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최고경영진이나 일가족 재판을 취재하다보면 보이는 모습은 대개 두 가지다.

모든 혐의를 인정할테니 그저 형량만 줄여 달라는 '읍소형', 그리고 적극적으로 혐의를 부인하며 법정공방에 나서는 '항변형'이다.

읍소형의 경우는 회사 경영과는 무관한, 개인적인 사건인 경우가 많다.

특히 지난 1년 동안 마약류 범죄 혐의자들이 그랬다.

현대가 3세 정현선 씨와 SK그룹 3세 최영근 씨,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로 알려진 황하나 씨도 그랬다(남양유업으로부터 '창업주 외손녀'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는 항의성 연락을 받긴 했지만,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건 아니다).

CJ그룹 후계자로 꼽히던 이재현 회장 맏아들 이선호 씨는 검찰이 불구속기소를 했는데도 직접 청사로 찾아가 "날 구속시켜 달라"고 읍소하지 않았던가. 

그 전략이 통한 것일까? 대부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일단은 자유의 몸이 됐다.

역시 마약 투약과 밀반입 혐의로 기소됐던 보람상조 최철홍 회장의 맏아들 최요엘 씨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을 땐 놀라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반대로 회사 경영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된 경우는 '항변형'이 많다.

횡령과 배임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법정구속은 면한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불법 임상시험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안국약품 어진 대표가 그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로도 알려져 있는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의 '뒷돈' 사건 역시 '항변형'이다. 다만, 그 과정이 취재진을 당황시켰다.

"타이어 원재료를 납품하는 업체로부터 차명계좌를 통해 매달 500만원을 입금받았다"는 검찰의 공소내용에 대해 조 대표 측은 "진심으로 죄송하다. 횡령과 배임수죄, 은닉 등의 혐의를 인정한다"고 했다.

어라? 이건 회사 경영과 관련 있는 사건인데 순순히 인정을 하네? 읍소형으로 가는 예외적인 경우가 되려나?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역시 '항변형' 전략을 쓰려는 모양새. 다만, 이어지는 변호인의 진술에 취재진은 귀를 의심해야 했다.

"매월 지정된 계좌에 송금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청탁이 아니고 개인적 성의일 뿐이다."

이제 법정공방의 핵심은 부정청탁 여부로 넘어가게 됐다.

이 과정에서 항변을 위한 법리 맞추기에 집중하다보면, 다시 말해 법망을 피해나가려다보면, 법리가 너무 멀리 가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법리도 결국은 논리다. 최소한 법학자나 법률 전문가의 설명을 들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한다.

"거래처로부터 뒷돈은 받았지만 청탁은 없었다. 개인적 성의였을 뿐이다"라는 논리. 온갖 조문과 학설, 판례를 동원해 어떻게 뒷받침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10년도 더 전, 음주운전 의혹에 휩싸인 한 연예인이 남긴 말,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가 떠오른다.

조 대표 측 변호인이 재판장을 이해시킨다면, 재산범죄와 관련한 또 하나의 명 학설, 명 판례가 탄생할 것인가.

그럴 자신이 없다면 무리한 법리를 펼치기보다는 지금이나마 '읍소형'으로 갈아타는 것도 방법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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