속에서 소소하지만 빠뜨리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고, 마음 부분에서는 뭐 여기 올라오면서 보니까 이 다보빌딩에도 명상 모임 같은 게 있어서 이 건물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명상 프로그램을 오래도록 운영을 해왔고, 또 자연 부분에서는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니까 한 동안은 관악산을 비롯한 산에 가서 쓰레기를 캐내오는, 그러니까 벤치나 이런 곳을 보면 라면봉지 같은 게 있거나 해요. 잡아당겨 보면, 캐내면, 아마 그걸 싣고 내려오기 힘드니까 묻어버리고 거기에 벤치를 했는지 한 1톤씩 나오면 학생들이 모여서 용달 같은 것을 가지고 가서 실어 내려온다든가 또는 개개인들은 산행을 할 때마다 비닐봉지하고 집게를 배낭에 넣어가지고 가서 걷어온다든가 이런 일들. 그리고는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아나바다 운동 있잖아요. 이런 것들도 앞서서 하기는 했죠.

 

김봉래 : 그래요. 지금 뭐 코로나19 때문에 걱정이 많지만, 개인 위생 잘하는 것이 곧 사회 위생 잘하는 것과 직결되는 거거든요. 자리와 이타가 나눠져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데 아까 말씀하셨듯이 법정스님의 맑고향기롭게 모임에 그렇게 꼭 불교인이 아니어도 참여자가 많았다는 건데, 사실 저희 불교방송 같은 경우에도 만공회에 다른 종교나 무종교인들도 많이 후원을 해주시고 있거든요. 그래서 부처님의 말씀이나 가르침이라는 것이 뭔가 울림이 있다는 거죠, 보편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데, 꼬마평화도서관 운동도 사실은 그런 면에서 직결되는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하셨듯이 2030년이면 우리 아이들이 어떤 세상에 살도록 할 것인가 하는 그런 화두를 그 때 당시에 마음에 새겼다 하시는 이야기인데요.

 

변택주 : 네. 그러니까 일단 우리가 그 꼬마평화도서관 운동이라는 게 처음에 2013년에 윤구병 선생이 한반도가 평화로우려면 연방제를 하면서 중립화를 이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셔서 모임을 불한당이라고 해서 불경을 한국말로 풀어내는 모임에 있는 이들을 주축으로 해서 갖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한 달에 두 번씩 만나서 평화책을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중립이 무엇인지 평화가 뭔지 관념으로 와 닿지 실제로 실감이 안 났어요. 그래서 그렇게 한 달에 두 번씩 평화책을 꾸준히 읽다가 보니까 속에서 평화라는 게 뭔지 샘솟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면 우리가 나라 곳곳에서 도서관을, 평화책이 있는 도서관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이제 구상을 했는데, 그게 뭐 작은 도서관 하나 꾸려도 1억은 들어가야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것은 택도 없는 일이다 체념을 하다가 제가 아 그럴 것 없이 우리가 어차피 뭘 되살려 쓰는 것이니까 버려지는 책꽂이 하나, 버려지는 작은 냉장고에다가 평화책을 꽂아 놓고 도서관을 개관해서 누구든지 거기서 책을 빌려다 볼 수 있게 하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아이디어를 내서 이제 2014년 12월 9일에 보리출판사 1층에 북카페가 있습니다, 거기에 처음으로 1호점이 꼬마평화도서관이 열리고 2호점은 14일 날 아마 국장님도 아실지 모르겠는데 불자가 운영하는 채식당 마지라는 곳, 지금은 이제 서촌에 있는데 전에 방배동에 있을 때 2호점을 열었어요. 그래서 꼬마평화도서관을 여는 일들을 해서 지난해 말까지 36개를 열었습니다. 그게 맑고향기롭게 일환이고 붓다로 살자 일환이기도 하죠.

 

김봉래 : 그런데 사실은 제가 지방에도 가보면 또 서울수도권도 그렇지만 맑고향기롭게가 시작된 지가 25년 이렇게 넘어가는데 예전보다는 사실은 좀 위축된 것 같아요. 그 원인이 뭐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변택주 : 일은 거의 비슷한데 전에는 ‘맑고향기롭게’ 스티커를 자동차 뒤에 붙였잖아요. 그래서 이게 움직이는 광고판이니까 한 곳에 있는 것 하고 계속 차에 붙여 움직이니까 맑고향기롭게가 눈에 많이 띄었어요. 그런데 스티커 붙이는 게 유행이 천주교에서 ‘내 탓이오’ 붙이다가 수그러들고 지금 없는 것처럼 수그러들다보니 활동이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 사실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지역 곳곳에서 활동을 하고, 그 다음에 맑고향기롭게는 중요한 것은 제 삶터에서 그 곳을, 그러니까 부처님 계신 곳이 어딘가 네가 있는 지금 그 자리, 그 자리를 맑고 향기롭게 하면 그곳에 부처님이 오신다는 측면으로 해석하면 되기 때문에 그러니까 드러내놓고 하지 않아서 이게 맑고 향기롭게 하지 않아서 그렇지 곳곳에서 그런 일들이 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봉래 : 맞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렸던 부분은 제가 경남에 근무할 때 경남 맑고향기롭게 본부가 저희 불교방송 경남본부와 같은 건물을 쓰고 있었습니다.

 

변택주 : 아. 그랬군요.

 

김봉래 : 그래서 교류도 있고 했었는데, 상대적으로 예전보다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변택주 :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스승님이 안 계시고 나서 그 다음에 자생해야 되잖아요. 그 전에는 그 어른의 빛을 받아서 되어왔지만.

 

김봉래 : 덕분에.

 

변택주 : 이제는 스스로가 빛을 내야 하니까, 그 동안에 숙성 기간이 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봉래 : 맞습니다. 자립이 안 되면 안 되는 거죠. 어쨌든. 그런데 이제 선생님께서는 지난해 가을이던가요, 불교를 알기 쉽게 소개한 책이 있어요. <벼리는 불교가 궁금해> 그런 책도 내시고, 뭐 그것 가지고 10대 아이들과 불교를 이야기하는 북콘서트도 갖고 했는데, 벼리는 불교가 궁금해 좀 어떻습니까, 반응이.

 

변택주 : 뭐. 책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선생님들의 모임이라고 해서 책따세라는 곳에서도 이제 좋은 책이라고 청소년들에게 권하는 책이어서, 아주 뜨겁게 반응이 있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나가는 것 같고요.

 

김봉래 : 꾸준하게 인기가 있군요.

 

변택주 : 지난해 말에 2쇄, 요즘에 출판계가 어려워서 두 번 찍기가 어렵다는 데 2쇄는 찍었습니다.

 

김봉래 : 어쨌든 이게 지금 방송 또 매체 이런 것들이 예전처럼 큰 영향을 갖기가 사실 어려운 것이 여기도 보면 굉장히 독립군들이 많거든요. 유튜버들도 많고, 해서 예전에 어떤 권위로 인기를 얻고 하는 그런 시절은 지났고 그래서 정말 어떤 내용으로 승부를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우리 변택주 작가님의 앞으로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요. 앞으로 어떤 계획들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해요.

 

변택주 : 저는 지금 이제 조금 전에 예를 들면 방송하면 커다란 파워를 가졌었는데, 지금 그 힘이 분산되고 있다, 유튜버처럼, 이게 저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보는데요. 우리가 대승불교 하면 보통 큰 탈 것, 이것을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큰 탈 것이라고 하는 게 커다란 비행기나 항공모함 같은 걸로 오해해서는 안 되겠다. 손수레 같은 것들이 많이 모이면 그러니까 반딧불이 이렇게 다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처음에 반짝반짝 하는 게 엇갈려서 반짝입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지나면 공명하면서 번쩍번쩍 하면서 커다란 빛을 나타내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이제 누구나 너나들이 내가 보살로 작지만 그런 것을 행하는 것이 매우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제가 일단 바라보는 것도 한 걸음 한 걸음 작은 스텝이라도 내디디는 것, 그러니까 맑고향기롭게가 이제 길상사가 세워지고 나서 성북구청에서 복지자금을 맑고향기롭게에 해마다 1,000여만 원씩 주겠다고 제안이 온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법정스님한테 이것을 여쭸어요. 그러니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단체도 많을 텐데 우리는 한 푼이라도 우리 주머니에서 나온 돈, 우리 힘이나 몸을 써서 하는 일로 세상을 아우르면 어떻겠느냐 하고 되물으셨어요. 그러니까 법정스님에게 중요한 건 이렇게 해라고 하신 적이 없으세요. 그리고 물으시고 거기에 반대하면 당신이 물러나시고, 물론 이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여서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 스스로가 빛을 내라는 말씀이구나 이렇게 이제 소화를 했었는데요. 맑고향기롭게는 회비를 내지 않는 회원들이 적지 않아요. 그러니까 몸으로만 봉사해도 회원이 되는 거죠. 비영리 단체들이 회비를 내야만 회원으로 여기잖아요.

 

김봉래 : 그렇죠. 보통 회비 내는 게 기본이죠.

 

변택주 : 꼬마평화도서관에도 회비 안 내는 회원이 있어요. 그것이 이제 맑고향기롭게 법정 스님이 남기신 정신 바탕에서 이어온 거예요.

 

김봉래 : 운영하기가 쉽지 않겠는데요.

 

변택주 : 그렇지만 돈이 아니어도 해야 될 일이 실은 더 많잖아요.

 

김봉래 : 물론이죠.

 

변택주 : <제3의 물결> 쓴 작가가 이 세상에 돈으로 그 당시에 환산되어 있는 게 35억 달러 정도가 전 세계 부가 움직인다고 하는데, 앨빈 토플러, 그런데 그 이가 그 못지않게 돈을 받지 않는 봉사가 사람이 하는 일이 그 못지않게 35억 달러 정도가 있다, 그것이 어머니가 아이들을 똥오줌을 가리게 한다든가, 만약 똥오줌을 가리게 못하면 월스트리트 같은 데가 똥이나 오줌 냄새로 진동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돈으로 하지 않는 것도 가치로 받아들여주는 세상, 이것이 아마 맑고 향기롭게 불국토가 되는 세상이 아닐까.

 

김봉래 : 엘빈 토플러는 뭐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이치를 깨달은 분 같습니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기부가 늘어나고 선진국일수록 자원봉사가 늘어나는데, 이게 꼭 돈으로만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돈 아닌 게 돈이고, 돈이 돈 아니기 때문에 기부와 나눔과 자원봉사는 큰 틀에서 같은 맥락이기 때문에 중요한 게 앞으로 우리 종단의 역할, 불교방송과 같은 매체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은데, 먼저 종단에 혹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변택주 : 저는 종단에는 뭐 특별히 바라는 게 없고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마다 제 자리에서 부처나 보살이 살 수 있도록 우리가 서로 마음을 내야 평화로워진다는 생각인데요. 굳이 말씀을 드려야 한다면 누가 누구를 다스리거나 아울러야 한다는 생각 없이 내남없이 평등한 종단 이런 것을 이루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봉래 : 불교방송 같은 매체에도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변택주 : 불교방송은 5월 1일이면 개국 30주년이시죠.

 

김봉래 : 그렇습니다. 저희 생일을 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변택주 : 정말 고맙습니다. 진짜 서른 해 동안 꾸준히 불교 포교에 앞장 선 불교방송 식구들에게 감사드리고요. 저도 불교방송을 들으면서 불교를 몸에 많이 새겼습니다.

 

김봉래 : 감사합니다.

 

변택주 : 그런데 부탁드리고 싶은 거라면 불교방송과 같은 불교 매체는 재가자들에게 더 문을 크게 열어서 출재가가 어깨동무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품이 더 넓어지다면 지금 불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데 불자가 더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요. 아울러서 이제 좀 쉬운 불교, 어려운 이야기, 한자말 같은 것을 우리말로 풀어서 방송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을 만들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김봉래 : 그렇죠. 쉬운 불교는 방송이 앞장서야 된다 이런 생각이 드는데, 스님께서 직접 찬불가를 작사하셨다 하는 그런 스토리를 <법정스님 눈길>에서 제가 읽었거든요. 그게 ‘관세음의 노래’더라고요. 우리가 늘 부르는 노래가 법정스님이 작사하신지 몰랐어요, 송구스럽고요. 이 책에서 정말 말씀 나눈 것 중에 하나가 “여래는 자비심에서 나온다” 그런 말씀도 제가 또 되새기게 되거든요. 그리고 여름 안거 때, 여름 하안거 때 해제 날 예불 후에는 ‘초발심자경문’을 꼭 읽으셨다 하는 것도 제가 새기거든요. 오늘 법정스님 열반 10주기를 기념하면서 오늘 변택주 선생님 모셨는데, 끝으로 마무리 말씀 하나 부탁드리겠습니다.

 

변택주 : 여래는 자비심에서 온다. 법정스님이 부처님 오신 날에는 꼭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라 부처님이 오시는 날입니다. 그럼 부처님은 어디서 오실까요. 부처님은 자비심에서 오십니다.” 그러면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라”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이것이 바로 저마다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날마다 부처로 살아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서 우리가 조금 짚어볼 것이 부처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말씀이 스스로 빛내어 참다움을 드러내라 이런 이야기이셨는데, 이러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그런데 사실은 저 같은 이는 그렇게 스스로 빛내는 게 안 되거든요. 이런 사람들은 그럼 어떻게 할까요. 달이 빛을 받아서 되쏘아서 은근한 맛을 내듯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덕 높은 어른들이 펼친 뜻을 좀 되받아서 살려내는 일을 겸연쩍어 하지 말고 당당하게 나서서 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제 속에서 나중에는 스스로의 빛이 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나누고 싶습니다.

 

김봉래 : 오늘 아주 귀한 말씀 주신 것 같아요. 스스로 빛을 내지는 못하지만 빛을 받아서 빛을 내다보면 결국은 또 스스로 빛을 내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귀한 말씀 해주셨고요, 오늘 법정 큰 스님의 10주기를 우리가 기념하면서 토론을 했는데 대단히 고맙습니다.

 

변택주 : 고맙습니다.

 

김봉래 : 네. 여러분 변택주 작가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변택주 작가님께서 쓰신 <법정스님 눈길>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스님의 미리 쓰는 유서 가운데 한 내용인데요.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 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가 없다. 다시 출가수행자가 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을 하고 싶다.” 이렇게 쓰고 계십니다. 법정스님의 수행과 포교에 대한 어떤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모두 더욱 정진하는 불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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