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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60대 치매 노인에게 법원이 항소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무조건적인 처벌보다는 치료가 우선이라는 ‘치료적 사법’이 첫 적용된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연쇄살인마 ‘앙굴리말라’도 자비로 포용했던 불교 정신과도 맞닿아 있는 판결이라는 점에서 불교계에 던지는 의미도 자못 크다는 반응입니다.

조윤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한 병원.

환자복을 입은 백발의 노인이 휠체어를 탄 채 다섯 평 남짓한 회의실로 들어섭니다.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남성 이 모 씨의 항소심 선고 현장.

법원은 치매를 앓고 있는 피고인 이 씨를 위해 병원 안에 간이 법정을 마련했고, 재판부 역시 서울 서초동 법원이 아닌 병원을 직접 찾아 이 씨와 마주 앉았습니다.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이 씨는 갈수록 치매 증상이 더 심해져, 면회를 온 딸에게 “엄마와 왜 함께 오지 않았느냐?”고 묻는 등 범행 사실 조차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이 씨의 자녀들이 법원에 선처를 요청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9월 직권으로 보석 결정을 내려 이 씨가 구치소가 아닌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항소심 선고에서도 형을 줄여 이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습니다.

피고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처벌이 아닌 사회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치료적 사법’의 개념이 적용된 첫 사례인 겁니다.

[인터뷰] 김선옥 / 피고인 이씨측 변호인

“1심에서는 피고인에게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치료의 필요성’을 형기를 정함에 있어 유리한 양형사유로만 참작했는데요. 이와 달리, 항소심에서는 ‘치료적 사법’을 모토로, 치매에 관한 치료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그 치료 경과를 관찰해서 양형에 반영했습니다.”

다만, 이 씨는 5년의 집행유예 기간 동안 보호관찰을 받게 되며 주거지 역시 병원으로 제한됩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계속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은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 존엄 가치를 지닌다’는 우리 헌법 가치와도 조화를 이룬다”며 판결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피고인과 피해자가 가족이라는 특수성이 있었던 만큼 ‘치료적 사법’ 개념의 보편화를 위해선, 치료 법원을 포함한 여러 시설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인터뷰] 김선옥 / 피고인 이씨측 변호인

“(치료적 사법 적용을 위해선) 각 기관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유사사건에 대해 보편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치료법원과 같은 제도가 정비되어서 치료적 사법이 많이 활성화 될 수 있길 희망합니다.”

하지만 국내 도입이 한 차례 무산된 바 있던 치료 법원의 경우 제도 정착에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어서, 현재는 치매전문병원 등 일반 치료시설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이번 판결을 두고 불교계에서는 부처님 생존 당시 연쇄살인마 ‘앙굴리말라’를 자비 사상으로 이끌어 갱생의 삶을 살게 했던 사례와 맥이 닿아 있다는 반응입니다.

때문에 이번 ‘치료적 사법’ 판결이 법조계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불교계가 생명존중과 자비사상을 더욱 사회 전반에 실천하고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BBS 뉴스 조윤정입니다.

영상취재 = 장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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