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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S 불교방송 정통 시사 대담 프로그램 '뉴스와 사람들'

진행 : 김봉래 BBS 전법후원국장

출연 : 태경스님(조계종 법계위원회 의제실무위원)

방송 : 2020년 3월 1(일요일) 저녁 6시20분(BBS 라디오)

 

김봉래 : 우리 사회 명사들과 현안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BBS 뉴스와 사람들 진행을 맡은 김봉래입니다.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인 한식의 기원이 어디에 있느냐 이렇게 이야기 할 때 바로 불교에서 비롯한다 이렇게들 말하기도 하는데요, 한식에 담긴 불교의 자취를 살펴보는 일은 한식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한식의 세계화를 향하는 정초가 될 것 같습니다. 불교의 화엄학을 전공한 태경스님이 최근 불교 음식학 연구의 기초가 되는 자료들을 묶고 한 권의 책으로 펴냈습니다. <고려 옹기와 청자에 음식을 담다>하는 책 제목인데요, 이 책에서 태경스님은 한식의 기원은 바로 불교 중에서도 특히 고려시대 불교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는 주장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BBS 뉴스와 사람들 오늘 이 시간에는요 불교음식학의 자료가 되는 책을 내신 태경스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잠시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태경스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태경스님 안녕하세요.

 

태경스님 : 예. 안녕하십니까. 태경입니다.

 

김봉래 : 네. 스님께서는 지금 조계종 교육원에서 교육아사리 맡고 계시고, 또 총무원 법계위원회에서는 의제실무위원, 포교원에서 의례실무위원을 맡고 계시고, 또 세종시에서도 무형문화재 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굉장히 많이 바쁘시겠어요.

 

태경스님 : 아닙니다. 그냥 이름만 그렇게 많습니다.

 

김봉래 : 그런데 이번에 특히 <고려 옹기와 청자에 음식을 담다> 이런 책을 내게 되었는데요, 한식의 원형을 찾는 데 있어서 굉장히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닌가 싶은데 먼저 이 책을 내게 된 소연을 간단히 말씀해주실까요

 

태경스님 : 우선 제일 먼저 출가를 하면 저희들이 후원에서 일을 배우고, 공양, 채공 등의 일을 배우고 이런 것부터 시작되고, 법당에 또 잔일들을 배우게 되는데, 거기에 대해서 출가할 때부터 약간의 뭔가 마음에 차지 않는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저희 집이 유학 집안이라 유학적인 뭐 주례 이런 것을 하는, 공자, 맹자 이런 것을 많이 하는 집안인데. 절에 와서 절의 여러 가지 행사들이 많은데, 특히 제사의식을 보면서 우리집과 뭐가 어떻게 다르지 이런 느낌들이 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에게나 거기에 대해서 정확한 답이라든지 뭐 책을 볼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없어서 언젠가는 한 번 정리해보고 싶다. 그런데 마침 포교원에서 의례실무위원을 맡아달라고 해서 특히 염불집이나 이런 것을 많이 보다보니 좀 더 정리해야 되지 않을까, 그리고 우연히 영국에서 나온 책 중에 'Neurogastronomy'라는 책이 있습니다. ‘신경미식학’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그러니까 우리 불교식으로 하면 유식(唯識)에 관한 입장에서 접근하는 방식입니다. 그런 것은 뭐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많은데 우리는 왜 없지, 뭐 이런 것에 대해서 정리하다 자료를 찾고 하면서 좀 정리해보자. 사실은 저희가 특히 불교음식에 대해서 자료가 굉장히 적습니다. 적다보니 그러면 이 방법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라는 것을 가지고 접근하다보니까 특히 조선시대는 그래도 자료가 조금 있는데, 고려 같은 경우나 삼국시대는 자료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영국에서 Gastronomy나 이것 말고 중국 음식사를 정리하는 조셉 니담의 ‘중국문명사’(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시리즈)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일본 사람들은 또 뭐냐 하면 중국식경총서라는 책들을 발간해서 음식에 대한 어떤 문헌적 자료도 제공하고 있는데 한국은 그게 없으니까 한 번 그것을 정리해보자 해서 고려사를 중심으로 한 번 해보는 것 어떤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그런 배경 속에서 이 책이 나왔는데 보시면 먼저 총론이 있죠. 총론이 있고 1부, 2부, 3부 이렇게 구성이 되어 있는데, 각각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좀 주시고 자세한 내용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태경스님 : 일단 우선 저희 음식 배경하고 중국의 음식 배경이 차이가 확연하다는 것을 이해하시면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중국은 어찌됐든 간에 북쪽과 남쪽이 교류하는 그런 시기가 송나라입니다. 북송과 남송시대를 지나면서 음식에 대한 굉장한 변혁이라면 변혁이랄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북쪽은 밀하고 육식, 남쪽은 쌀하고 채식 이 두 개가 만나는 게 이제 송나라인데, 그 송하고 대척점에 있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입니다. 그러니까 고려를 중심으로 하면 중국의 영향과 우리의 것이 비교가 될 수도 있고 해서 그런 입장에서 구성을 했는데요. 구성은 네 파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총론하고 1부, 2부, 3부 이렇게 나누어져 있는데, 총론은 전체적인 총괄을 하는 거고요, 1부는 뭐냐하면 보기 쉽게 자료가 전부 한문이다 보니 그것을 쉽게 풀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으로 조금 설명적인 그런 설명이 되어 있고요, 2부는 송나라하고 고려의 문헌들이고요, 3부는 중국 음식사에서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내용과 불교 경전이나 논서에서 불교음식에서 꼭 봐야 될 그런 내용으로 정리를 해서 이 세 가지를 아울러서 총론에다 좀 쉽게 풀이하려고 했는데, 그것마저도 용어가 어렵고 그래서 굉장히 어렵게 느껴집니다.

 

김봉래 : 네. 먼저 총론 부분에서 스님께서 어떤 말씀을 해주셨는지가 궁금한데요. 총론 부분을 먼저 간단히 하시고 1부, 2부, 3부 이어가겠습니다.

 

태경스님 : 네. 총론에서는 문헌들을 아무리 번역을 잘 한다고 해도 이게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잘 들어오지 않으니까 그 내용들에서 우리 한국 불교가 불교 음식이 눈여겨봐야 될 수 있는 어떤 특징이라고 할까 이런 내용들을 한 7, 8, 9가지를 작은 꼭지로 해서 구성을 했습니다.

 

김봉래 : 네. 아무래도 1부가 불교음식의 기본 이야기를 많이 해주신 것 같아서요.

 

태경스님 : 예. 맞습니다. 일단 불교 이전에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종교를 떠나서 일단 먹는 것과 입는 것입니다.

 

김봉래 : 네. 의식주.

 

태경스님 : 네. 그러니까 이것을 꼭 필요한데 어쨌든 간에 불교음식에서는 그 필요를 넘어서 자비심의 실천이라는 이런 인류애로 발현될 수 있도록 수행이 포함된 이런 음식관이 들어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래서 불교음식론이 궁극적으로 주제를 어떻게 할 거냐는 수행하고 관련이 있습니다. 3부에서 문헌에 그 이야기들을 조금 담아 놓았는데요, 실제적으로 어려운 용어겠지만 식, 먹는 음식이든 행위든 간에 체(體)가 있고 상(相)이 있다. 그러니까 몸체가 있고 모습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잘 알아야지 지금 같이 모든 매체들이 먹방으로 보여주는 그것이 아니라 수행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어떤 그런 단초가 되지 않을까 그런 이야기고요. 또 조금 더 나아간다면, 식과 체를 볼 때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느냐, 먹고 입는 것이 우리가 입속으로 들어가고 하기 때문에 불교음식학에서는 그것을 촉과 미와 향 이 세 가지의 작용으로 나타냅니다. 입하고 그 다음 코에서 들어오는 작용으로 어떤 맛을 자극해서 인간의 뭐라 그럴까요 욕망이라고 할까요, 그것을 자극해서 좀 더 많은 것을 먹어야 되고 좀 더 좋은 것을 먹어야 된다는 그런 것으로 발전하는데, 그것을 일단 저지하는 방법이 촉과 미와 향을 어떻게 자기가 요즘말로 하면 컨트롤 할 수 있을 것이냐 이런 입장입니다.

 

김봉래 : 그렇군요. 서두에서요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시거든요. 우리 밥상의 기원을 어디보다도 고려시대에서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말씀을 해주시거든요.

 

태경스님 : 예. 사실 이것도 굉장히 긴 이야기인데요. 우리나라 역사.문화를 모든 면에서 보면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유교는 도교를 포함한 유교 이렇게 넓게 생각해주시면 좋겠지만, 이 유교를 포함한 불교와의 상호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어떤 자기만의 색깔을 갖추어가는 이중구조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 한복의 예로 간단하게 들자면 신라에서 복식을 개혁하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역사 시간에 배워서 아는 일인데, 이것이 신라를 지나면서 어떻게 이야기가 되냐 하면 중국에서 들어온 그 관복은 예복의 개념으로 되어 있고요, 발전이, 우리가 원래 입던 것은 평상복으로 발전합니다. 그래서 관료들도 집에 오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행정에 나갈 때는 관복을 입고 나가는 것이 예복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두 개가 이중구조를 가지고 발전하는 게 우리 한국인데, 불교음식도 그런 입장에서 보면 그런 이중구조가 존재할 거라는 이야기죠. 이게 조선시대에 여러 가지 음식이라든지 의례를 보면 유교에서 서로 분리하려고 합니다. 그 동안에서는 많이 섞여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가서는 유교는 유교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하고 그 다음에 불교는 불교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음식에서만은 조금 다른 현상이 나타납니다. 뭐냐 하면 불교를 배척한 것이 조선시대이기 때문에 이 조선시대에 그 동안에 남아 있던 불교 의식을 어떻게 이해해서 갈 것이냐. 그런데 그것은 막는다고 해서 사람이 좋은 음식 먹어본 다음에 아 나 이것을 정치이데올로기가 이러니까 안 먹을 거야 그렇게 할 수는 없거든요. 어떤 형태로 바꾸어서 들어가는데, 그것이 조선 왕실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이런 서로 상황에 대면되었으면 대면, 떨어졌으면 떨어졌다, 이런 게 이해가 좀 되어야 불교음식도 바로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김봉래 : 그래서 책에서 보면 책이 결국 신라와 조선을 연결하는 고려시대의 음식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렇게 설명을 하셨더라고요.

 

태경스님 : 그러니까 고려시대에는 어떠했는데 조선시대 때는 이렇게 바뀌어서 불교음식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는 그 면이 규명이 되어야 불교음식도 그러면 이것이 대중하고 어떻게 소화되고 고급 음식은 어떤 것이었고 그 이후에 어떻게 발전했는가, 변형이 되어서 발전했는가라는 모습이 나타난다는 이야기죠.

 

김봉래 : 예. 좀 추상적인 이야기가 되겠습니다만 어쨌든 이 책이 한식이나 사찰음식이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시작이 되었고 변형되는가를 인문학을 바탕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이런 설명도 있어요.

 

태경스님 : 네. 그러니까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두 가지 이런 면들이 서로 상호작용 내지는 대립관계 속에서 이것이 설명되지 않으면 잘못하면 저희는 지형적 입장이라든지 이런데서 볼 때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런 것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바로 한국에서 인도로 연결할 수 있는 어떤 그런 많은 문제점들이 잘못된 오해가 있을 수 있고, 뭐 이런 이야기라는 거죠. 그런 것들이 좀 이해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역에 따라 똑같은 나무라도 달리는 열매가 달라지고 그러니까 그런 문제들이 좀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근데 이런 차이점을 극복하는 모습이 중국에서는 당에서부터 송나라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고려시대까지 이어진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어떻게 이해되고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였나를 알지 못하면 어려워지죠.

 

김봉래 : 조금 이야기가 어려워지는데, 중국불교에서 인도음식이 이해될 때 그 어떤 음식론이라든가 음식관이 어떻게 변형되었는가 이런 부분도 설명하고 계신 것 같아요.

 

태경스님 : 예. 좀 단순하게 생각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달라지고 경전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지니까 대승불교를 만들어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지역이 달라지니까 기후가 달라지고, 기후가 달라지니까 식재료가 달라지고, 식재료가 달라지니까 당연히 조리법이 달라지는 것이죠. 조리법과 식습관이 다르다는 뜻인데, 경전이나 율장에 있는 재료가 지역에 따라 같지 않으면 그래서 비슷한 것으로 대치되고, 없는 경우는 자세히 모르니까 이거다 저거다 하는 논쟁이 일어나고, 그 다음에 주석에 따라서는 학파나 개인의 성향으로 이해가 되는 것이겠죠. 그러니까 풍토와 우리 문화에 맞는 우리 음식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면 유제품과 향채 같은 경우인데, 유제품은 인도에서 그 종류가 아주 다양하고 여러 등급으로 나뉘고, 뭐 경전에서도 최고의 품질의 것을 최고의 공양으로 여기는 그런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중국은 벼농사국이라 유제품을 생산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죠. 유제품 특히 우유를 먹으면 간접살생이라는 이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 향채와 훈채 같은 경우인데, 대부분 비싼 향료에 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종류들은 그런데 인도는 향신료의 나라라고 저희들이 보통 이야기 하는데, 중국도 향신료가 많기는 하지만 대부분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약의 개념이 있어서 성향이 좀 다릅니다. 오신채에 속하는 흥거를 예를 들면 흥거는 기름이나 약용으로 쓰입니다. 그런데 이 흥거가 백합과에 속하는 향신료의 일종이라 조미료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중국에 나지 않는 식물이라 이해도 부족하지만 스님에 따라 견해가 달라졌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신채는 기본적으로 백합과에 속하는 마늘 종류나 냄새가 아주 심하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아주 불쾌감을 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생활을 하게 되면 방해가 되는 식물로 기피하는 것입니다. 향채는 고수인데, 고수는 미나리과에 속하는 방향 식물입니다. 그런데 냄새가 매우 심하기 때문에 이것도 향신료의 일종이고 먹으면 주위사람들에게 아주 불쾌감을 줍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것도 본래 피하는 음식 중에 하나인데, 요즘 주위에 흔한 베트남 쌀국수 집에 가면 쌀국수 집에 가면 이거 당연히 나오고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접시에도 나오고, 또 맛있게 먹는 법도 설명서가 붙어 있고. 뭐 이러니까 이런 문제들이 원래의 의미하고 볼 때 조금 혼란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김봉래 : 네. 그렇군요. 중국 선불교에서 청규를 내면서 인도불교의 음식관을 재해석했다는 그런 말씀도 있거든요. 그리고 그런 불교음식문화를 새로운 음식문화를 발달시키면서 특히 조선시대에는 사찰 가람의 배치까지도 영향을 줬다 이런 연구 결과가 있어서요.

 

태경스님 :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은데요. 인도에서는 출가자는 음식물의 생산이나 저장이나 요리나 소비를 하지 않는 대신에 탁발로 해서 신체를 유지하며 수행을 합니다. 이를 출가자가 일반 사회의 삶을 기피하는 행동으로 해석이 됩니다. 그런데 중국은 인도와는 다르게 지역이 다르고 온도차도 크고 기후도 다양하고, 물론 식생활관도 다르고요. 그래서 중국불교가 그래서 취한 행동이 뭐냐 하면 자급자족을 강조하고 정주생활을 지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요소를 허락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도불교의 주장으로는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음식물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느냐 이러한 생각들이 일어나고, 그래서 저희들이 특히 음식이나 의례의식을 보면 이것을 해결하는 방식이 하루에 할 일을 140원행으로 묶어놓은 화엄경의 정행품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게송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거기 게송과 진언을 만들고 오관계를 넣어서 하나의 의식으로 여러 부분에서 의식으로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그 만들어낸 의식을 발우공양이라는 의식이라고 우리가 부른 거죠.

 

김봉래 : 아니 공동체 생활을 왜 유지를 못합니까. 중국 승가에서요.

 

태경스님 : 일단 저장을 하고 이런 것들이 인도에서는 굉장히 수월하죠. 왜냐하면 사시가 굉장히 고온다습하기 때문에 충분한 음식물로 쓸 수 있는 것들이 구하기도 쉽고, 뭐 특별한 경우는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 중국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겨울에 어떻게 먹고 삽니까. 그러다보니 이것으로는 좀 부족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그 다음에 교리의 해석적인 것도 이것과 결부되어서 조금 다른 해석도 나타나게 되고.

 

김봉래 : 그러니까 공동체 생활을 완전하게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도식의 공동체 생활과는 다른 형태의 삶의 변화가 있다 이런 말씀이시죠.

 

태경스님 : 그렇죠. 그러니까 교리의 재해석되는 부분들이 생겨날 수 있다는 거죠.

 

김봉래 : 네. 가람 배치 이야기를 좀 설명해주시죠.

 

태경스님 : 예. 저희가 일반적으로 역사 시간에 배울 때 가람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쉬운 말로 하겠습니다. 대웅전이 있으면 탑이 앞에 있는 탑이 한 개 있거나 두 개 있거나 이런 형태로 하는 것이 기본적인 형태입니다. 그런데 이 방식을 탈피해서 식사공간을 고원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시설하게 되니까 대웅전 앞에 있던 탑을 밀어내게 되고 그 자리에 뭐가 들어서느냐 하면 선원과 고원이 마주보게 되는 형태가 들어서게 됩니다. 그러니까 선방, 지금으로 하면 선방과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 이런 것이 서로 마주보게 들어서는데, 이것이 송나라 선종사찰의 기본 배치입니다.

 

김봉래 : 아. 그렇군요.

 

태경스님 : 네. 그런데 선종사찰에서 밥을 먹을 때 공동생활을 해야 되는데, 그렇다면 그냥 아무런 저것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가서 먹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까 의식을 통해서 하나의 독립체적인 이런 것을 추구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하나 좀 더 나아간다면 선종사찰을 한국에서 받아들이는 그런 시초가 되는 게 양주 회암사입니다. 회암사는 이성계가 창건한 사찰이거든요. 이 때 지금 발굴조사서를 보면 회암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오른쪽 위로 어떤 건물들이 들어서 있느냐 하면 간장, 된장을 보관하는 장고,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장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 그 다음에 밥을 먹는 대방, 그 다음에 음식조리를 위해서 필요한 공간이나 우물, 그 다음에 곡식을 가공할 수 있는 큰 맷돌 등이라든지 이런 시설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기의 현상인데, 조선 후기가 되면 이 고원이 대웅전을 마주 바라 볼 수 있게 만들어지면서 거기에 대방이 또 들어갑니다. 이것은 조선후기의 경기지역의 사찰 배치의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음식이 들어와서 사원 배치까지 영향을 줬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봉래 : 음식이 이런 가람 배치에까지 영향을 줬다하는 재미있는 분석이셨는데, 주요 내용 가운데 제가 여쭙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고려 개경이 당시 송나라 상인들의 무역을 통해서 송나라의 음식과 식기문화가 직수입되었고, 특히 고려에서 이 불교음식은 아주 비싼 음식으로 특권층만이 향유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 부분 설명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태경스님 : 고려는 이제 일반적으로 국제무역을 금지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중국과의 문제에 있어서 무역을 담당하는 게 고려인이 담당하는 게 아니라 해상무역은 송나라 상인들이 책임졌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잘 알아야 되는데, 송나라 상인들이 고려 개경에 들어와서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담당 관리가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왕실에서 허락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송나라에 온 상인들은 송에서 유행하는 당시 최고의 고가품인 물건을 왕실에 바칩니다. 그러면 송나라의 최신 유행을 왕실에 소개하는 것이 그 무역이나 교역을 할 수 있는 허락의 조건이 되는 거죠. 그리고 또 고려에서 송으로 사절단이 갈 때는 그럼 어떻게 하느냐, 이것까지 고려의 상인들이 뱃길을 책임지고 합니다.

 

김봉래 : 고려의 상인이 아니라 송나라 상인이.

 

태경스님 : 아. 송나라 상인이 책임지고 합니다. 근데 이 사신이 돌아올 때는 중국 황제가 준 답례품을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송나라 상인들의 배를 타고 들어옵니다. 그러면 고려 조정에서는 어떻게 하느냐. 이 답례품을 국신품(國信品)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국신품이라고 해서 왕은 연회를 열어서 그것을 보여주고 감상하고 이런 일들이 있습니다. 이 국신품의 내용은 가지고 온 물건들은 향이나 차, 술, 과일 고급 음식들이고요, 뭐 비취, 마노, 보석, 무소뿔 이런 거고, 또 거기서 조금 더 가면 송나라의 최고 미술품 같은 것도 가지고 들어오고요, 궁정악기세트도 가지고 옵니다. 이러다보니 우리나라 궁정악을 여기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음식을 만약 송나라에서 고려 사신이 오면 고려의 음식으로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송나라의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와서 또는 고려 최고의 음식 만드는 사람이 송나라의 음식 재료를 조리하고 송나라의 식기에 내서 대접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연회가 끝나면 여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 물건이나 남은 음식을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럼 송나라 음식이나 물건이 왕실을 통해서 바로 사대부로 소개되는 거죠. 그러니까 고려시대의 사대부들은 왕실을 포함해서 송나라의 최고 유행을 바로 직수입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수 있고 그런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거죠.

 

김봉래 : 그렇다고 한다면 당시 불교음식이라는 것이 서민적인 음식보다는 고급스러운 특권층의 음식이었다 이런 결론이 나네요.

 

태경스님 : 예. 그래서 이 때 중요한 교역물품 중에 하나가 중국인들이 고려에서 요구하는 게 바로 유밀과를 원합니다. 과자 중에 이 유밀과는 뭐냐 하면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 인데, 부처님께 올리는 최고의 공양물로 되어 있습니다. 유밀, 말에서 보듯이 유, 밀입니다. 기름과 밀가루로 만든 과자. 그런데 이것이 고려 최고의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밀이 고려에서 생산이 되지 못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그래서 이 밀가루를 중국에서 수입해서 만드는데, 이 모습을 보고 고려도경을 쓴 서긍이 아주 이상하다고 비꼽니다. 고려 왕실의 결혼식이나 왕의 행차, 그 다음에 외국 사신이 오면 이 유밀과를 반드시 내서 대접합니다. 그런데 이런 행사들이 많다보니 식재료가 모자라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사찰에 재료를 요구하거나 충당하기도 합니다. 특히 기름 같은 것을 충당해서 행사를 진행하는 데, 또 제사에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등장하니까 이것을 먹지 못하게 하는 금지령도 자주 나옵니다. 이런 것들이 고려사에 나오죠.

 

김봉래 : 이제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몇 가지 주장들을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신채와 육식을 금하는 이유가 맛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전쟁을 막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이런 연구를 하셨더라고요.

 

태경스님 : 네. 아주 중요한 이야기인데요. 먼저 <유가사지론>에 나오는 이야기로는 이 식의 양을 잘 알아야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이 먹는 음식의 양, 양을 잘 알아야 우리 몸에 적당한 양을 잘 알아야 그것이 허물이 생기지 않는다는 이야기 입니다. 뭐 이런 이야기고요. 그 다음에 <입능가경>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입능가경>에서는 뭐냐, 성인들은 먹는 음식은 멥쌀이나 대맥이나 대두, 소두, 이거 보면 보리나 뭐 콩이 유일하고, 그 다음에 유밀과나 감자즙 이런 것을 먹는다고 되어 있는데, 그렇지 않고 육식을 하게 되면 맛에 대한 집착이 생겨서 축생이 없는 곳에 이르게 되어도 노루, 사슴, 꿩 이런 것은 먹지 않고 중생을 죽이게 된다고 합니다. 과거의 훈습으로 먹는 육식을 미식이라고 해서 맛을 좇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맛을 좇아가면 되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많기는 하지만 오신채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먹으면 음탕함을, 화를 돋우고 뭐 이런 이야기들이 있는데, 이런 것이 전부 다 화를 돋우고 하면서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소위 말해서 업이라고 말하는 부분을 움직일 수 있어서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나쁜 곳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이야기고요. 결국 그렇다면 오신채라든지 육식이든 간에 이것은 양을 알지 못해서 생기는 허물이 있게 되는 거죠. 허물은 결국에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음식을 쟁취하고 지키기 위해서 서로 전쟁을 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아까 이야기 드렸듯이 촉, 미, 향 이 세 가지 작용에 대해서 잘 알아야지만 맛을 맛에 대한 욕망으로 흘러가지 않게 작용을 할 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에는 수행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나를 건강하게 지켜주는 최소한의 역할을 해야지 그 이상을 하게 되면 병이 생기고, 그 다음에 전쟁이 생긴다는 이런 흐름으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건너뛰어서 이야기가 좀 그렇기는 하지만 일단 들어오는 육근에 대한 방어체계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김봉래 : 네. 스님 조선왕실의 속제(俗祭)는 불교음식의 재연이다 이렇게 하신 것은 어떤 말씀인가요.

 

태경스님 : 동아시아 고대사에는 한 마디로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이 주 업무입니다, 행정을 나라를 유지하기 위한 방식으로. 그런데 고려는 고려건국에서 훈요10조라고 해서 연등회나 팔관회에 대해서 꼭 이 행사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고려시대에는 왕실에서 제사의식이 두 가지가 나타납니다. 하나는 하늘에 제사지내는 유교식의 방법, 그 다음에 하나는 팔관회나 연등회를 통해서 특히 연등회를 통해서 고려 왕건이 주장한 제사 의식을 엮어서 하는 연등회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이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이데올로기가 바뀜으로 해서 연등회와 제사, 고려 건국의 왕과의 묶여져 있던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조선사회는 예악사상을 바탕으로 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래서 조선시대 왕실의 제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냐 하면 하늘에 지냈던 제사는 그대로 존속을 하고, 왜냐하면 그것은 주례나 예기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그 다음에 그렇다면 고려 건국에 연결되었던 연등회를 어떻게 갈 것인가라는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것이 그러면 평소에 즐겨먹던 상차림으로 가자 그래서 평소에 상차림이라는 게 연등회에서 어떻게 되느냐 하면 유밀과와 과일이 중심입니다. 그러니까 그러면 왕실의 제사를, 뭐 다르게 말하면 고려 연등회와 관련된 제사는 속제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상차림을 예기와 주례와 상관없이 유밀과와 과일을 중심으로 해서 만드는 상차림이 됐는데, 이 유밀과는 과자 튀긴 것 같은 거 아닙니까. 모양이 일정하지 않으니까 우리[틀]라는 것을 만들어서 거기다 쌓아 놓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불교라는 것을 표방 못하기 때문에 속제로 바꿔주고 사대부에서는 그것을 흉내 내서 저희가 지금 절에서는 고임새라는 용어로 그 유밀과를 쌓아놓습니다. 환갑상 사릴 때 뒤에 알록달록하게 높이 쌓아 놓은 것이라든지.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항상 언제나 그것이 허락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생 의례 중에 결혼이라든지 환갑에서만 이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조선왕실에서는 고려의 연등회에 나오는 그런 것을 재현한 것이고,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인도 그것을 추구하는 제사의식이나 아니면 환갑의례로서 만들어지게 되었던 거죠.

 

김봉래 : 네. 스님께서는 사찰음식은 건강식이 아니라 수행 방편의 하나다 이런 말씀을 또 하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종단이나 저희 불교방송 같은 매체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도 계실 것 같아요.

 

태경스님 : 예.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는데, 불교음식을 우리 먹을 때 무엇을 관해야 하냐면 촉, 미, 향 이 세 요소를 관찰하는 것이 불교음식관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데, 그러니까 맛으로 먹으면 안 되고 양을 잘 알아서 먹어야 되고, 그 다음에 그것은 건강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양만 섭취하도록 해야 합니다. 허물이 생긴다는 것은 병이 생긴다는 것이고 그 다음에 결국 쌓아놓고 지키고 전쟁하려는 원인을 제공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의 마음에 새겨야 될 불교 음식의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단이나 방송매체에서는 이런 것을 좀 더 염두에 두셔가지고 1700년이라는 불교문화를 자랑하지만 말고, 실제로 사찰음식을 만들거나 이 사찰음식을 만드는 그런 실물 음식을 하시는 분들이라든지 아니면 이론을 하시는 여러 분들이 화합할 수 있는 이런 장을 마련해서 저희가 좀 더 역사를 가지고 문화를 이해하면서 좀 더 퀄리티가 올라가는 그런 불교음식을, 관을 만들 수 있는 이러한 풍토를 마련해줬으면 하는 것이 종단이나 불교매체에 대해서 바라는 마음입니다.

 

김봉래 : 예. 말씀 듣고 보니까 불교음식학 연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될지 그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스님 말씀 감사합니다.

 

태경스님 : 네. 고맙습니다.

 

김봉래 : 네. 여러분 태경스님과 함께한 오늘 이 시간 어떻게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음식의 양을 잘 알지 못하면 몸에 병이 생기기도 하지만 또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 전쟁을 하는 원인도 된다 이런 말씀 되새깁니다. 맛으로 먹으면 안 되고 양을 잘 알아서 이 수행을 위한 건강을 지키는 최선의 양만 섭취해야 한다는 그런 말씀이셨습니다. 사실 무엇이든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됩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힘든데요. 제대로 규명하고 제대로 대처해서 그런 고통을 소멸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지금까지 제작에 보도국 진행에 김봉래였습니다. 편안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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